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에 나타난 사랑이야기(2)

  • 500호
  • 기사입력 2022.09.29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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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공자는 정나라에서 유행한 시가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어서 정나라 소리를 내치라고[放鄭聲] 말한다. 그것은 바로 정나라 소리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함이 없이 그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가운데 때론 감정이 과도하게 표현된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특히 유학자들은 남성보다도 여성의 과도한 애정 표현은 더욱 문제시하였는데, 이런 문제시한 시들은 ‘정풍(鄭風)’에 나온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남성의 과도한 애정 표현은 보는 관점에 따라 호방하다고 평가하기도 한 점을 참조하면 여성의 애정 표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긴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정성(鄭聲)을 배척하고 싫어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장중자(將仲子)」와 「건상(褰裳)」이라는 시를 통해 알아보자.


2. 「장중자(將仲子)」 : 은밀한 사랑 이야기


먼저 「장중자」를 통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에 속하는 강 건넛마을의 도령님을 사귄 여자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를 보자.


부탁드립니다, 둘째 도령님. 우리 마을을 넘나들지 마시옵소서. 내가 심은 버드나무를 꺾지 마소서 버드나무가 아까운 것이 아니랍니다. 범같은 우리 부모 무섭습니다. 둘째 도령님이 그립지만 부모님의 말씀이 너무 무섭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둘째 도령님. 우리 담장을 넘지 마세요. 내가 심은 뽕나무를 꺾지 마세요. 뽕나무가 아까운 게 아니랍니다. 범 같은 우리 오빠 무섭습니다. 둘째 도령님이 그립지만 오빠들의 말씀이 너무 무섭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둘째 도령님. 우리 집 정원을 넘지 마소서. 내가 심은 박달나무를 꺾지 마세요. 박달나무가 아까운 것이 아니랍니다. 말 많은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둘째 도령님이 그립지만 동네 사람들의 말 많은 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과거 남녀가 서로 연애할 경우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제대로 집안 교육을 받은 요조숙녀로서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때로는 그런 여자를 음란하다고 여겼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시의 주인공인 여자는 요조숙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여자는 부모님 몰래 건넛마을에 사는 박력 있는 남자를 사귀었다. 문제는 그 남자가 조금 과격한 남자라는 것이다. 흔히 과거 일정한 신분의 여자들은 중매를 통해 결혼한 것을 참조하면 이 시의 여자가 건넛마을 남자를 부모님 몰래 사귄 것이다. 그것은 남녀를 유별하다고 여겨 구분하는 유가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예법에 어긋난 음란한 행위에 속한다. 요조한 숙녀의 몸가짐은 아니다. 아마 이 여자는 버드나무가 심어진 물가에 갔다가 혹은 뽕잎을 따러 갔다가 우연히 둘째 도령을 만났고 사랑에 빠졌는지 모른다. 그 후 가족 몰래 두 사람만의 은밀한 사랑을 키웠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기』「악기」에 나오는 “뽕나무 사이에서 이루어진 음악과 복수 가에서 이루어진 음악은 망국의 음악이다”라는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상간복상(桑間濮上)’은 위나라에 있는 음란한 풍기가 성행한 지방으로서, 그곳에서 남녀가 서로 은밀한 만남을 자주 했다고 한다. 즉 고대 사회에서 뽕나무가 심어진 곳이나 마을에서 떨어진 물가에서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고 그런 연애의 즐거움을 읊은 노래는 음란한 가사가 주로 담겨 있고, 이런 음은 결국 나라의 풍기를 해쳐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흔히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도 더불어 참조가 될만하다. 여기서 건넛마을 도령과 사귄다는 것에서 과거 족외혼(族外婚)의 풍습도 엿볼 수 있다.


이 시의 여자는 부모와 형제 몰래 사귄 건넛마을에 사는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두려워하는 것은 그 남자가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격한 행태를 걱정하는 정도다. 아마 여자는 버드나무를 심은 물가나 뽕나무밭에서 만나자고 하면 남에게 발각되지도 않고 은밀한 만남이 가능하고, 마찬가지로 담장 근처에 와서 왔다는 신호를 하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먼 둘째 도령은 이런 점을 무시한 채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과격한 행동, 이른바 나무를 꺾고 담장을 넘는 행위를 한다. 이것은 점잖은 군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서,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한 부정적인 측면에 해당한다.


이처럼 여자가 사랑하는 건넛마을 둘째 도령이 마을을 넘어서고 한 걸음 더 마음 경계 지역 물가 근처에 있는 버드나무를 꺾는 행위를 하면서 여자를 찾아온다. 이런 행위는 「관저」에서 본 전전반측하면서 ‘애이불상’하는 군자의 행위와는 전혀 반대 행위에 속한다. 그런 과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에게 발각되고 당사자인 여자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혼쭐날 것이 두렵다. 그 다음 단계로 둘째 도령은 마을 경계를 넘은 다음 여자 집의 담장을 넘고자 하며 아울러 그 담장 아래에 심은 뽕나무를 꺾고 한 걸음 더 접근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오빠들에게 발각되고 여자는 그 오빠들에게도 혼쭐이 날까 두렵다. 급기야 둘째 도령은 여자가 사는 집 정원까지 들어오고 박달나무를 꺾기까지 한다. 사랑하는 감정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면 이제 두 사람의 관계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알게 될 것이고, 마을 사람들은 자기에게 몸 처신을 잘못한 음탕한 여자라는 비난을 할 것이 뻔하다. 이건 더욱 두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부모 형제 더 나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질지라도 여자는 여전히 둘째 도령을 사랑한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가 어떻게 처신했으면 둘째 도령이 이처럼 남의 눈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정도를 넘어선 과감한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과감한 행동은 결국 자신의 사랑하는 감정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한 결과물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에 나오는 남자의 행동과 마음 씀씀이는 「관저」의 ‘락이불음, 애이불상’하는 것과 전혀 반대의 상황이다. 유학자들은 이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이 시는 음분한 자의 시라고 규정하고 배척한다. 때론 부모의 반대 때문에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여인의 불행을 읊은 시라고도 해석한다.


[「장중자(將仲子)」에 나오는 담장을 넘는 도령님이 담장을 넘는 정황을 그린 것이다.]



3. [건상(褰裳)] : 도발적인 사랑 이야기


다음에 볼 시는 ‘‘치마를 걷고서 강을 건너가겠다[褰裳]’란 시인데, 이 시의 주인공인 여자는 앞서 본 ‘장중자’ 시보다 남자에 대해 더 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럼 정풍에 나타난 또 다른 음란시로 말해지는 「건상」이란 시를 보자.


그대가 나[여자]를 사랑하고 사모한다면, 나는 치마 걷고서 진수를 건널 수 있어.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다른 남자들이 얼마든지 있지. 이런 사정을 모르는 그대는 정신 나간 놈이야.

그대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사모한다면 나는 치마 걷고 유수를 건널 수 있어.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다른 사내들 얼마든지 있지. 이런 사정을 모르는 그대는 미치광이 바보 같은 놈이야.


이 시는 어떤 처녀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한 남자에 대해 자신의 사랑을 호소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는 것에 대한 정황을 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남자의 행위에 대해 여자는 꿍꿍 속을 앓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여인이 치마를 걷고 진수와 유수를 건넌다는 행위는 “공이여 물을 건너지 마소서” 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참조하여 이해하면 좋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이할꼬(將奈公何).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농경사회에서 물을 건널 상황이 없었던 상황에서 과거나 지금 모두 물을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다. 배를 타본 경험이 없는 경우라면 배가 조금만 흔들려도 멀미하거나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긴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주로 육지에서 전투했던 조조의 군대가 적벽강에서 배에 올라타 전투를 벌이고자 하는 상황에서 전투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도 이런 점을 입증한다. 옛날 과거 『토정비결』을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음력 6월과 7월 달에는 물가에 가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이처럼 물은 죽음이나 심각한 위험과 관련하여 이해하곤 한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물을 건널 상황에 살지 않았던 고대 중국문화에서 전통적으로 강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상징한다. 남자도 마찬가지이지만 더욱 수영을 배울 상황이 아니었던 여자로서는 강을 건넌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에 속한다. 이 시의 주인공인 여자도 우연히 강 건넛마을의 남자를 사귄 모양이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남자는 사랑한다는 ‘러브콜’을 보내지 않는다. 안달이 난 여자는 만약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진수와 유수를 건너겠다는 사인을 보낸다. 문제는 배를 타고 건넌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치마를 걷고 건너겠다는 것이다. ‘치마를 걷고 건너 가겠다’는 것은 그만큼 남자를 보고픈 마음이 강렬하기에 배를 타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이런 여자의 애정 표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여자는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다. 너 말고 다른 남자, 사내가 있다고 당당하게 남자를 향해 말한다. 즉 현재 너가 나를 무시하고 쳐다보지 않지만 나에게는 너 말고 다른 남자들이 내가 좋다고 줄을 서 있을 정도의 나름 멋진 여자라는 식으로 자존심을 내건다. 후렴의 ‘정신 나간 놈’, ‘미치광이 바보같은 놈’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잘난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남자에 대한 독설에 해당한다. 이런 독설이 나온 것은 정황상 자신이 이처럼 잘난 여자라는 것을 말해도 남자는 못본 체 하기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여자의 이런 독설은 역설적으로 여자가 그만큼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도 반증한다.


이 시는 이처럼 주위 환경을 살피지 않고 치마를 걷고 물을 건너는 무모한 행동을 할 정도로 여자가 남자를 강렬하게 사랑한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시로서, 특히 비록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지만 여자가 적극적인 애정을 표현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처럼 정나라 소리는 남녀 간의 애정 표현이 직설적이고 절제된 맛이 없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정나라 소리를 음분시(淫奔詩)라고 말하고, 전통적으로 유학자들은 배척해야 할 시로 여겼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애정 표현한 것이기에 더욱 문제 삼았다. 오늘날 페미니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적극적인 여성상을 표현한 것에 해당한다.



「건상(褰裳)」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그린 그림이다.

자신의 러브콜을 무시하는 남자[狂童]에 대한 여자의 마음이 뭔가 불만스러운 눈매와 손을 모은 모습에 표현되어 있다.



4. 나오는 말


동양의 위대한 인물들의 문집을 보면 시가 제일 먼저 나온다. 주희나 이황같은 인물들은 시가 거의 천여 수에 이른다. 그들은 사상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이처럼 과거 문인사대부들의 경우 시를 알지 못하거나 혹은 제대로 짓지 못하면 상황에 맞는 시의적절한 대화를 할 수 없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지성인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처럼 시는 동양문인사대부 문화에서 문인사대부들이 습득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