사랑의 빛깔들-이지순 저

  • 494호
  • 기사입력 2022.06.28
  • 취재 임찬수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1549

사랑은 숙명일까, 사랑은 즐기는 것일까, 사랑을 야망의 도구로 삼을 수 있을까, 사랑은 꼭 열정적이어야 할까, 사랑 앞에 장애와 금기는 없을까…이 오래된 질문들에 과연 정답이란 게 존재할까? 


여기 한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가 그간 프랑스 문학이 기록해온 다양한 사랑의 장면들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나름의 해답을 찾아 책으로 출판했다. '사랑의 빛깔들'은 저자가 프랑스 문학의 명작들 가운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러브 스토리들만을 선별해 각기 고유한 빛깔을 지닌 사랑의 레이블을 붙이고 해설을 더해놓은 문학 에세이다. 저자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프랑스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해왔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과 사랑’이라는 교양 강의를 했다. 사랑과 청춘, 두 단어를 동의어라 생각하는 저자는 문학이 젊은 학생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기회라 생각했다. 실제로 저자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했던 시간이 생각지 못한 동기와 자극이 되었다고 말했다. 강의를 위해 마련해둔 기록과 현장에서 학생들과 서로 묻고 대답하고 토론했던 기억이 책의 토대를 이룬다. 저자는 학생, 즉 청춘들이 젊음의 특권처럼 사랑을 누리지만 그만큼 사랑앓이도 함께 겪고 있다고 말한다. 갑자기 찾아든 사랑에 한껏 영혼이 부풀어 올랐다가도 어느 순간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취업 절벽의 시대에도 진로 고민과 상관없이 사랑에 대한 고민은 크고 깊다.

이 책은 중세로부터 20세기까지 프랑스 문학에 그려진 여러 가지 사랑의 유형들을 각각 13개의 특징적인 테마들로 구분해 소개했다. 아래 몇 가지 사랑의 유형을 읽으며,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지배해 온 감정인 사랑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 사랑과 숙명 -

세상에는 이루어지는 사랑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훨씬 더 많은 듯하다. 사랑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장애와 시련이 따르곤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또한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열렬히 사랑하지만 서로 원수 가문인 두 주인공. 두 연인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사랑을 통과했는가? 저자는 운명이 아니었다면 이들의 사랑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을지 질문을 던진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달콤한 고통’에 머문다고 말하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위안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그 옛날 음유시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기뻐하거나 희망을 되찾고 가끔은 지난날을 회상해보기를 바랬듯이 말이다.


 ▲ 포드 브라운, 「로미오와 줄리엣」


- 사랑과 책임 -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를 모르는 독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동화 속 어린 왕자가 보여주는 사랑의 의미는 마음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곱씹을수록 남다른 성찰의 계기로 돌아온다. 헤어질 때 비로소 확인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랑이 있다. 어린 왕자와 장미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장미의 허영심으로 인해 결국 서로 상처받고 만다. 저자는 서로 사랑했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서툰 사랑의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반면 어린 왕자와 여우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정을 들인다. 즉, 서로를 길들이며 책임진 것이다. 이 과정에는 인내와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는 사랑을 일시적인 호감이나 매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호감과 매력이 사랑의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시키는 힘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상대를 위해 내가 쓴 시간,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속상해하고 웃고 울고 했던 시간 속에 있다. 바로 그 시간들이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소중한 사랑을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저자는 사랑은 인간이 끊임없이 갈구해온 근원적인 감정이라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 문학의 영원한 테마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살더라도 각각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문학자로서 품는 저자의 소회이다. 이 에세이는 프랑스 문학의 명작들과 그 작가들의 인생을 사랑의 차원에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문학, 특히 외국 문학에 거리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에겐 원작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비교적 잘 알려지고 한 차례 이상 영화화된 고전 위주로 작품을 선별했으며, 분석적인 고찰 대신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저자의 에필로그 마지막 말과 함께 기사를 마무리하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며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이다. 사랑을 기다리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과 함께 멋진 사랑을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진3 출처: https://www.essixhome.com/fr/torchon-le-petit-prince-la-fleur-et-le-renard-150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