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 오페라 라보엠과 우연한 만남

썸타는 오페라 라보엠과 우연한 만남

  • 317호
  • 기사입력 2015.02.13
  • 편집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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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항석 수학과 교수


재작년 가을 낙엽이 지는 저녁에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냥 맹숭맹숭 시간을 때우다가 노트북을 펼쳐서 웹서핑을 하려다 따분해서 유투브(Youtube)를 보았다. 우연히 추천 동영상으로 나타난 라보엠이라는 오페라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푸치니라는 작곡자의 3대 오페라중 하나였다는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아무 기대 없이 보았다.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라보엠은 이야기(recitativo)와 서정적인 노래(aria)가 전개되는데 나도 모르게 화면과 노래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글자막이 있었지만 집중해서 읽지 않아도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 가난한 열혈 화가와 어설퍼 보이는 시인과 재치 있는 음악가와 너무 진지한 철학도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150년 전 파리의 뒷골목에 있는 옥탑방에서 오페라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마치 젊은 시절 지방에서 상경해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대학생이라는 프라이드와 책 몇 권에 마치 지성인이 된 듯한 착각이 있었던 나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이 오페라를 진작 봤더라면 내가 많은 오페라를 일찍부터 좋아하게 되었을텐데!

남자 주인공 로돌포(Rodolfo)라는 시인은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을 내기 위해 옥탑방을 떠난 후 촛불을 빌리려고 옥탑방에 올라온 아래층에 사는 미미(Mimi)라는 여인과 만나서 썸을 타고 미미는 헐거운 주머니 속에 있던 열쇠를 옥탑방에 잃어버리고 갑자기 분 바람으로 미미의 촛불이 꺼진 틈에(로돌포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촛불을 꺼버리고) 함께 어둠속에서 열쇠를 찾다가 미미의 손을 잡게 된다.

“Ah! 아~~!”

이때다 싶어 로돌포는 손을 놓지 않고 썸 타는 상태에서 케미가 흐르는 감정의 노래(아리아)를 속삭이듯 부른다.

“Che gelida manina! 당신의 손이 얼마나 차가운지요!
Se la lasci riscaldar. 내가 따뜻하게 하게 해드릴게요... ”

라고 하면서 자신은 시인(poeta)이고 싯구와 사랑의 노래가사를 쓰며 가난(poverta)하지만 마음은 백만장자(miglionaria)와 같다고 한다. 그녀의 두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보석이 도둑맞은 것에 비유한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할 미래에 대한 희망(la speranza, 라~ 스뻬에~라~안자, 이 아리아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자기 방이 가득 차 있다고 하면서 그녀가 누군지 물으면서 아리아를 마무리한다.

썸만 타던 미미는 로돌포의 속삭임에 수줍어 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답하는 감미로운 아리아를 부른다.
“Si, mi chiamano Mimi. 그래요, 나를 미미라고 사람들은 부릅니다.
Ma, il mio nome è Lucia. 하지만 내 이름은 루치아에요...”

라고 하면서 자신은 옷감이나 비단에 장미나 백합 같은 수를 놓고 있으며 시처럼 사랑과 꿈과 상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신에게 기도하며 하얀 작은 방에서 지붕과 하늘을 보면서 꽃향기를 맡으며 사랑(amore)을 꿈꾸고 있고 당신의 이웃이라고 말하면서 아리아를 마무리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케미가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고 사랑의 이중창 아리아를
“O soave fanciulla 오 사랑스런 아가씨”
로 시작해서 사랑의 촉촉한 선율이 몇 분간 흐른 후
“....... Amor, amor, a~mor!”
로 끝나는 듀엣 아리아를 부른 후 청중들에게 벅찬 감동을 준 후 1막(30분)이 끝난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와 영자가 독일의 어느 강변에서 우연히 만나 썸을 타다가 사랑을 확인하는 스토리처럼....

2막은 크리스마스 전날의 흥겨운 파리의 축제 분위기가 넘쳐 흐르고 새로운 커플과 친구들의 어울림이 재미있게 전개되며 과거의 유럽으로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는 시공간 여행을 경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3막은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두 사람의 사랑싸움이 전개되고 4막의 스토리 전개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작품 전체 또는 일부라도 유투브에서 한글 자막으로 된 라보엠을 볼 수 있다. 검색에 국립오페라단 라보엠을 입력하거나 사이트 www.youtube.com/watch?v=x0YmyZRBaiQ를 방문하면 된다. 오페라는 공연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제일 기억과 마음에 감동이 오래 남아서 좋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유투브에 공연 전체가 올라가 있으므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다. 오페라는 음악, 문학, 연기, 무용 및 미술 등의 종합 예술이므로 융복합의 시대에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이며 4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 가치가 있다.

오페라는 가고 싶은 세계 여러 곳으로 떠나는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이며 내가 오페라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나와 다른 삶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인생의 무대이다. 소설을 한 권 읽는데 한나절이 필요하지만 오페라 한 작품은 2시간 정도면 즐길 수 있으니 바쁜 현대인에게 도움이 되며 시간이 별로 없다면 핵심부분 30분이라도 유투브를 통해 차분히 본다면 일상에서 메말라가는 마음속을 적셔주는 촉촉한 단비가 되어 줄 것이다.

필자가 라보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소중한 젊은 시절의 숭고한 가치를 젊은 친구들이 소중이 여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라보엠(La Boheme)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젊은 보헤미안 같은 자유로운 삶과 사랑의 값어치를 오페라를 통해서 나타내고 싶었고 이는 누구나 공감하는 스토리며 푸치니도 무명 시절 어렵게 작품 활동을 했고 겪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라보엠이라는 작품으로 승화했던 것 같다. 라보엠의 젊은이들과 달리 요즈음 대학생들이 취업준비와 학점 올리기 및 영어 공부 등에 몰두하면서 본인들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잊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몰두해서 기쁨도 느끼고, 좌절도 느끼고 또 보람도 느끼면서 여러 가지 일에 부딪혀 보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경험을 축적해 같으면 좋겠다. 성공만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는데 실패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실패와 맞교환되는 숭고한 가치이며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 성공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경험은 저 멀리 있는 것이 되고 성공의 노하우는 더욱 얻기 힘들 것이다.

젊은이는 실수해도 큰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아도 그들의 인생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쌓여가는 경험 속에 삶의 지혜가 좋아진다. 서양에서는 경험(Experience)이라는 단어에는 겪는다는 동양적인 의미보다는 보다 능동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다. Experience라는 단어를 분해해 보면 Ex는 out를 의미하고 핵심부분인 어간(principal part)은 peri 인데 try를 의미한다. 마지막에 있는 ence는 명사형 어미이므로 문법적인 역할이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만 머무르지 말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바깥 세상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 경험이라는 영어 단어에 품고 있는 뜻이다. 실험 또는 시도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인 Experiment도 Experience와 마찬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음이 값어치 있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움에 직면해서 헤쳐 갈 수 있는 노하우(know-how)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