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 399호
  • 기사입력 2018.07.16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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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소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것은 약 2년 전 즈음에 산 한 책에 관한 이야기다. 그 책은 제목이 길었다. 『"바쁘게 살면서도 불안한 당신을 위한 11가지 처방":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늦은 밤 밀린 일들을 얼추 끝내고, 택배 상자에서 책을 꺼내 옆구리에 끼우고,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 한 캔을 손에 들고, 안주로 먹을 견과류 한 봉지를 챙겨 안방에 들어서자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물었더랬다.

"산거야?"

아마도 '읽으나 안 읽으나 지식의 총량에 전혀 변함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 책을 설마 읽으려고 손수 돈과 시간을 들여서 산거야?'의 줄임말이었을 것이다. 나라도 그 책을 산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터이다. 제목만 읽어도 왠지 이미 내용을 모두 알 것만 같은 담백하고도 정직한 제목의 책 아닌가. 다독가로 유명한 한 후배는 당시 나에게 "누나는 요즘 무슨 책 읽어요?"라고 물었다가 "아. 나, 며칠 전에 『"바쁘게 살면서도 불안한 당신을 위한 11가지 처방":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책을 샀어."라는 답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관찰하는 시선과 흥미로운 억양을 가미하여 "오호. 그런 책도 읽으시는군요."라고 했더랬다. 이런, 뭔가 진 느낌 같으니라고. "『근대 공문서의 탄생』을 읽고 있어. 호적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가 담겨 있더군."이라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남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안심이다.

 "응. 샀어. 나한테 꼭 필요한 책임."

그 날 밤 나는 책을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놓고,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켜고, 바로 아이패드를 집어 들어 '아는 형님'을 보다 잠들었다. 어차피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니었다. 내가 안 읽은 책이 한 두 권인가.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치고 책이 많은 편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연구실을 처음 방문하는 학생들 열 명 중 한 명 정도는, 진심이든 거짓이든, 서가를 흝어보며 "와. 책이 정말 많네요."라고 말하곤 한다. 책이 많지도 않은데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머쓱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상황을 모면하고자 책 읽듯이 기계적으로 "읽은 책은 거의 없어요."라고 대꾸하는데,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은, 진심이든 거짓이든, 재미있다는 듯 웃어준다. 그 웃음을 보면 안 그래도 머쓱한 마음은 곱하기 이가 된다. 내 말이 재미없는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학생에게 말해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매번 고민 되기 때문이다.

읽지 않고 꽂아 둔 책이 태반이라는 사실이 딱히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대학원 시절 내가 존경했던 한 선배는 술에 잔뜩 취해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은 책을 많이 봐야 해. 책은 정말 좋은 거야. 책은 제목만 쫙 읽어도 공부가 된다니까." 그렇다. 패션의 안목을 높이기 위해 굳이 많은 옷을 일일이 입어볼 필요는 없다. 패피들이 많이 모이는 골목에 종종 들려 카페에 반나절씩 앉아만 있어도 패잘알이 될 수 있는 것처럼(아아, 물론 나에게 그런 높은 안목이 생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것은 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을 그 날의 술자리는 나에게 선사하였다. 책이란 제목만 봐도 유식해지는 것이다(그 뜻이 그 뜻이 아니었다는 것은 나도 알지만, 술자리의 발언은 왜곡해서 들어야 맛이라는 것은 당신도 알 것이다).

서가에 책을 진열할 때 펼쳐보기 편하게 눕혀서 놓지 않고, 제목만 보이게 쫙 세워놓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왠지 나만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 무식한 기분이 들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평생 읽지도 않을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천천히 산책을 하다보면, 그래도 나는 도서관 몇 째 줄에 가면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알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세상 쓸모없는 정보지만, 모름지기 지식인이란 쓸데없는 지식 한 가마니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한 가마니 중 반 가마니 정도는 어느 책이 어디에 있더라는 정보로 채워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저 두꺼운 독일어 책을 온전히 읽어내려면 몇 주는 족히 걸릴 텐데, 제목만 읽으면 아무리 또박또박 속으로 '-ch[커와 허와 크와 흐의 2/3 지점 즈음의 그 어딘가에서 가래끓는 소리로 읽어야 한다.]' 발음까지 해가며 읽어도 10분에 50권은 가뿐히 읽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효율적인 독서법도 없다.

사실 돌이켜 보면 책은 안 읽고 책 제목만 읽는 습관은 어릴 때 이미 만들어진 것이다. 자랑이지만, 우리 집에는 박영사 문고판 시리즈 전권이 있었다. 표지의 대부분이 붉으딩딩(이 책의 표지를 실물로 목격한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지 알 것이다.)한 네모박스로 감싸져 있는 손바닥만 한 책 몇 백 권이 큰 방 벽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내가 보기에도 꽤 멋졌다. 지금은 몇 권인지 기억도 안 나는 몇 백 권 중 또 몇 백 권의 제목은 한자로 되었던 덕에 나는 방과 후 길고 길었던 오후를 그 몇 백 권의 제목을 읽으며 때때로 한자를 익혔고, 몇 달에 한 번씩은 내가 제목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만 모아 책장 여섯번째 줄 제일 오른 쪽부터 배열하고, 그것이 모두 몇 권인지 센 다음 그것이 전체 권수 중 몇 분의 몇인가를 약분하고, 지난 번 보다 몇 퍼센트가 증가하였는지를 계산하며 보냈다. 수많은 고전들과 저자들의 이름, 한자, 수학을 동시에 익히며 발전을 추구하는 자기주도적 학습방법은 개뿔, 참 할 일 없는 학생이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그 많은 책 중 내가 실제로 읽은 책은 1/5도 되지 않으며, 그나마 태반은 소설이었다. 물론 소설이 아닌 것도 있었는데, 루소의 '에밀'이 대표격이다. 아직도 '에밀'을 처음 읽던 때가 생각난다. '에밀'의 두 번째 페이지를 읽고 있을 때 때마침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고, 혼자 뭐하냐는 질문에 '에밀'을 읽고 있다고 대답했다. 흠칫 놀라며 누가 쓴 '에밀'이냐고 물으시길래 무심히 '루소'라고 답하였다. 그러냐며 조용히 전화를 끊으셨지만, 지금 와서 짐작건대, 아마 속으로는 '국민 학생이 벌써 루소의 에밀을 읽다니 내가 천재를 낳았구나'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에밀과 탐정들'의 번외편 정도로 생각하며 읽는 중이었다는 것을 그분은 아직도 모르신다. 어쨌든 난 '에밀'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도 탐정들이 안 나오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이고, 그 책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으로 낙인찍혔다.

이런 식이었으니 책을 전부 읽으나, 책 제목만 읽으나, 지식의 총량과 영혼의 깊이가 매한가지라는 믿음의 씨앗은 10대 초반에 이미 뿌려진 것이었으리라. 그런 연유로 『"바쁘게 살면서도 불안한 당신을 위한 11가지 처방":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는 택배 도착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앞으로도 읽을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를 바쁘게 만드는 일들이 사라지기라도 하겠는가. 사실 바쁜 일들이 모두 사라져야 비로소 이 책을 집어들 마음의 여유가 생길 텐데, 그때 가서는 이 책을 읽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제목만으로 충분하다. 제목 위에 시원한 맥주캔을 올려놓고, 검정 글자 위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보면서도 코팅된 비싼 표지 덕에 내지가 젖을까 걱정 한 번 하지 않은 채 예능이나 잠깐 보다가 잠들 수 있다는 것, 읽지도 않을 책을 굳이 사서 2년 째 치우지도 않고 있는 사람을 보며 "산거야?"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잔소리를 갈음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소중하다. 여러분도 한 권 사 두실 것을 권한다. 이런 귀한 책은 절판되면 구하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