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로 단상

대성로 단상

  • 371호
  • 기사입력 2017.05.12
  • 편집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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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장완 교육학과 교수

한동안 캠퍼스의 꽃들이 화사함을 뽐내더니 이제는 신록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도 봄을 아쉬워하듯 때늦은 철쭉이 빨갛고 하얗게 피어있지만 날씨는 벌써 여름으로 다가선 듯 하다. 오늘도 대성로를 오르면서 다양한 나무들과 풀, 여기저기 걸려 있는 플랜카드, 그리고 시원한 옷차림을 한 학생들의 모습과 중간시험 이후 한결 가벼워진 학생들의 표정을 본다.

대성로를 오르내리기 시작한지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물론 중간에 오랜 기간 다른 곳에 있었지만 대성로를 오를 때 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빠르게 교차한다. 80년대 중반 학교에 다닐 때에는 셔틀버스가 없어서 매일 대성로를 걸어서 오르내려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대성로를 오르내리는 시간은 젊은 날의 번민과 고뇌를 품은 힘든 비탈길이었고, 캠퍼스의 사계를 관찰하는 평온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학창시절 길지도 짧지도 않은 대성로를 오르내리면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대학생활 동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곤 했다.

때론 깊은 생각과 느려진 걸음걸이로 시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느낌도 받았다. 적어도 대성로를 오르내리는 시간은 나에게는 하루를 시작하고 계획하고, 내 인생을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대성로를 오를 때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꽃과 나무와 풀을 보면서 계절을 느끼고, 움터 나오는 새싹이나 화사한 꽃들, 파릇해 지는 나무 잎사귀를 볼 때면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나중에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된다 해도 대성로 만큼은 걸어서 올라가리라 다짐했었다.

월이 많이 흘렀고 나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제는 차도 있고 셔틀버스도 있어 예전의 다짐처럼 매일 대성로를 걸어서 오르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가급적이면 대성로를 걸어 올라가고자 하며 그때마다 주위의 나무와 풀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물론 학창시절만큼은 심각하지 않지만 지금도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또 이제는 주위의 경관보다는 학생들의 모습과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된다.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대성로를 오르내릴까?

수업을 하면서 ‘일상에서 교육찾기’라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대성로에서 찾은 교육이라고 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먼저 대부분 학생들에게 대성로는 걷기 힘든 길이며 따라서 대성로를 걸어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많은 학생들은 셔틀버스를 타지 않을 경우 혜화역이나 학교입구 버스정류장부터 걸어야 하며, 특히 학교 입구부터 운동장까지 이어지는 비탈길은 학생들이 걷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많은 학생들이 별다른 생각없이 대성로를 몇 년 동안 오르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 수업을 들었던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과제 덕분에 대성로를 오르면서 주위를 살펴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지나쳤던 수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으며, 자신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한 번 생각을 하고나니 이제는 대성로를 오르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주위를 관찰하게 되고 많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수업을 들었던 대부분 학생들에게 대성로는 이제 단순한 길이 아닌 것이 되었다.

오늘도 대성로를 오르면서 학생들을 살펴본다. 많은 학생들은 나와 같이 대성로를 오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내려가면서 하루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가끔은 여유를 갖고 대성로를 걸어서 오르내리면 어떨까? 이왕이면 천천히. 그래서 꽃이 피면 피는 것을 알아채고, 초록이 짙어져 가는 것도 느끼고, 은행나무들이 하나씩 물들어가는 것도 즐기면서 말이다.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생각을 이어가고,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 할 것이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쁘게 이어지는 하루 일과 중에서 자신만의 사색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분의 대성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