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학생에게 전하는<br> 소박한 메시지

고민하는 학생에게 전하는
소박한 메시지

  • 315호
  • 기사입력 2015.01.23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1400

글 : 김용호 성균나노과학기술원 & 화학과 교수


학교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학부생들, 대학원생들과의 면담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청년들의 고뇌와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다수 그 모든 고민의 종결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향한다. 글로벌화, 경쟁사회, 국제정세, 사회적 관념에 대한 자유롭지 않은 사고 등이 그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원인일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보급으로 넘쳐나는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런 정보들의 활용이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만들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연구자로서 어느 곳에서든지 실시간으로 논문과 보고서 등을 통해 현재 연구의 경향과 진행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항공과 교통의 편리성은 세계 학회와 연구회로 손쉽게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게 도왔다. 정보기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 좋은 장비와 한층 발전된 연구 환경이 생각한 것들을 무엇이든지 구현할 수 있게까지 해준다. 얼핏 생각하면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독이 든 성배와 다름없다는 생각도 함께 스친다. 내가 생각한 것들은 남들도 생각할 수 있고 내가 구현 할 수 있는 것들은 역시 남들도 구현 할 수 있다는 점, 바로 이것이다. 나의 경쟁력은 절대적으로 높을 수 없고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영원이 보장할 수 없어서 항상 고민하며 준비해야 하는 분주한 삶을 끝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적 현상은 현재 개혁 중인 공무원 연금, 정년보장, 계약직/임시직 등 사회적 이슈를 비롯한 사회적 부의 불균형 문제와 함께 각 개인의 이슈까지 사람들을, 결국 우리 학생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대중에게 진정성 있는 공감을 사고 땅콩회항과 같은 슈퍼갑의 횡포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게다가 민생에 무관심한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미래를 걸지 않고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우리 학생들의 고민 저 밑바닥에 깔려 시퍼렇게 멍든 청년을 만들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회사생활을 하다가 도피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 연구원을 하면서 미국에서 9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기에는 한국사회의 조급증과 강박증에서 벗어나 어떤 자유가 있었던 것 같다. 사회의 분위기가 그러할 뿐 아니라 좀 더 전원적인 주거환경이 나에게 여유를 주었던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랜트하고 나도 역시 집을 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 입학의 경쟁률이 세지 않아서 우리 아이들의 학업교육에 대한 투자도 크게 염두 하지 않았다.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연구를 하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료와 친구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내 수준에서는 만족할 만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나도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 동안 학교에 재직하면서 한국사회가 압박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새삼 다시 체험하는 중이다. 특히 학생들과의 면담시간이 우리 학생들의 고민을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나아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여 같이 행복해 지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했다. 번민하는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몇 가지 결론 아닌 결론과 답 아닌 답을 소박하게나마 얻었다.

첫째, 먼 미래를 보고 고민하지 말고 하루, 하루에 충실하자.
학생들 대부분은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좀 더 여유 있게 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고민이라고 한다. 먼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고, 남들의 길에 나의 갈 길을 고정하여서 현실이 어두워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는 말이다. 많은 명언에도 있지만 하루하루 삶을 소중한 선물로 받아야 한다. 선물은 기쁘고 감사하다. 선물 같은 오늘을 충실히 누리며 보내면 내일이라는 선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흔들리는 불안한 삶의 멀미에 머리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

둘째,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남들과 다른 비전을 세우자.
첫 번째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 하루의 삶이 충실히 쌓여야지 미래를 기대하며 바라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구상은 따로 시간을 내서 설계하는 투자를 해야 한다. 꼭 당부하는 말은 현실과 타협하는 비전과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 돈, 명예, 집 등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하면 비전은 쉽게 흔들린다. 경제가 안 좋아졌다고, 사람들이 배신했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자신의 비전이다. 단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하지 않는다 해도 비전에 대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은 꼭 필요하다.

남들과 차별되는 비전을 세워 나만의 독창적인 길을 만들어가자. 주변의 모든 친구가 한 목소리로 대학교수가 되겠다고 할 때 나의 비전은 다수의 목표에 군중처럼 몰려가서 세워진 피상적인 것이 아니어야 한다. 어떤 직업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연구자로서의 비전을 계획하다보면 나중에 대학교수가 될 수도 있고 연구소의 연구원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이런 구체적인 계획으로 쌓인 비전을 품은 사람이 더 훌륭한 연구를 할 뿐 아니라 나중에 대학교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함께 일하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하는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다. 비단 대학교수라는 비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개인의 비전과 조직의 비전, 국가의 비전이 하나가 되게 하자.
비전은 아이러니 하게도 혼자 계획하지만 혼자 이룰 수 없다. 조직의 한 사람으로써 비전을 세우고 달성한 사람은 그 공동체의 리더가 된다. 본인들이 가진 비전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비전과, 나아가 국가발전의 비전과도 같은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살아가면서 나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협동하며 소통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다. 예를 들어 성균관대에 재직하고 있는 나의 비전이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이라면 그 연구를 통한 학교의 발전과 국가경제의 발전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주 개인적, 이기적인 비전은 혼자 감당하고 성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남들보다 좋은 집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아주 사사로운 비전이라서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 극단적으로 불의와 불법으로 돈을 벌어도 그 한 사람에게는 비전을 이루는 것이기에 윤리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조직과 국가는 개인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해 지는 것이 분명하다.

넷째,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아이디어들로 고민하지 말고 지금 당장 펜을 들어서 종이에 너의 비전과 꿈, 계획을 써라. 작은 것이라도 현실에서 바로 실행해야 한다. 특히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고민하지 말고 교수님이나 선배님들을 찾아가서 진학상담을 받아라. 너 머리로 고민해 봤자 너 수준에서 답이 나온다. 후에 학부연구생이 되어 실험실에서 실행하면서 대학원을 통한 나의 미래가 설계될 수 있는지 직접 실행해보라고 조언한다. 만약에 실험실에서 생활해 보니 본인과 맞지 않다면 확실히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찾았으니 답을 얻은 것이다. 그럼 그 고민은 끝났다. 다른 길을 빠르게 모색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고민하는 시간에 주저앉아서 보내느라 실행에는 소극적이다.

아주 투박하고 어쩌면 날 것의 말솜씨지만 후배이자 제자인 우리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하고 싶었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를 덮칠 거라고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靑春(새싹이 돋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스무 살 안팎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비가 오고 난 뒤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여러분들이 가는 빗길에도 무지개는 반드시 떠오를 테니 우산 속에 갇혀 너의 무지개를 볼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젊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