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경고

학사 경고

  • 357호
  • 기사입력 2016.10.10
  • 취재 이지원 기자
  • 편집 이지원 기자
  • 조회수 8214

글 : 윤석배 수학과 교수

원고 의뢰를 받았다. 자유주제인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귀감이 되는 내용이면 더욱 좋단다. 최근에 뭔가 글로 쓸 만한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았다. 연구하고, 강의하고, 가끔 아이들과 놀고, 자는 막내 깨운다고 아내에게 혼나고 하는 정도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새삼 너무 단조롭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심심한 생활 속에서도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좀 무덤덤한 편이다. 원고 수락을 약간 후회하던 차에, 학사경고 받은 학생들을 면담하고 지도해달라는 또 다른 임무가 들어왔다. 학사경고라... 그렇고 보니 나도 받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성적표를 다시 떼와 확인해본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꽤 자주 학사 경고 혹은 그에 준하는 성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잘 포장하자면 청춘의 방황이긴 한데,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사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대학생활이 기대했던 것과 달라 실망한 것도 아니고, 짓누르는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도 아니고, 사회에 불만이 가득했던 것도 아니었다.

원래 아침에 잘 못 일어나던 놈이 서울로 대학을 와 혼자 살게 되니 점점 더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저녁에는 자주 술을 마시다 보니 이런 늦잠은 점점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오후 3,4시 나 되어야 잠에서 깨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학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과음에, 불규칙한 생활에, 음식도 맨날 인스턴트만 먹어서 그런지 몸 상태도 급격히 나빠져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피곤에 절어 있었다. 이렇게 살다보니 세상만사가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지금 와서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그냥 그 이유뿐이다. 갑자기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져 당황했고 점점 게을러지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 이런 저런 고민이 있는 척 했지만 사실은 부끄러운 진짜 이유를 숨기기 위한 연극이었던 것 같다.

1, 2, 3학년 내내 꽤 많은 F와 D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받은 F는 3학년 2학기에 받은 복소 해석학 II 였다. 그 강좌를 마지막으로 휴학하고 공익근무를 하러 부산으로 내려왔다. 2년 정도 근무했고, 소집해제 이후에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1년을 더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학기 정도의 학비와 생활비를 모았다.

복학하니 더 이상 놀기도 싫고 놀 사람도 없었다. 도합 6년을 놀았더니 어느덧 공부를 해보고 싶은 지경에 이른 내 자신을 보며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느낌이었다. 한 2년 열심히 공부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공부 말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복학 후 첫 1년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할 정도로 열심히 한 것 같다.

재수강을 하며 D와 F를 하나씩 지워가던 차에, 부산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받은 내 인생의 마지막 F학점, 복소 해석학 II에서 문제가 생겼다. 단 학기 강좌로 바뀌어서 II는 더 이상 개설되지 않는단다. 대체과목으로 편미분 방정식 II를 들으면 재수강 인정을 해준다고 했다. "뭐? 편미분 방정식이라니 그게 대체 뭐야? 그리고 1학기도 안 들었는데 2학기를 들으라고?" 다른 도리가 없어 투덜거리며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부 편미분 방정식은 독립적인 주제들 몇 가지를 가르치기 때문에 1학기를 듣지 않아도 2학기를 듣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예상치 않게 상당히 재미있었다는 것. "이런 분야가 있었구나. 이런 거라면 좀 더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가져 버린 학점을 조금이나마 복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중에도 이 편미분 방정식이라는 과목의 재미있었던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학원 가서 편미분 방정식을 조금만 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졸업하고 취직하면 평생 찝찝할 것 같았다.

그렇게 대학원을 진학했다. 대학원에서의 편미분 방정식 공부는 힘들었지만 여전히 재미있었다. 수학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열심히 공부했고 편미분 방정식 전공으로 – 좀 더 정확히는 통계역학의 기체 동역학 방정식에 대한 수학적 연구로 – 학위를 받았다.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복소 해석학 II에서 F를 받지 않았으면 나는 과연 편미분 방정식을 수강했을까? 그 당시 편미분 방정식은 학생들 사이에 별로 인기 있는 과목이 아니었고 수강생도 적었다. 2학기 강좌는 더 심했다. 내가 수강했을 당시 나를 포함해 수강생이 다섯 명 정도 밖에 없었다. F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내가 굳이 찾아내어 수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1학기는 수강하지도 않았고.

아마, 나는 분명히 편미분 방정식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졸업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내가 수학을 하는 것은 결국 그 몇 년의 방황 (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늦잠+과음+게으름으로 인한 망가짐)과 그때 받았던 F학점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8년 전에 복소 해석학 II에서 F가 아닌 A를 받았다면 나는 지금 수학을 하고 있을까. 인생은 이상하다.

작년에 복소 해석학 II를 강의하게 되었다. 원래 주로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 안식년을 가셔서 대신 강의하게 되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게 마지막 F를 준 과목이자, 결국은 내가 좋아하고 매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을 수 있게 해 준 과목. 강의하고 있자니 뭔가 복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은혜를 갚는 것 같기도 했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는데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학사 경고 면담 대상 학생은 아직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면 무슨 말을 하지? 지금의 방황이 훗날 도움이 될 날이 올 테니 걱정 말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공부 좀 하라고 타일러야 되나. 오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