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 이야기

캐나다 몬트리올 이야기

  • 377호
  • 기사입력 2017.08.09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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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주영 약학대학 교수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교에서 포스닥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만난지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낯선 도시인 몬트리올에서 홀로 고군분투 하던 시간 동안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나는 많은 사전정보 없이, 여행용 캐리어 하나와 배낭만 메고 몬트리올로 향하게 되었다. 몬트리올이 퀘벡주라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캐나다! 인데, 처음 도착한 도시는 지하철역, 교통표지판, 거리, 식당 메뉴 등이 프랑스어로만 가득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하필이면 독일어를 공부해서 프랑스어는 알파벳조차 읽을 수 없는 문맹인 나는, 고등학교때의 그 선택을 뒤늦게 후회하면서 갑갑한 마음으로 몬트리올 생활을 시작했다. 참고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6개월 정도 지나면 대충 눈치로 생활에 필요한 단어들, 특히 식당메뉴 정도는 파악하게 된다.

몬트리올에는 프랑스어와 영어 두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는 Bilingual 뿐만 아니라, Triple lingual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소속되었던 연구소에는 유대인들이 많았는데, 영어, 프랑스와 그들 민족의 언어인 히브리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였다. 가족과 통화할 때는 히브리어, 연구소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사용하는 그들을 멍하게 구경하곤 했다. 내 옆자리에서 나와 함께 동고동락 하던, 아일랜드에서 온 동료는 영어 밖에 못하는 본인이 열등하게 느껴진다고 (왜 하필) 나에게 토로하였다.

몬트리올의 겨울은 지독하게 길다. 1년 중에 6개월 이상이 눈으로 뒤덮여 있다. 처음에는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그 절경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절경으로 보이는 것은 순간일 뿐이다. 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우리나라로 치면 가을 정도의 날씨였는데, 연구소 사람들이 웬 스키복을 입고 연구소에 출근하는 것을 보고 패션테러리스트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고는 나도 패션테러리스트 대열에 재빠르게 동참했다. 몬트리올의 겨울을 나려면, 스키바지와 캐나다 구스, 그리고 온 얼굴을 꽁꽁 둘러싸서 보호하고, 두꺼운 모자도 꼭 써야 한다. 머리 손질을 해도 어차피 다 헝클어지고, 화장을 해도 곧 지워진다. 오히려 얼마나 잘 추위를 방어했는지 여부가 그들의 패션의 척도일 것이다.

내가 있던 연구소는 빅 페이퍼를 쏟아내는 굉장히 productive한 연구소로 유명했는데도, 오후 4시만 되면 연구소가 텅 비어있게 느껴질 만큼 썰렁했다. 도대체 이들이 좋은 연구를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열심히 관찰했다. 학문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노하우, 우수한 인력 보유 등은 당연히 예측한 것 이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연구소 구성원 개개인의 시간 관리와 몰입의 강도가 대단히 높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10시에서 4시 정도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점심 조차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특별히 회의나 미팅 등이 없었다. 의논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 즉시, 화이트보드에 도식화하면서 동료연구자들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을 한다.

몬트리올에서 생활할 때 우리나라는 김영란법 도입으로 떠들썩했다. 내가 소개하는 몇 가지 몬트리올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확실한 더치페이 문화였다. 예를 들어, 10명의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가서, 중국요리를 share해서 주문하고, 음식값이 총 154달러가 나왔다. 주인이 정확히 10명이고 1인당 15.4 달러라고 얘기하고, 카드단말기 하나를 10명에게 돌리면서 각자의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좀 당황스러웠는데, 생각해보면 오히려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다.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와 식사를 하고 나서, 더치페이 방식으로 계산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당황해하던 기억이 난다. 사소한 밥값은 물론이고, 연구소에 있는 프린터용지 한 장이라도, 그 무엇 하나 낭비하거나 허투루 쓰는 것이 없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을 가진, 엄청나게 많은 나무로 뒤덮인 나라에서 말이다.

지난 겨울,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교정의 눈 덮인 풍경에, 몬트리올의 하얀 눈세상을 떠올리며 그리워했다. 낯선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느끼고 즐겼던, 몬트리올에서의 시간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