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 봄날을 기다리며

  • 441호
  • 기사입력 2020.04.14
  • 편집 박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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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보통신대학 전자전기공학부 원상민 교수



출퇴근할 때마다 지나는 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도 끝도 없는 코로나19 얘기로 마음이 움츠러들어서인지 봄기운을 마냥 즐기기는 힘든 요즘이다. 주말에 날씨가 좋길래 아이와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가 사람들 얼굴을 보고서야 마스크를 깜빡 했다는 걸 알고 집에 되돌아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회를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이 모습이 자연스럽고 익숙하기만 하다.



나는 작년까지 미국의 어느 연구실에 파묻혀 있다가 지난 2월 초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때만 해도 미국에 남은 내 지인들은 나의 귀국길을 걱정했다. 한국은 요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돼서 어수선하다던데 하필 이럴 때 귀국하게 되어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나를 부러워한다. 그곳에서는 마트에서 장보는 것마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고 정해진 인원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마스크를 구하는 것도 힘들지만 예방 차원에서 쓰고 나가도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한다. 이럴 때 미국에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어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나라의 소중함이나 고마움에 대하여 절실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밤낮으로 연구실에만 붙어 살았다.



난 올해 처음 임용되어 컴퓨터 구조론 강의를 맡았다. 길었던 공부를 마치고 학생들 앞에 서려니 걱정반 설렘반이었는데 아직 학생들을 만나보지도 못했다.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게 되면서 노트북 화면 앞에서 혼자 떠드는 게 영 어색해서 처음에는 실수도 여러 번 했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수업을 하는 나나 듣는 학생들이나 서로 불편할 테지만 온라인 수업이 없었더라면 올해 안에 개강은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또 한 번 아찔하다.



참 이상한 나라다. 선진국이고 후진국이고 간에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비상이 걸려서 숨죽이고 있는 시국에 우린 미스터트롯 결선대회 중계가 최고 시청률을 올리고, 또 거기 출연한 가수들이 모여서 코로나19를 이겨내자는 노래를 만들어 불러 흥을 돋우고 있다. 순발력은 또 어떤가? 과학기술이 앞서 있다고 거만을 떨던 열강들이 코로나 진단키트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해 헤매고 있는 와중에 우린 드라이브 쓰루를 비롯해 지역 곳곳에 선별 진료소를 운영하며 감염병을 진단 관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쓰긴 했어도 잔뜩 찌푸린 얼굴이 드문 듯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인가?


비록 이마에 마스크 자국 깊게 패인 일선 간호사 분들 보기가 송구스러우면서도, 그분들이 카메라를 향해 엄지척하는 모습을 보는 게 기분 좋고, 손바닥만한 얼굴을 마스크 속에 파묻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이 안쓰러우면서도, 한마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에 안심이 된다. 그리고 내가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참 좋다.



코로나가 어서 지나가서 매년 봄철이면 비염 때문에 재채기하느라 바쁜 나같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눈치를 좀 덜 봤으면 좋겠고, 집에 동이 난 화장지랑 라면을 카트에 담으면서 다른 사람들 눈에 사재기하는 걸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아이가 놀이터에서 마스크 없이 깔깔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