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Carpe Diem

  • 339호
  • 기사입력 2016.01.13
  • 취재 곽헌우 기자
  • 편집 곽헌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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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대호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아마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웬일로 교수가 공부하라는 말 안 하고 즐기라는 말을 하지?'라는 궁금증에 이 글을 클릭한 학생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은 1989년 개봉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John Keating) 선생님이 삶에 지치고 꿈을 잃은 학생들에게 외친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라는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유명해진 라틴어입니다. 아마 이 영화는 보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도 이 말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영화에서 전달해준 '카르페 디엠'의 메시지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카르페 디엠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른 의미로 여러분께 해석해드리고자 합니다. 융합학과인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소속인 저는 조금 독특한 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7년에 전기공학부에 입학했으나 박사학위는 학부 전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제가 공대에 입학했던 1997년은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 조금 특별했던 해였습니다. 1997년 겨울, 우리나라에는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고 국민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했으며 기업들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위기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쉽게 말해서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나 인력은 정리하고 당장 돈을 벌어줄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나 인력의 대표적이면서도 유일한 부분이 바로 기술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R&D 파트이겠지요. 기술개발은 기업의 미래를 책임져주기는 하지만 그 효과는 아주 오랜 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 내에서 수많은 "공돌이"들이 해고를 당했으며, 그 여파는 2000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공과대학의 인기 하락과 의과대학의 인기 상승을 만들어 냅니다.

사실 2000년 이전까지도 의과대학의 인기가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지금과 같이 독보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의 경우 정부는 노동집약적 산업인 섬유산업과 화학 관련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고, 이에 따라 섬유공학과와 화학공학과 등이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1970년대는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 그리고 중동 건설 붐과 함께 기계공학과와 건축공학과의 인기가 올라갔던 시기입니다. 조선일보의 1972년 기사에 따르면 그 당시 서울대학교 학과별 커트라인이 물리학과 307점, 화학공학과 303점, 기계공학과 300점, 건축공학과가 298점 순서였고, 그 당시 의예과와 치의예과의 합격점수는 각각 297점과 296점이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부터는 전기-전자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짐에 따라 전자공학과가 공대 최상위 학과가 되었고 1991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91학번의 경우 물리학과 298점, 컴퓨터공학과 297점, 전기전자공학과 295점 순서였다고 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학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앞으로 30년 동안은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며 경제활동을 하게 될 텐데요, 2020년에는, 2030년에는, 2040년에는 어떤 분야가 가장 돈을 잘 벌까요? 의사? 변호사? 공무원? 그래서 어떤 학과가 가장 인기가 많아질까요? 의대? 법대? 공대? 안타깝게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송하게도 저 역시도 모르고 있지요.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처음의 1997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공돌이들이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공대생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당시 저의 친구들 가운데 다른 진로를 모색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도 그러하였지요. 몇몇 친구들은 그대로 전공을 유지하였지만 어떤 친구는 그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취업하였고, 한 친구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벤처 게임 회사에 취업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는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르고 한의학과에 입학하였고, 저는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일일이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혼돈의 시기였던 만큼 바뀐 진로도 혼돈스러웠습니다.

자, 여기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전공 유지, 컨설팅, 벤처 게임 회사, 한의학, 경제학 다섯 부류의 친구들 가운데 누가 가장 잘 살고 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다들 잘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했고, 물론 다 똑같이 잘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을 기준으로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 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인생의 길목에서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몸은 하나이니 두 길을 모두 가지는 못합니다.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려 하였으나 두 길의 끝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물론 선택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카르페 디엠! 여러분이 더 즐거울 수 있는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길을 선택하셨다면 그 길을 따라 열심히 달려 나아가십시오! 물론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한쪽 길에 대한 후회는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달려 나아가다 보면 두 길은 서로 만날 것이며, 그 길의 끝에는 또 다른 카르페 디엠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