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 그리고 운명

  • 410호
  • 기사입력 2018.12.26
  • 편집 연윤서 기자

글: 이상철 학부대학 교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외래어는 널리 쓰이는 용어이다. ‘소통’이라 번역하지만 맥락에 따라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몇몇 종합대학교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5년부터 커뮤니케이션 단과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이를 ‘소통대학’이라면 어색해 커뮤니케이션 대학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넓게 저널리즘, 매스커뮤니케이션, 광고홍보학 그리고 휴먼커뮤니케이션과 레토릭으로 나누어진다. 현대에 들어와 커뮤니케이션학이 가장 먼저 발달한 미국대학교는 저널리즘과 매스커뮤니케이션 학과(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광고홍보학과(Adverstising)등 사회과학 전통이 강해 사회과학대에 편성되어 인기있는 학과다. 한편 레토릭 전통을 가진 휴먼커뮤니케이션은 인문학을 기반으로 인문대학에 커뮤니케이션학과 (Communication Studies)로 독립된 학과로 편성되어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과 광고홍보학은 우리나라 대학에 전공으로 자리매김한지 수십 년이 넘었으나 레토릭을 전통으로 하는 휴먼커뮤니케이션은 아직 독립된 학문이나 학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1985년 영어영문학 전공 대학교 3학년인 나는 우연히 미국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학문이 독립학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당시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 TOEFL과 GRE에 우수한 성적을 올려야만 외국 유학을 갈수 있었다. TOEFL과 GRE 성적은 열심히 하면 되지만 요즘처럼 온라인 정보가 없던 시절이라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공 관련 정보를 알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교수님들을 찾아내 상담과 조언을 받았다. 나는 교수님들의 상담과 조언을 얻는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실적으로 영어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아 돌아오면 대체로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쉬울 것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조언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과 연구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나의 고민을 들은 지도교수님께서 하신 한마디, - Be yourself that you wanna be - 나를 비현실적인 이상의 길로 가게 했다. 1987년 휴먼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등록금 전액 면제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집안 사정도 넉넉지 않은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학위를 마칠 수 있는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전공으로 결정을 하고 열심히 학업에 충실했다.


2~3년간 장학금, 학업, 그리고 성적 모든 것이 쉽게 흘러갔다. 그러나 박사과정 필수과목인 레토릭 이론이란 커다란 장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레토릭 이론은 물론 미국 정치인의 유명 스피치들은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과정이라 나에게는 무시무시한 과목이었다. 또한 담당 여교수님은 관련 분야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석학이긴 하지만, 수업과 학점이 깐깐하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아 이 과목만 통과하면 나는 학위를 받는데’ 피할 수는 없는 이수과목이라 입학하고 몇 년 후에 수강신청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8~9명이 수강하는 강좌인데 나 혼자만 외국인이었다. 토론과 토의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세미나를 3주차 까지 열심히 따라 갔지만 생소한 레토릭과 철학 이론은 기본이고 미국의 유명 정치인들의 일생과 상세한 역사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토론으로 매주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C 학점이 분명할 것 같았다. 박사과정에서 C 학점은 치명적일 수 있어 수강철회를 하고 내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듬해 담당 교수님이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과 제발 나 외에 다른 외국인 학생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수강생만 바뀌었지 이전 해와 똑 같았다.


이 과목은 매주 정해진 논문 몇 편을 읽고 3시간 동안 그 논문들에 관해 토의와 토론을 하는 과목이다. 3시간 동안 한 두 마디만 하면 학점이 안 나오니까 모르는 것도 적극적으로 아는 척하며 나 자신을 ‘꾸미기’로 결심했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학점이니까’라는 말을 되새기며 수업이 있기 며칠 전부터 토론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하면 나는 언제 무슨 발언을 해야지, 이어서 누가 어떤 발언을 하면 그때 나는 어떤 질문을 하거나 무슨 말로 코멘트를 마무리해야지라는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 논문을 꼼꼼히 읽으며 수업에서 토의와 토론의 내용 흐름을 미리 예측해가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었다. 16주의 세미나 기간 동안 4~5주는 나의 내용흐름 예상이 적중하며 무난히 넘어갔다. 그러나 6주차로 기억하는데 교수님은 수업을 시작하며 내게 먼저 질문을 하고 수업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앗 시나리오와 다르잖아’라는 것을 인식할 시간도 없이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발언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쌩철 굿잡’이란 칭찬으로 끝을 맺었다. 그 이후 교수님은 ‘쌩철 You are smart’, ‘you are brilliant’, ‘you are genius’라는 말로 매 시간마다 칭찬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띄우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필요한 건 칭찬이 아니고 마지막 레포트를 잘 제출하고 오로지 B 학점 이상을 받는 것이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교수님이 부르시더니 나의 레포트를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투고하라고 권하며 세부 전공을 레토릭으로 바꾸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안 돼요’ ‘저는 집안 형편도 어렵고 해서 1~2년 내로 돌아가야 되요.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서구 레토릭은 너무 어려워요’라고 거절했다. 


이후 6개월 동안 그 교수님은 나의 이전 지도교수님에게 나를 자신의 연구실로 데려간다는 약속을 받아내며 나의 세부전공 교체작업을 물밑으로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끝난 박사과정을 이대로 마치고 싶다고 했으나 그 여교수님은 “Sangchul, What you can do is more important that what you are”!!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서구 레토릭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까 레토릭을 공부해서 너는 물론 너희 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엇이 된다는 것보다 무엇을 해야만 스스로 의미가 있을까’라며 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학문이라는 이상을 쫓아 유학 왔지만 서둘러 한국에 돌아와 안정된 직업에만 몰두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그분의 조언대로 레토릭으로 세부전공을 바꾸었고 그 교수님의 첫 번째 아시아계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 이후 5~6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내며 레토릭을 공부하고 유학을 마치게 되었다. 1998년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레토릭 혹은 커뮤니케이션 전공이 없어 험난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커뮤니케이션 관련 과정이 개설되어 여러 학교에 강의를 갈 수 있었으며, 2010년 이후에는 커뮤니케이션 단과대학들도 설립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휴먼커뮤니케이션과 레토릭 학문이 대학의 주요 과정으로 편성되고 언젠가는 커뮤니케이션이 독립된 학과로 개설될 것이다.


학위 후 우리나라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시절의 선택과 운명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미네소타대학교 Karlyn Kohrs Campbell 교수님의 지도로 박사과정 중 권위학술지에 게재되는 영광을 얻었으며 레토릭이라는 심오한 기초학문으로 이끌어 주신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캠벨 교수님은 2015년 한국을 방문해 대통령 레토릭과 여성 레토릭을 성균관대학교와 여러 대학교에서 특강을 하셨다. 


유학을 준비할 때 전공 선택에 있어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무모할 정도로 이상을 추구하며 부모님과 주변 분들에게 심적·경제적 부담을 드렸지만 아름다운 운명의 만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인 청춘시절 자신을 잘 돌아보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길 바란다. 전공이나 미래를 선택할 때 이상이 올바른 길일수도 있고 현실의 길이 올바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선택 또한 자신의 운명일 것이다.


 "Be yourself that you wanna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