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과제

또 다른 과제

  • 329호
  • 기사입력 2015.08.13
  • 편집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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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문현 컴퓨터공학과 교수

어느새 1학기도 끝나고 방학에 접어들었군요. 학생들의 활기로 충만했던 교정도 때때로는 적막하게도 느껴집니다. 학기 중 강의실에서 교과목 수업에 전념하던 학생들의 모습들은 항상 아름다웠고, 밤늦게 도서관, 연구실에서 학업에 몰두하는 모습은 곁에서 보기에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간혹 지금의 교육 환경과 나의 학창시절, 70년대의 교육환경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나의 대학시절은 우선 모든 것이 궁핍하고 불편한 시기였습니다. 현재의 PC 보다 못한 성능의 중형 컴퓨터가 대학 전체에 몇 대 있는 정도였고, 이것마저도 사용하려면 카드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조교에게 전달한 후, 하루정도 걸려서 출력물을 받아보곤 했습니다. 모든 수업은 칠판에 판서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복잡한 수식이 포함된 수업은 수식을 따라 적다가 교수님 말씀을 놓치곤 해서 이해가 곤란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졸업 후 몇 년간 대기업 연구실에서 근무해보니 연구, 개발은 걸음마 수준이었고 개발 목표는 오로지 선진 제품을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국 target 제품의 설계 메뉴얼을 분석해보고 제품을 해체해서 내장된 기능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신규 제품을 상상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습니다. 신규 제품을 제조할 시설이나 필요한 요소 부품을 국내에서는 마련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업무 출장차 들린 일본 기업에서 첨단의 기계와 컴퓨터로 작동되는 청결한 생산, 연구시설을 보고 ‘과연 금세기에 이들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라고 회의에 젖어본 적도 많습니다.

반면에 요즘의 교육 환경, 기업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교수님들이 정성스레 마련한 강의 노트는 한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내 컴퓨터에 저장됩니다. 외국의 관련자료도 인터넷으로부터 접근할 수 있고, 유명 동영상 강좌도 시청할 수 있습니다. 모든 환경이 세계화되고 정보화되었습니다. 대기업의 제품들 또한 세계를 제패하고 있고, 세계시장에서는 각국의 기술들과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편리한 첨단의 교육 환경, 기술의 세계적인 경쟁상황, 그리고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서 여러분들 세대의 학습방식이나 가치관은 우리 세대의 그것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강의준비를 하면서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전공이 이공계인 관계로 교재의 대부분이 서양에서 출간된 책들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이론들은 모두 서양인들이 정립한 theorem, 알고리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근대화 시점이 유럽에 비해 늦었고, 세계와의 교류도 최근에야 시작되었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아직까지는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또 문득문득 스스로 질문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인가?’. 외국 것을 모방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문화에서, 여러분들이 투자자라면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도 않고, 값은 비싸며 생소한 제품을 수용할 용기가 있을까요?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 수많은 인간들이 하늘을 비행해 보고자 각양 각색의 장비와 차림으로 날개짓 하는 오래된 영상들을 봅니다. 낡은 필름내의 그들의 애잔한 모습속에서도 우수꽝스러운 몸짓과 참담한 추락장면에 실소가 지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보겠다고 하는 그들의 의지와 기발한 착상은 실패와 상관없이 본받아 마땅한 것 아닐까요?

이제 여러분들의 세대는 명시적으로 주어진 문제와 과제를 해결하는 것에 추가하여, 창의적인 마인드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창조하는 것을 고귀하게 여기며, 타인의 창의적인 생각은 존중해주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재의 내용을 이해하고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좋은 학점을 받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가끔씩 전공서적의 행간을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현재 이론을 개선하거나, 이론을 적용할 새로운 현실적인 분야나, 인접된 학문에 적용할 방법은 없는가? 의문을 품어보세요. 인간의 신경세포의 동작원리와 사고체계가 컴퓨터이론과 만나서 인공지능 컴퓨터를 탄생시킨 것은 단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비록 주제가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주 작은 소주제일지라도 계속 탐구하다 보면, 세계적인 specialist 가 되겠지요?

비단 공부만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기반의 정보화사회에서 창의적인 사고는 손쉽게 유튜브, 페이스북등 획기적인 서비스, 제품을 통해 발현되고 있습니다. 삶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 시스템은 어떤 것이 있을까? 창의적인 생각과 이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교과목이 부여하는 장기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또 다른 과제가 아닐까요?

저는 ‘창의적인 사고’와 더불어 ‘끈기’란 덕목을 여러분들에게 요구하고 싶습니다. 간혹, 외국의 서적이나 연구자료(특히 복잡한 기호등이 포함된 논문)를 보고, 지레 도전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결과는 1, 2년 만에 성취된 것이 아니고, 수년, 길게는 수십년에 걸쳐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생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항상 장벽에 도달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관련 지식이 불충분하거나, 자료가 부족하거나, 경제적인 여건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다양한 방해물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시간’처럼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재산은 없습니다. 차근차근 끈기있게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시간은 젊은 여러분들에게는 충분합니다. 어려움이 있기에 꿈이란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이제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자신만의 꿈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그 꿈은 꿈만으로 끝나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아시절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교육열, 세계화된 교육환경과 연구 환경을 갖춘 지금이야 말로 여러분들이 신이론, 신기술, 신상품, 신서비스등을 창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대가 우리 세대를 뛰어 넘는 찬란하고 풍요로운 지식강국의 세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쩌면 이런 욕심에서 이 글이 비롯된 지도 모르겠군요. 이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에 제2의 스티브 잡스가 탄생하고, 세계적인 발명가, 학자들이 출현하며, 전공서적에 여러분의 이름으로 정리나 알고리즘이 게재되는 행복한 꿈을 꾸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