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비결

  • 493호
  • 기사입력 2022.06.13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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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재석 유학대학·학부대학 교수



분노의 감정이 이는 상태를 ‘화난다’고 한다. 불처럼 뜨거운 분함이 마음에서 일어나 열이 나기 때문에 ‘불 화(火)’자를 쓴 것이다. 게다가 분노가 사회에 만연해서인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킹 받네’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마음에 불이 나 ‘열 받다’에 킹(KING)을 붙여 극도로 화난 감정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화를 다스리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절실해 보인다.


물론 살면서 화내지 않을 수 없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부정한 모습을 보고 화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만 마음에 쌓아 두거나 극단적인 표출은 개인적 화병과 사회적 범죄로 이어진다.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화(火)는 필연적으로 화(禍)를 불러온다.


▩ 화를 절제해야 하는 초보적인 이유


『논어』에서는 ‘분사난(忿思難)’이라 하여 일반 사람들을 위한 화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였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마주하게 될 곤란한 상황을 생각하며 화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 표현하거나 지나치게 드러난 화는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속담에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 한다’는 말이 있다. 화가 올라올 때 칼로 마음을 쿡 찌르듯 아프지만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면 큰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소하게 시작된 다툼에서 화를 절제하지 못해 씻을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희노애락의 인간 감정 가운데 화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화를 내면 간이 비장을 상하게 하고 비장이 상하면 다른 장기도 모두 상하게 되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화를 내면 건강을 해쳐 명대로 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큰 재앙을 맞이할 수도 있다.


▩ 화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처방


다만 내키는 대로 화를 내어 닥칠 곤란 때문에 화를 참는 것은 화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화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방법을 두고 『논어』는 말한다.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지 않는다.[不遷怒 不貳過-「雍也」]”


‘불천노不遷怒’의 不은 동사의 의미를 부정하는 부정사이다. 遷은 옮긴다는 뜻이다. 怒는 분하고 화남을 뜻한다. 갑으로 인해 화가 났음에도 을에게 화를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혹자는 안연이 화를 옮기지 않았다는 것이 곤궁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이 귀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며 즐거움을 잃지 않은 태도를 형상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불이과不貳過’의 貳는 두 번 이상 반복한다는 의미이고 過는 잘못이다.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산은 貳가 거듭 반복하여 쌓인다는 종적의 의미가 아니라 ‘나누어 들다[分携]’, ‘양쪽에 속하다[兩屬]’는 횡적의 의미라고 풀이한다. 잘못을 하고 나면 허물을 고치려는 선한 마음과 허물을 고치지 않으려는 불선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수양을 통해 마음에 조금의 때도 남기지 않으면 불선한 마음은 사라지고 선한 마음만 드러나서 잘못에 대한 두 가지 마음이 나뉘지 않게 되므로 ‘不貳過’라 했다는 것이다.


노나라 애공이 제자 가운데 누가 ‘호학(好學)’하는지 묻자, 공자는 망설임 없이 불행히도 단명하여 지금은 없지만 안연이 배움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애공은 애초 누가 시서예악(詩書禮樂)과 같은 지식 배우기를 좋아하는지 물었을 수 있다. 공자는 객관적인 학문을 배우는 것은 물론 자기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 간주하고 안연의 사례를 들어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후대 주석가들은 애공이 평소 화를 잘 내고 허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공자가 직접 지적하면 알아듣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불충으로 인한 실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했던 안연의 사례를 빗대어 애공의 개선점을 간언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 화의 두 가지 원인, 그리고 마음 수양


공자가 배움을 좋아한 안연이 ‘화를 옮기지 않았다[不遷怒]’고 극찬한 것은 며칠 전에 났던 화를 시간을 달리하며 지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갑에게 났던 화를 대상을 달리하며 을에게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현 퇴계는 마음을 거울로 비유하였다. 맑은 거울은 사물을 비추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듯 마음 역시 현재에만 감응하며 희노애락의 감정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이 본질이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예단하면 거울에 때가 쌓여 대상을 바로 비추지 못한다.  


화의 원인은 마주한 대상에 있지 자기 마음에 있지 않다. 자기 마음에 남아 있는 화에서 화가 옮겨지고 있다면 대상과 무관하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남아 있는 화를 다스려야 적절하고 상식적으로 화를 낼 수 있다. 


화를 근본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은 수양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맹자는 잃어버린 닭과 개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하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자기 잃어버린 본심 찾을 줄 모른다고 비판한다. 거울을 닦아야 거울 기능을 할 수 있듯 깨끗한 마음을 회복해야 화병에 걸리지 않고 극단적인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에는 온 힘을 들여 닦아 내야만 때 한 겹을 겨우 벗겨 낼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닦기를 반복하면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지 않게 되고[不貳過] 힘을 점차 적게 들여도 거울을 맑게 하여 지금 바로 여기에 마음을 집중할 수 있다. 화가 나서 열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 우선 화를 표출한 뒤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하며 화를 참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마주하게 될 재앙 때문에 화를 참는 것은 가뭄으로 나무가 시들해지자 가지만 다듬는 것과 같다. 근본적인 대안은 뿌리에 물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를 참았음에도 화난 감정이 지속되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고 있다면 우선 심호흡을 깊이 하거나 산책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난 감정에서 잠시 떨어져 화의 원인이 현재 마주한 대상에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남아 있는 화에 있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화가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화를 다스리며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수양의 노력이 필요하다.


화내야 할 때 적절하게 화내고 다른 사람에게 화를 옮기지 않는 궁극적인 비결, 마음의 때를 벗겨내어 맑은 본심을 회복하는 마음 수양에 달려있다고 『논어』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