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US Asia와 나의 성장
일본 나고야대학 법학과 교환 국비 장학생

  • 511호
  • 기사입력 2023.03.13
  • 편집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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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요재 철학과(공익과 법 연계전공 20)


- 서론


2022년은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해였다. 코로나와 함께 대학에 입학하면서 많은 권태와 무료함을 느꼈다. 새내기 배움터, MT, 축제 등 기대했던 대학생활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무척 제한된 형태로 이루어졌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학점을 잘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에 집중하여 나름의 결과를 얻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학점 기준이 완화되면서 학점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져서다. 기대했던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2년 동안의 노력이 의미 없어진 학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학생활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이런 회의감에서 벗어나고자 대학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3학년에 들어서는 할 수 있는 것에만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 결과 학과 회장, 단과대 비상대책위원장, 단과대 회장 후보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섣부른 도전은 바랐던 결과를 낳지 못했고 2월에 치러진 단과대 회장 보궐선거에서 낙마했다. 이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 대한 회의, 상황에서 느끼는 무력감, 다툼에서 오는 피로함 등 다양하고 밀도 높은 감정을 느꼈다. 이 감정들은 도전에 대한 나의 태도를 재고(再考)하도록 했다. 그렇게 다시 무력감과 권태에 휩쓸릴 무렵 우연히 CAMPUS Asia 모집 공고를 봤다.


교환학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서 마땅한 어학 성적도 없었지만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에겐 무척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최근에 겪었던 큰 실패에서 비롯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과 새로이 다시 시작하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방황했다. 하지만 2022년의 목표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이 결정은 지금까지 내가 내렸던 결정 중에서 가장 옳은 결정이었다고 자부한다.



- 일본


CAMPUS Asia를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말은 왜 굳이 일본이냐는 것이었다. 교환학생의 목적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인데 한국과 유사한 문화를 가진 일본에 가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는 논지였다. 내가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이런 논리보다는 학업적 관심과 관련이 있다. 일본은 한국에 외교적으로 중요한 국가다. 한국이 표방하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을 실현하기 위해선 미국과 긴밀한 동맹인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다. 각국의 정서가 서로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서로를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한다는 점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일본과의 관계설정이 한국이 직면한 중요한 외교적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가 관계설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CAMPUS Asia는 “상대 국가의 진면목을 공부하고 실제로 직접 소통하고 진행하는 학술, 학생 교류”가 사업 목적이라 나의 학업적 관심과 일치했다. 이것이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결정한 이유다.



- 생활


나고야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오면서 느낀 점은 본인이 가진 역량에 따라 경험의 폭과 밀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경험의 질도 자신의 내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나는 매우 기초적인 일본어를 터득한 채로 일본에 갔다. 식당에서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사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누군가와 일본어로 대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일본어로 대화가 안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말할 일이 없어졌다. 언어는 노출된 시간에 비례하여 실력이 오르는 정직한 분야인 만큼 나의 일본어 실력은 정체되었다. 반면 영어 실력은 크게 늘었다. 주로 만나는 친구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거나 유창하게 사용하는 친구들이었다.


교우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회화가 늘 수밖에 없고 수업도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수업을 따라가려고 영어 논문을 읽고 수업 시간에 영어로 발표하고 영어로 에세이를 썼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영어 실력의 상승을 가져왔다. 중요한 것은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며 이를 위한 필요 조건이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하는 것이다. 적절한 압박을 주는 환경에서 능력을 갖추면 능력이 눈덩이처럼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고야대학에서 실감했다.


여기서 만난 인연들은 모두 의미 있지만 CAMPUS Asia에서 만난 싱가포르 친구들은 특히 소중했다. 2021년부터 기존 한·중·일에 국한됐던 CAMPUS Asia 사업이 ASEAN 국가까지 확장됐다. 코로나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번 학기부터 포함됐다.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선발대로 온 친구들은 친근하고 지적이었다. 이번 학기는 코로나 영향으로 중국에서는 학생들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제한적으로 인원을 보내서 CAMPUS Asia 인원은 4명이 전부였다. 적은 인원이라 밥도 자주 같이 먹었다. 여행도 가는 등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서로 자란 배경이 다른 만큼 다양한 의견을 가진 것이 인상깊었다. 현안에 대해서 심도 있는 토론이 가능했다. 나고야대학에서 캠퍼스 아시아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공간을 제공해 준다. 방에서 수업이 없는 한 캠퍼스 아시아 학생들은 방을 자유롭게 썼다.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토론을 했다. 한국의 정치와 싱가포르의 정치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내가 ‘Legal Culture’ 시간에 싱가포르의 유교 문화를 발표할 일이 있었다. 그때 싱가포르의 유교 문화에 대해 가감 없는 의견을 던져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외에도 표현의 자유의 범위, 중국의 정치와 역사, 권위주의 체제의 명과 암, 대륙법과 영미법의 우열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의견 교환은 내 학문적 시선을 넓혀주었다. 캠퍼스 아시아에서 만난 친구들 이외에도 다양한 배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수업과 사석에서 한 여러 토론들은 제한적이었던 내 세계관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 학업


많은 학생들이 교환을 갔을 때 학업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가 우선순위가 아니어서다. 일차적으로 대부분 P/F로 성적이 나온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동기가 없다. 문화 체험, 언어 실력 증대 등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적이 우선순위다. 나는 좀 달랐다. 새로운 문화 체험이나 다양한 경험도 교환학생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지만, 학업적 이유가 우선순위였던 만큼 학업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소속 학과 학과장님의 재량에 따라 레터로 성적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도 주요 동기 중 하나였다.


수강신청 과정은 관대한 편이다. 원하는 과목은 다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 치열한 수강신청을 경험해서 이런 종류의 배려는 의미 있었다. 보통 일본어 수업 하나가 의무이고 일본법 관련 수업이나 일본 정치 관련 수업, 동아시아 국제 관계 등 CAMPUS Asia 취지에 맞는 수업을 1년 동안 4개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일본어 수업은 한 학기에 하나씩 있고 나머지 의무 전공 수업이 4개이므로 총 6개를 일년 동안 나눠 듣는다. 의무 수업과 더불어 대부분의 수업은 G30이라는 나고야대학 유학생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진다.


즉 다른 프로그램으로 온 교환학생들, 나고야대학에 특정 전형으로 들어온 유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듣는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는 일이 많고 교수님들도 대부분 서구권이다. 기본적으로 영어 프로그램은 일본인 학생들이 거의 듣지 않는다. 따라서 소수 인원의 수업이 된다.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면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대형 강의와 달리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가 많다. 한국의 수업 방식과 다르지만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전공이 철학이고 복수전공이 정치외교라 토론과 발표는 빈번한 수업방식이었다. 수업의 언어가 영어고 수업 인원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로 바뀐 것이 다른점이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니 한국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니 열심히 한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상깊은 수업으로는 ‘International Migration’이 있었다. 이민에 관한 개괄적인 내용을 다룬 수업이었다. 한국에서 이민을 전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만큼 흥미로운 강의였다. 동아시아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민자들에 대한 배척은 어쩌면 동아시아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는 기본적으로 다민족 사회라기보다는 단일민족 사회의 정체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고령화-저출산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척 부정적이다. 이는 서구권 국가들이 고령화-저출산 문제를 이민자들의 수용을 통해 해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민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의 빈도가 낮을수록 이민자들에 적대적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를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적용시키면 세 국가 모두 서로서로에게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서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에는 이해가 기본이고 이해를 하기 위해선 노출이 필요하다. CAMPUS Asia와 같이 3국 간의 교류를 증진하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결론


CAMPUS Asia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현실 도피적 성향이 강했지만 나를 다시 찾고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작은 세계에 갇혀 있던 나 자신의 학문적 소양을 확장시켰다. 권태와 무력감 속에서 변화를 원치 않던 나의 인격관도 한층 성장했다.


CAMPUS Asia라는 기준점으로 동아시아 3국의 사람들, 더 나아가 아세안 지역의 사람들까지 만나고 심도 있는 주제에 토의하면서 한일 관계에 머물러 있던 학문적 관심이 동아시아, 나아가 아시아 전반에 걸쳐 한국이 설정해야 할 국제적 관계에 대한 고찰까지 확장되었다. 동아시아는 이미 강대국들이 밀집되어 있고, 남아시아는 잠재성이 높은 국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으므로 국제 질서에서 이들과의 관계는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외 정책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꿈인 나로서는 CAMPUS Asia에서의 경험이 나의 꿈을 다시금 돌아보고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이정표로써 기능했다. 큰 실패에서 무력감을 느꼈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통해 학문적 성장과 인격적 성숙이라는 값진 성공을 경험했다. 이런 귀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주고 지속적으로 케어해주신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권철 교수님과 류일현 박사님께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