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주인

대학의 주인

  • 359호
  • 기사입력 2016.11.14
  • 취재 이지원 기자
  • 편집 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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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식 영어영문학과 교수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 서울의 모 대학 학생들이 학교행정에 반발하여 본관을 점거하는 농성을 벌여 결국 총장으로 하여금 추진하려던 사업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떠들썩했던 이 사건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뉴스보도가 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기에 대학정책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시위 학생들의 외침에 대해 한 보직교수가 너희들은 4년만 다니고 졸업하는데 어찌 너희들이 대학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학의 주인은 누구일까?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사립대학의 주인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재단이다. 그러나 시위 학생들이 그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모르고 학생이 대학의 주인이라고 외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을 위시한 교직원들이 학교의 주인일까? 학생들은 4년, 대학원 과정까지 포함한다면 기껏해야 10년 남짓의 시간동안 대학에 적을 두고 있기에, 그 보직교수의 말대로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직원들을 대학의 주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일지라도 자신의 노동에 대해 월급을 받는, 계약서상 “을”로 지칭되는 피고용자임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국내대학의 역사가 길지 않기에 30년이라는 시간은 대학의 역사와 상당부분 겹치는 긴 시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월이 흘러 대학이 더 나이를 먹는다면 교수 역시 학생들이 그러한 것처럼 기껏 3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잠시 대학에 머물다 떠나는 자에 불과할 것이다. 과연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 것일까?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성균관대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봄날의 캠퍼스가 기억이 난다. 아직은 낯선 곳이었지만, 황량한 텍사스에서, 그것도 미국 내에서 서너 번째로 넓은, 아기자기한 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대학캠퍼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었기에, 잊고 지냈던 꽃과 나무들, 예전의 캠퍼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발한 문구의 현수막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웃고 떠드는 해맑은 (물론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해맑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학생들을 지나 캠퍼스를 걷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파른 경사의 언덕과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그리고 내가 이 공간에 썩 잘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 그 즐거움은 곧 사그라지기 마련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고, 아름다운 캠퍼스는 이제 나의 학교가 아닌 나의 직장이었다. 나는 연구실로, 강의실로 일을 하러 오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대학은 설레고, 고민하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즐거워하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그다지 설레지 않으며, 예전처럼 고민하지도 않는다. 실수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후회하기 보단 그 후회되는 행동을 꼰대스럽게 합리화기에 급급하고, 이제 쉽게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 대학은 설레고, 고민하고, 실수하고, 후회하고,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것이다. 대학은 처음 가족을 떠나 혼자 살게 된 비좁은 자취방과도 같다. 학점, 연애, 취업,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이미 충분히 좁은 자취방은 더욱 비좁게 느껴진다. 월세 역시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 자취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훗날 좋은 집에 살게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내 청춘이 웅크리고, 뒹굴었던 그 비좁은 자취방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취방에서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물론 자취방은 꼬박꼬박 월세를 받는 집주인의 것이다. 하루이틀치 방세마저 어김없이 받아내는 고시원 주인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취방에서의 비루했지만 찬란했던 청춘의 추억은 결코 집주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자취방에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추위에 보일러가 얼지 않았으면 좋겠고, 창가 너머 행인들의 다리가 보이는 반지하방이 아니었으면, 그래서 볕이 좋았으면 좋겠고, 냉장고에는 밑반찬이 충분히 있고, 보온밥통 속의 밥이 오래되어 누레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술 마신 다음날 아침 그들이 든든하게 해장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