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에 공부가 꼭 필요할까? (6)
- 548호
- 기사입력 2024.10.02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522
글 : 박진성 바이오메카트로닉스학과 교수
개강을 하고 나니 확실히 캠퍼스에 활기가 넘친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학생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교수라는 직업의 큰 장점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내가 기고하는 글로 인해 우리 학생들이 더 좋은 인생의 선택을 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다. |
학과의 몇 교수님들과 면담을 하고, 이미 대학원생인 조교들 및 대학원을 진학하고자 하는 선배들과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모았다. 실제로 가장 매력적이었던 연구실은 나와 가장 친한 선배가 진학한 연구실이었다. 그 선배는 나보다 한 학번 위의 선배였는데, 학과에서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선후배 관계도 좋아 학과의 핵인싸 선배였다. 그 선배가 진학한 연구실은 ‘냉동 및 공기조화’ 연구실이었는데, 지도교수님 역시 학술적으로도 무척 훌륭하셨다. 무엇보다 이 연구실을 졸업하면 우수한 인재로 자동 검증되어 대기업(LG)에서 바로 스카우트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때 당시, 기계공학과에서는 한 연구실당 매년 3명의 대학원생 TO가 있었는데, 이 연구실은 자대생으로만 꽉꽉 채우는 연구실이기도 했다. 특히, 학부 3학년 때 수강했던 냉동-공기조화 과목에서 1등을 했기에, 누가 봐도 이 분야로 대학원을 가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옳은 선택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작은 객기가 있었나 보다. 안정된 길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학부 1학년 때 들었던 ‘생명공학 개론’이라는 과목을 듣고 고등학교 때 배웠던 생물 수업이 생각났다. 내 전공인 기계공학에 바이오를 접목시킨다면, 이미 산업화가 많이 되어버린 분야보다 더 새롭고 재밌는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가 블루오션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선택에 영향을 많이 준 것은 내 신앙적 이유도 있었다. 대학원 기간에도 성경공부를 비롯한 동아리 활동을 할 예정인데, 이런 모임을 이해해 주실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연구실이 ‘진동 연구실’ 이었다. 내 지도교수님께서는 고전 진동을 전공하셨다. 헬리콥터 날개의 진동제어 같은 연구를 시뮬레이션으로 하다가, 내가 대학원을 알아볼 때쯤, 이러한 진동을 생체분자 진동 쪽으로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생체분자의 거동과 기계적 물성을 관찰하는 연구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또한 지도교수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셔서 나와 여러가지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본인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객관화 하여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독자들에게 권한 ‘잘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하고 싶었던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 고생길이 훤했다. 대부분은 전공이 A+ 또는 A인데, 진동론은 B+이었다. 지도교수님과 면담에서 ‘진성이 학점은 좋은데 내 과목은 왜 이러니?’ 하셨던 질문이 아직도 생각난다. 대학원 생활 이야기는 정말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책 몇 권이 나올 수 있는 방대한 내용이기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누도록 하자.
그렇게 대학원 컨택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자, 실제적인 부담감과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사립대학이다 보니, 대학원 등록금이 만만치 않을 뿐 더러 부모님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과외를 하긴 했지만 학자금 대출을 알아봐야 하나 등의 염려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때 걱정된 마음에 기도를 참 많이 했었다. 신기하게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무언가 잘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졸업식을 얼마 앞두고 나에게는 아주 큰 일들이 있었다. 학과사무실에서 졸업과 관련하여 급하게 연락이 왔다. 나는 졸업하는데 무슨 지장이 생긴 줄 알고 놀란 마음에 후다닥 학과사무실로 향했다. 도착하자, 학과 사무 선생님이 장학금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졸업한 학과에서는 자대생 학생 중 1등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 시 학과 차원에서 대학원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 성대에도 최우수 학생이 우리 대학원에 진학 시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알아보자) 나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해 주시길래 설마 내가? 했는데! 대상자는 아니라는 거였다. '속으로 무슨 장난하나 그럴 거면 왜 설명해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만22세였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실제 졸업생 중에서 나의 순위는 3등이었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고 복학생 선배들과 치열하게 경쟁하여 얻은 학점과 순위치고는 무척 높은 학점이고 자랑스러워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학점 1등 대상자도 아닌 나에게 학과 사무 선생님이 말씀을 이으셨다. 그런데 대학에서 정하는 수석은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보다 학점이 우수한 학생들은 편입을 했거나, 재수강을 통해서 학점을 높였는데, 한 번도 재수강을 하지 않고 4년 동안 최소학점 기준 12학점 이상(지난 글에서 말했던 아까워서 들었던 4학년 수업들)을 수강한 학생 대상으로 학과 최우수 졸업생 상을 수여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공 공부가 너무나도 힘들어서 ‘두 번이나 같은 과목을 절대 들을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모든 과목에 임했다. 그 결과 대학에서 인정하는 기계공학과 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과대학에는 총 8개의 학과가 있는데, 학과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공과대학 졸업생 대표를 선발한다. 내가 졸업하는 해가 8년만에 돌아오는 기계공학과 대표 = 공과대학 대표가 되는 해였다. 말씀을 해주시는 선생님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러니 졸업식 행사에 꼭 참여하라고 하셨다.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부모님께 학사모도 씌워드리고, 남동생과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졸업행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 ‘공과대학 졸업생 대표’ 라고 있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던 중, 행정 직원 선생님이 오셔서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주셨다.
고려대는 총 16개 대학(공과대학, 의과대학, 정경대학, 인문대학 등)이 있는데, 이것 역시 매년 각 대학마다 돌아가며 졸업생 대표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졸업생 대표가 바로 16년 만에 공과대학 차례라는 것이다. 128년에 한번 돌아오는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5000명의 졸업생을 대표해 ‘고려대학교 100회 졸업식 학부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총장님께 졸업장을 받으며 졸업을 했다.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는데, 총장님 앞에 이름이 호명되어 단상에 올라가기 전, 짧게 기도를 했다. 그 순간 힘들었던 대학생활을 돌아보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오늘의 결과는 4년의 시간동안 기본에 충실 하려 노력했고, 능력이 부족해도 포기하지 않았고, 무엇이 옳은 길인가?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며 지내온 것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 2월 고려대학교 100주년 졸업식]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대학에서 인정한 최우수학생 (Summa Cum Laude)은 대학 차원에서 동 대학원 진학 시 학비를 전액 지원하는 장학혜택이 있었다. 기도했을 때 평안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마무리하며 요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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