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사랑을 통한 내 인생의 여정 -
The Show Must Go On

  • 412호
  • 기사입력 2019.01.28
  • 편집 연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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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승철 생명과학과 교수


2018년도 2학기 생명과학2 강의를 수강한 학생이 성균웹진 편집장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편집장은 원고를 부탁했고 나는 이 원고작성을 부탁받았을 때 많이 망설이게 되었다. 우선 글을 조리있게 쓰는 능력이 부족하고,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학생들한테 전달해줄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50살이 넘은 이후로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8년의 교수생활, 그리고 성균관대학교에서 9년의 교수생활을 경험해 보면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자칫 나이 먹어가는 교수의 잔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짧게나마 식물 세계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가는 내 삶의 여정을 우리 후배 학생들한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구상에 약 1,750만종의 생물이 발견되어 기재되었다. 물론 인간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그 중에 한 종이다.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몸은 약 37.2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세포 1개가 존재할 때 다른 생물세포들(박테리아 등)이 약 10개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과연 “우리는 인간인가? 아니면 다른 생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지구상에 알려진 유관속식물(vascular plant)은 약 391,000종 정도이고, 약 94%인 369,000종이 현화식물(flowering plant)이다. 우리 지구 역사상에 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식물은 지구 역사와 인류 문명을 바꾼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약 10,000-12,000년 전에 발생한 식물의 작물화(plant domestication)일 것 이다. 아마도 이러한 사건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 인간은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서 동물을 사냥하고, 곡물과 과일을 수집하고 있을 것이다. 식물의 작물화를 통해 잉여농산물이 축적되고, 이것을 통해 노동을 하지 않는 계층이 나타나 이들이 각종 사상과 문화, 제도를 구축하면서 사회와 문명이 형성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식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식물 작물화를 통해서 인간의 삶이 더 나아졌을지는 별개의 질문이지만.


“식물은 녹색동물이다”. 흔히 우리는 식물은 그저 아름답고, 움직일 수 없으며, 정적으로 보여 모든 것이 다른 생물들에 의해 결정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되었다. 비록 식물은 움직일 수 없지만 바람, 곤충, 새, 물 등을 통해 수분을 하고 성공적으로 자신의 종자들을 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손번식 과정에 인간을 이용하는 것 또한 예외는 아니다. EBS 다큐프라임 “녹색동물(Green Animal)” 은 새로운 관점에서 식물의 세계를 3부작으로 (1부-번식; 2부-굶주림; 3부-짝짓기) 잘 보여주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꼭 한번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http://home.ebs.co.kr/docuprime/newReleaseView/303?c.page=3) 식물은 뇌가 없어 감각과 지능이 없어 보이지만, 지성과 욕망을 갖고 모든 것을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경이로운 녹색동물이다. 지금 이 순간도 식물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하고 있다.

1985년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입학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이로운 식물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 시기이다.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경우이지만 부모님은 내게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으셨고, 단지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2학년 때 이상태 교수님의 식물분류학 전공수업을 듣고 나서 2학기부터 시작한 식물분류학 연구실 생활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식물분류학은 용어나 학명 등 암기가 많아서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었는데, 자발적으로 여러 연구실 일들을 하고 석사, 박사 선배님들의 연구를 보면서 식물분류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학문인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3학년 때는 항상 땅만 보고 다니면서 “너는 어떤 종이니?”라는 궁금증과 다른 종들과의 관계가 궁금해지면서 한국 식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소중한 2년 반의 학부 연구실 생활을 마치고 시작된 미국 이민은 나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태 교수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시작된 켄트주립 대학교에서의 석사과정을 시작으로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의 박사과정, 인디애나 대학교에서의 박사후연구원,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캠퍼스 식물학과 교수로의 식물 사랑에 대한 나의 여정은 모두 멘토들에 의해 결정 되었다.


학부지도 교수님인 이상태 교수님의 석사 권유를 뿌리치고 미국 이민자로서 집배원, 공원 경비원(park ranger)이 될 생각, 석사지도 교수님인 Shirley Graham의 박사진학의 적극적인 추천, 박사 지도교수님인 Daniel Crawford의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연구 주제 제안, 박사후연구원 시절 지도교수님인 Loren Rieseberg의 적극적인 교수직 추천 등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 삶에서 식물 사랑은 멈추었을 것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아마도 식물 동정할 때 이분법적 검색표(dichotomous key)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자기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검색표의 방향이 바뀌고, 인생 또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석사, 박사, 박사후연구원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지도 교수님들의 교육과 연구에 대한 열정, 끊임없는 식물에 대한 탐구를 통해 연구자와 교육자가 걸어 나가야 할 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분들을 많이 닮아가고 싶지만 항상 많은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교수직을 그만두고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이상태 교수님의 후임으로 부임하는 것은 한국 대학원생과 후배 학부생들을 가르친다는 기분 좋은 설레임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학부과목인 “식물분류학”을 통한 후배 학생들과의 교류, 제주도와 울릉도에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들에 대한 연구를 대학원생들과 진행함으로서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게 되었고, 식물 사랑의 참된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해외 여러 나라 연구자들과의 채집과 공동 연구도 값지고 나의 존재 및 열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예, 일본, 대만, 라오스, 러시아, 멕시코, 미국, 베트남, 스페인-카나리제도, 영국, 중국, 지중해, 칠레, 호주 등). 나의 식물 열정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


전공 및 생명과학2, 고급생명과학 수업을 하면서 나는 많은 농담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모든 것에 임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자기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셋째는 우리는 항상 자신에게 있어 “안도감이 느껴지는 공간(comfort zone)”에 머무르려고 하는데 그 틀을 깨고 과감히 도전하고 진취적인 생각을 갖으라는 것이다. 넷째는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 또는 학문적인 면에서의 옳지 않은 부조리와 부당성과 절대 타협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을 존중하고, 똑같은 인격체인 모든 사람들을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자기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여정은 참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삶에서 각자의 역할과 사회에 대한 기여, 책임은 아주 중요하다. 식물 사랑에 대한 나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이것을 통한 나의 인생 여정은 너무나 의미 있고 행복하다. 너무나 많은 재능을 지닌 우리 학생들이 나와 같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를 인생에서 꼭 찾았으면 좋겠다.


“Keep your eyes on the stars, and your feet on the ground”

- Theodore Roosevelt

[사진설명: 왼쪽 맨위 오랫동안 연구하고 있는 Spain 카나리섬에서, 두번째는 한국의 울릉도 고유종 연구를 위해서 대학원 학생들과 (뒷줄 왼쪽부터: 전지현, 석/박사 통합과정,본인 앞줄 왼쪽부터: 길희영박사, Petra Junes, 석사과정; 김선희박사), 맨아래는 학부과목 "식물분류학" field trip, 2018, 서울대학교 관악수목원에서 학부학생들, 조교 대학원생들과.

오른쪽 사진은 항상 수업 시작때 사용하는 만화. 긍정적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