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쟁을 위하여

  • 483호
  • 기사입력 2022.01.17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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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재석 유학대학 및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주임교수


넷플릭스 9부작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장안에 화재였다. 개봉하자마자 넷플릭스 TV쇼 부문 최장기간 1위에 이어 전 세계 1억 1,100만 가구 이상 시청하여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내용이 불편하면서도 생존경쟁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승선을 넘어야 한다는 게임의 룰이 현재의 삶과 닮았다는 공감 때문이지 않을까 추론해 본다.


옆 눈 가리고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쉼 없이 앞만 보며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입시지옥을 통과하면 끝날 줄 알았던 경쟁은 다시 취업의 좁은 문으로 이어지고, 취업에 성공하면 다시 승진과 결혼, 집장만과 돈 등으로 경쟁은 지속되고 있다. 평생을 긴장 속에서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 인생이라면, 먹먹하기만 하다.


경쟁은 과연 삶에서 필요한 것일까? 엄혹한 무한경쟁 말고 아름다운 경쟁은 없는 것일까? 공자는 말한다. “인을 행하는 일을 마주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當仁 不讓於師] ‘當仁’의 仁은 타자를 자기처럼 아끼는 마음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선한 마음과 관련된 것으로, 인간다움의 근거이자 이상이다. 當은 담당하다는 의미이다. 혹은 마주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인을 행하는 일을 마주하거나 그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不讓於師’의 不은 동사의 의미를 부정하는 부정사이고, 讓은 양보한다는 의미이다. 於는 방향을 가리키는 어조사로 ‘~에게’의 뜻이고, 師는 스승이다.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스승은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선생님과 어른 가운데 가장 높은 분으로, 음식을 먹을 때나 자리에 앉을 때 먼저 드시게 하거나 먼저 앉게 양보한다. 겸양의 미덕이 우선되는 관계임에도, 공자는 인을 행하는 일은 앞 다투어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경쟁이라 하면, 적자생존의 밀림을 연상한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생존할 수 있기에, 경쟁은 우등한 자와 열등한 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를 갈라치기 한다. 경쟁에서 이긴 승자만이 존재의미가 있고, 낙오한 패자는 가치 없는 존재라고 평가한다. 게다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패자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은 승자 단 한사람 외에 모두 패자라는 편견을 전제하고 있다. 포기하면 즉결 처분의 대상이 되어 무가치한 인간이 될 뿐이다. 그런 경쟁에는 선의가 내포되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경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쟁은 발전의 동력이 되어, 바람직한 결과를 유도하기도 한다. 경쟁을 통해 서로 견주면서 자극받고 분발하여 발전하게 된다.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고 주력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분야는 경쟁자가 많아 더 발전할 수 있다. 만일 막강한 경쟁자가 있다면 수준이 더욱 향상될 수 있다.


『중용』에서 공자는 과정이 공정한 경쟁을 칭송하였다. “활쏘기는 군자다운 모습과 유사하다. 활을 쏘아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고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냥으로 전투기술을 연마하였고, 사냥을 대신하여 짐승 가죽을 과녁으로 삼아 포획하는 활쏘기 연습을 하였다. 평시에는 활쏘기가 덕행을 함양하거나 인재를 선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때에는 사람마다 힘이 다르기에 가죽 과녁을 뚫는 힘을 위주로 하지 않고, 적중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장소 등의 이유로 射禮를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투호로 대신하여 간소하게 진행하기도 하였다.


활쏘기는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바르며, 활과 화살을 잡은 것이 모두 확고해야 적중할 수 있다. 자기가 바른 후에 활을 쏘고, 적중시키지 못하면 ‘反求諸己’라 하여 돌아보아 자신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다. 패자는 승복하고 벌주를 마시며 승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승자 역시 술을 권하고 축하받되 과시하지 않는다. 자신을 이긴 자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 것은 적중의 실현 여부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쟁은 승패를 다투는 것이 기본이지만, 활쏘기의 목적은 힘자랑을 하거나 남을 이기는데 있지 않다.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고, 집중하며 활을 쏘아 자기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경쟁에서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지 않고 환경 탓, 남 탓만 하며, 이기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경쟁의 목적이 자기함양이 아닌, 남을 이기는 데에만 있는 것이다. 그런 경쟁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하여 잔혹하게 만든다. 서로에게 발전을 가져오는 경쟁, 지고 나도 아쉽지 않은 경쟁은 경쟁의 과정에서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떳떳하도록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공정하게 해야 가능하다.


‘靑出於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쪽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도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정당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경쟁자를 이기고 스승 역시 넘어서면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아름다운 경쟁은 과정과 결과 모두 공정하다. 물론 경쟁의 과정과 결과가 좋은 것은 목적이 바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외모, 학력, 직업, 능력, 재산이 나를 당당하게 하는 전부라고 착각하고,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 1번 참가자 오일남은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모두 사는 게 재미없다는 거라고 말한다. 돈이 많아도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기에,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만들어내는 추악함과 잔인함을 관람하는 게임을 통해 재미를 느끼려 했다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는 것이 하는 것 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음으로, 죽기 전에 관중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 쾌감을 느끼기 위해 직접 게임에 참여했다는 그의 고백은 인간 욕망의 끝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경쟁의 목적은 ‘인을 행하는 일[當仁]’처럼 자기답게 살고 자기를 완성하는데 두어야 한다. 외적인 것은 스승에게 양보할 수 있지만, 자아실현의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 남들이 규정하고 사회가 우선하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영혼 없이 메마른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에도 아쉽지 않은 가슴 뛰는 일에 매진해야 경쟁이 즐겁고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되지 않는다.


바둑 용어 가운데 ‘着眼大局 着手小局’이라는 말이 있다. 거시적으로 멀리 내다보되 한수 한수는 세심하게 놓으라는 뜻이다. 산 정상의 최종 목표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봉우리를 차근차근 올랐을 때 이를 수 있다. 궁극적인 방향을 올바르게 정하되, 미시적인 목표를 구분하여 긴 호흡으로 매진해야 한다.


오일남 역을 맡은 오영수 배우는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한테 ‘괜찮은 놈’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현실에서의 그는 오징어 게임 마지막에서 1등을 한 주인공의 공허한 뒷모습을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그게 어디 승자로 보이냐고 말이다. 진정한 승자라 한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닐까 말한다.


경쟁은 모름지기 방향도 올바르고 과정도 정직하여, 경쟁으로 승패가 나뉘어도 참여한 사람 모두 격려 받고 자아실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경쟁이어야 한다.


오늘 하루 누군가와 경쟁하며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면, 두 가지 돌아봄의 성찰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첫째, 오늘의 경쟁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거나 남을 이겨 나를 자랑하기 위한 밖에 것만 쫓는 경쟁은 아닌지. 경쟁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 스스로 가치있게 여기는 일에 매진하여, 자기다움을 완성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외물을 추구하거나 남의 시선에 주목받기 위한 경쟁은 끝내 만족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정 역시 고통스럽다.


둘째, 남을 이기려고 집중하다 편법과 요행을 바라며 정당하지 않은 수단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정당하지 않은 방법은 나를 속이고 떳떳하지 않게 한다. 거짓 없이 정직하게 자기 수준에 맞게 차근차근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경쟁의 유일한 방법이다. 경쟁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완성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다움을 완성하는 목표를 두고, 수준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경쟁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한층 더 발전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다움을 찾아 주변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름다운 경쟁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가꾸면서, 나로 인해 주변에 감동을 선사하는 가슴 뛰고 멋진 일임을 고전 『논어』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