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이 통하는 사회, 원칙을 지키는 사회”

  • 408호
  • 기사입력 2018.12.01
  • 편집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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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상철 학부대학 교수



1987년 6월 24일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원하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김포 공항에서 미국 유학을 위해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석사 과정을 수학하기 위한 학교는 미국 워싱턴주 이스턴워싱턴주립대학교였다. 미국 워싱턴 주 서부에는 태평양을 끼고 있는 미항 시애틀이 있고 400km 떨어진 워싱턴 주 동부 끝에 제2의 도시 인구 오십만의 스포캐인이 있다. 스포캐인에서 다시 20km 떨어진 외곽에 대학 도시 체니가 있으며 록키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 사이에 위치한 조그마한 대학교 이스턴워싱턴주립대학교가 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나는 중서부의 대형 주립대학교를 뒤로하고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는 중소형 주립대학교를 선택했다. 중소형 주립대학교에서 영어 실력을 더욱더 완벽히 해 내 전공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생소한 휴먼 커뮤니케이션학을 박사과정 이전 석사과정에서 기초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는 대형 주립대학교보다 중소형 주립대학교가 더 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유저 프렌드리 맥켄토시가 일반학생들에게 보급되기 1년 전이라 전자식 타자기를 들고 유학길에 올라서 나는 도착하자마자 시급 4달러의 학교 식당 청소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해 넉넉지 않은 부모님들의 지원에 보탬이 되려고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수학에 매진했다.


기숙사 생활할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기가 되면 가끔 거짓 화재경보(false alarm)이 새벽에 울리기도 한다. 짓궂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시험시기이면 이른 새벽 1시나 2시경 화재경보기를 고의적으로 누른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모든 학생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예외없이 기숙사 밖으로 나와야 한다. 화재경보기는 복도는 물론 방안에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특히 천장에 달린 방안 화재경보기가 실제 연기에 민감하게 작동하는 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방안에 달린 화재경보기를 못 본 터였다. 방안 화재경보기는 대단히 민감해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바로 화재경보기가 울린다고 했다. 그러나 방안에 달린 화재경보기의 민감도를 직접 실험하기 위해 담배를 피워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 실험 이전에 일이 벌어졌다. 내가 살고 있던 기숙사는 8층이었는데 각 층마다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게 전기렌지와 전자렌지가 갖춘 작은 키친이 있었다. 물을 간단히 끓이는 요리 정도는 허용되었지만 굽는 요리는 바로 화재경보가 울리게 돼 있었다. 요리를 하다 화재경보가 울리거나 고의적으로 화재경보기를 작동시키면 200달러의 벌금 처분을 받게 된다.


10월 어느 날 밤 11시 30분경 화재경보가 울렸다. 100여명의 학생들이 비상계단을 통해 밖으로 긴급히 대피하여 기숙사 밖으로 나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화재경보가 울리자마자 몇 분 지나지 않아 2대의 소방차가 달려왔다. 소방대원들은 화재경보가 울린 장소와 원인을 확인했다. 내가 거주하는 6층에서 화재경보가 울렸으며 굽는 요리가 금지된 음식을 하다 화재경보가 울린 것을 확인했으나 누가 요리를 했는가는 밝히지 못했다. 6층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20여명 정도여서 중국계 말레이시아 학생이 그 시간이면 자신의 중국 요리를 해 먹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터라 모두 그를 범인으로 추정했다. 내향적인 그 학생은 평소에도 미국학생들과 교류나 소통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그 사건 이후 더욱 따돌림과 눈총을 받았다. 나는 같은 외국 유학생으로 그 학생이 안쓰러웠다.


그 사건이 있은 몇 주후 초겨울 밤이 더욱 길어지는 11월 어느 날 밤 나는 배가 출출해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오징어를 구워 먹기로 했다. 오징어는 전기렌지에 구우면 거의 연기가 나지 않으며 조리실에 있는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리실에 가서 오징어를 전기렌지에 굽는데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오징어는 구울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가 많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간은 11시로 접어들고 있었고 11월 말이라 꽤나 추운 밤이었다. 기숙사의 모든 학생들이 피난계단으로 내려오면서 “Who did it” 하며 화를 내고 볼멘소리를 했다.


기숙사 앞에 모인 학생들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몇 층에서 울렸으며 누가 그랬느냐고 조사하고 불평을 넘어 화를 냈다. 6층에서 다시 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중국계 말레이시아 학생이 또 그랬다며 “이번엔 용서 안 할 거야” 라며 몇몇 학생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아! 큰일이군,’ 내가 했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그 말레이시아 학생이 누명을 온통 덮어쓰고 따돌림이 심해지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고백하면 벌금 200달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200달러면 당시 최저임금이 시간당 4달러가량이니까 50시간의 아르바이트 비용이라는 수학적 계산도 나왔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돈이라는 생각은 분명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하자’라는 마음을 되새겼다. 그리고 손가락질과 욕설이 섞인 공개적 비난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100여명의 학생 앞에 나가 “I did it”이라고 고백했다. 나는 오징어 굽는 것은 연기가 나지 않는 것으로 착각했고, 연기가 나더라도 미국의 화재경보기가 그렇게 민감한 것인지도 몰랐다고. 우리나라에서는 화재경보기를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다는 문화적 사정까지 변명하며 사과했다. 사과와 변명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잠자다 깨어 추운 곳으로 나온 것이 억울한지 군중 속에서 욕설(four-letter-word)이 나오기 시작하며 비난과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와 같은 층에 있는 미국 친구가 앞에 나와 “몇 주 전 같은 층에서 요리를 하다 화재 경보를 울린 범인은 우리가 누구인지 다 아는데 그 친구는 침묵하며 모른척 했다. 그러나 오늘 이 친구 쌩철 리(이상철)는 자기가 했다고 고백하지 않느냐” “누구나 공동생활하면 실수할 수도 있다” “이번 일은 이대로 넘어가자”라며 항변해주었다. 그러자 학생들의 불만이 사그라지며 상황이 끝났다. 나는 다음날 기숙사 행정실로 가서 화재경보 벌금 관련을 문의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들은 이미 어제 밤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실수로 울린 경보는 심의를 거쳐 교비로 지불하며 어제 밤의 사건은 그날 아침 회의에서 교비로 대체하기로 심의를 거쳤다고 했다.


이후에도 유학시절 기숙사 생활동안 많은 화재경보가 울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거짓화재경보이던 실수로 울리던 소방차는 달려오고 학교는 매번 출동비 200달러를 지불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짓화재경보라도 소방차가 즉시 출동한다는 원칙과 소방차 주차공간에 주차를 하면 벌금이 3~4배로 부과하는 원칙이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본이었다.


이 일로 내가 느낀 것은 ‘정직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이었다. 이후 항상 정직하고 원칙을 지키며 살려는 나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고시원 참사를 보며 화재경보기를 갖추지 않아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이 많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