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후에 깨달은 또 다른 배움의 길

  • 467호
  • 기사입력 2021.05.13
  • 편집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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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해룡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오랫동안 봉직하던 학교를 떠나 정년을 하면서 곧바로 고향 공주로 돌아왔다. 낙향이 아니라 귀향을 한 것이다. 28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귀향하던 날에 어린 시절 어머님과 함께 걷던 기억들이 수채화 같은 풍경이 되어 돌아왔다. 어머님을 뵈러 가는 것 같은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고향으로 가는 정년의 발걸음은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고 귀향이 되도록 하였다. 귀향과 낙향은 비슷한 말이지만 낙향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라는 뜻의 다소 불명예스러운 의미도 있다. 학교에서의 정년이라는 임무를 잘 마치고 고향으로 향했기에 나에게는 ‘귀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낙향(落鄕)이라는 말을 주로 썼지만 이제는 이 말이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서울이라는 도시의 의미가 갖는 절대적 가치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모든 인과관계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서울살이를 떠나서 시골에 온 것이 말이 귀향이지 사실은 옛날 선비들의 귀양살이 같은 모습을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오히려 나한테는 이 귀양살이가 오히려 학문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재직 시에 시간에 쫓기며 살다가 이제 조금은 시간의 여유와 자유로움이 있어서인지, 매일 왜 이리 읽은 책이 많은지 놀라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은 코로나 영향도 있었지만 정년(停年)이 아니라 丁年(20대를 일컫는 표현)의 시간을 맞는 듯했다. 이러한 가운데 원고 청탁을 받으니 한편 괜히 쑥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가 성균관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마음이 들어 기쁘기도 했다.


명예교수는 ‘멍에교수’라고 늘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했는데 학교를 떠나보니 이 멍에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있다. 멍에는 강제가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이 일흔을 향하며 깨우쳤다. 이 깨우침 속에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가 마음을 강타하는 생활을 요즈음 하고 있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이 문장은 학문하는 즐거움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라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동서고금의 수많은 서적 가운데 배울 學자로 시작하는 책은 논어뿐이다. 논어에서는 인간사를 바로 生則學(생즉학)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時習(시습)은 가장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법론이다. 習자는 어린 새가 스스로 날기 위하여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배움의 방법을 눈에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學(학)과 習(습)을 동시에 놓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바로 思(사)를 중시 여겼다. 여기서 思는 思索(사색)을 말하는 데 공자는 이것을 學과 이렇게 연결했다.


子曰 學而不思, 則罔, 思而不學, 則殆(爲政篇 15장)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이러한 공자의 배움의 전제조건을 잘 실천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고려시대의 학자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를 꼽을 수 있는데, 이 분은 공주에서 절도사를 했다. 이인로가 쓴 파한집(破閑集)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집인데 여기에 공주(公州) 이야기가 들어있다. 문화를 통해 지역민을 화합시키고 생활을 윤택하도록 한 공주동정기(公州東亭記)가 이 파한집에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성균인들이 21세기를 열고 새로운 길을 내는데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미 고려시대에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이해하는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음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설립된 성균관의 정신을 잇는 성균관대학이 21세기에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의 의미를 높이며 구현하는 둥지며 터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도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지만, 성균관대학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테크놀로지인 AI를 주도하는 대학으로 우뚝 서며, 이에 기초하여 새로운 문화 행위를 끌어내는 모습은 매우 자랑스럽다. 총장의 AI 졸업사가 이것을 증명하는 보기가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내리라 굳게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창의력과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사색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0대에 사색하는 맛을 알지 못하면 배움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지 못한다. 공자는 배움과 관련하여 4가지 인간 유형을 제시하였다.


孔子 曰 生而知之者는 上也요 學而知之者는 次也요

困而學之 又其次也니 困而不學이면 民斯爲下矣니라.(季氏篇 9장)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상등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는 자는 또한 그다음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우지 아니하는 사람은 곧 최하가 된다.


과거 우리 성균관의 선배들은 이 구절을 엄청나게 암송하였다. 배워야 산다는 말이 여기서 출발하였다. 논어에서 63회의 學이 나오는 반면에 知는 83회가 나온다. 知는 學이 낳은 열매요, 수확물이라는 말을 방증하는 것이다.


정년(停年)을 하고 새로운 丁年의 마음을 끌어내며 학문의 길, 배움의 길을 되돌아보니, 통찰력이 매우 부족했던 지난날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진다. 학교에 있을 때 더 다양하게 탐구하지 못한 것이 내내 가슴에 남아서인지, 새벽에 잠이 깨면 이 생각으로 뒤척이고 또 뒤척이게 된다.


학문 간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음을 소소한 시골의 생활에서도 새삼 느끼고 있다. 농사일이 육체노동이 아니라 이제는 문화노동이요 철학노동인 것을 체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농사일에도 AI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하물며 여타 두뇌노동에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성균관대학이 AI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새로운 문화 행위를 선도하는 배움의 터, 공간, 기관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모든 명예를 높여 줄 것이다. 이곳 공주에서의 시골생활은 파한집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以農心行無不成事(농부의 마음으로 일하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를 가르쳐주는 새로운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