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글쓰기

  • 515호
  • 기사입력 2023.05.12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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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인문사회과학캠퍼스 뒷산 와룡공원 등산로에서 바라본 성북동)

글 :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과 이대한 조교수


얼마 전 나의 첫 단독 저서 <인간은 왜 인간이고 초파리는 왜 초파리인가>가 출간되었다. 박사후연구원 기간 3년 반에 걸쳐서 차곡차곡 쌓은 원고가 알록달록한 표지를 입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내가 꿈꾸던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아니, 더 설렜다. 아마도 내 논문들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줄 테고, 그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학문의 매력을 널리 알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주변의 연구자분들로부터 “어떻게 연구도 하시면서 글도 쓰고 책도 내세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이 지면을 빌려 나는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논문 작성과 대중을 위한 과학 글쓰기가 무엇이 다른지, 좋은 과학 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즉 나의 ‘글쓰기론’을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려 한다.


학문 공동체 내 소통을 위한 논문 작성과 과학 대중화를 위한 글쓰기는 상당히 다르다. 후자는 어떤 면에서 등산로를 내는 일과 비슷하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현상)은 항상 거기에 있지만, 산에 직접 오르지 않고는 그 진수를 느끼기 힘들다. 과학자들은 그런 깊고 아름다운 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자신이 기거하며 매일 접하는 산골짜기 구석구석의 풍경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과학 글쓰기란 독자들에게 산속을 헤매지 않고도 과학자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풍광을 섭렵할 수 있도록 등산로를 내어주는 보람찬 일이다.


좋은 등산로를 내기 위해선 우선 독자들에게 어떤 풍광을 보여줄지 선정해야 한다. 과학 지식은 알프스산맥과 같아서 빼어난 경치들을 무수히 많이 품고 있으며, 어떤 높이와 거리,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풍경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글쓰기에 착수할 땐 가장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점지하고, 그 풍경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들을 이어서 길을 내야 한다.


동시에 독자들의 배경에 따라 어떤 난이도의 길을 놓을지도 결정해야 한다. 암벽 등반을 즐기는 전문적 독자들에게는 짜릿한 절벽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고, 교양을 넓히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서는 누구나 잘 따라 걸을 수 있는 적절한 난이도의 길을 놓아야 한다. 사실 등산로의 난이도는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에 대한 결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어떤 풍경은 오직 험준한 코스를 올라야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많은 독자에게 지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코스 위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거나 경이로운 풍경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나를 포함하여) 산에 사는 과학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본인들이 숙련된 등산가이다 보니 길을 낼 때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것이다. 때론 내가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골짜기도 누군가에겐 급류에 휩쓸려 산 아래로 떠내려가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된다. 그럴 때는 시간이 걸리고 답답하더라도 안전하게 둘러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길 자체를 잘 닦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정확한 어휘와 문장을 사용해야 하고,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연결이 유기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풍경과 적절한 난이도의 코스라도 길 자체에 물웅덩이가 널려있거나 돌부리에 계속 발이 걸린다면 등산은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없다.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은 오직 읽고 쓰고 고치는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나는 학부 시절<대학신문>에서 2년 동안 학생 기자로 활동하면서 그 훈련을 혹독하게 받았다.)


책상 위 모니터 속 백지를 마주할 때면 나는 산 깊은 곳 눈 덮인 아름다운 봉우리를 보는 기분이다. 독자들을 어떻게 이곳으로 모셔 올까 궁리하면서 좋은 등산로를 내보려고 하지만, 스스로 정한 원칙에 충실한 글을 쓰는 게 늘 쉽지 않고 자주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놓은 길을 찾아와 걸을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짧은 길을 놓을 때조차 여러 번 길을 다시 살피게 된다. 등산객의 입장이 되어 내가 놓은 길을 걸어보면 돌부리투성이인 것만 같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길을 고른다. 그래도 늘 부족하고 아쉽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는 언제나 더디고 성에 차지 않는 작업이 된다.


그런데도 눈앞의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골짜기가 자꾸 나더러 사람들을 이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오라고 부추긴다. 무엇보다 내가 완성한 등산로를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간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다시 하얀 모니터를 마주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산 바깥으로 일을 나가지 않고도 학자라는 직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산 바깥의 사람들의 세금에서 나온 연구비 덕분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등산로를 내는 일은 내가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기꺼이 산 사람-과학자들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려는 관심과 애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나는 희망하며 <인간은 왜 인간이고 초파리는 왜 초파리인가>를 썼고, 앞으로도 기쁜 괴로움으로 길을 계속 내보려 한다.


[첫 단독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