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退溪) : ‘살찐 은둔[肥遯]’에 깃든 즐거움(1)

  • 501호
  • 기사입력 2022.10.18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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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조선조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일 것이다. 이들은 각각 嶺南 지역과 기호(畿湖) 지역의 학풍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평가되는데, 이들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그 답으로 우선 퇴계는 흔히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을 주장했고 율곡이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 이기지묘(理氣之妙), 이통기국(理通氣局)’ 등을 주장했다는 이기론(理氣論) 차원의 차이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두 인물이 살았던 삶에 초점을 맞추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을 후대 인물들이 행한 퇴계와 율곡의 삶에 대한 평가에 초점을 맞추면 바로 어려운 시절에 선택한 ‘은둔한 것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려 마음이 살찌는 경지’로 이해되는 이른바 ‘비둔(肥遯)’이란 용어를 선택할 수 있다.


비둔은 『주역』「둔괘(遯卦)」 구사(九四)의 ‘좋아하면서 은둔[好遯]’과 구오(九五)의 ‘아름다운 은둔[嘉遯]’ 이후의 상구(上九) 단계로서 소인배가 활약하는 혼란한 시기의 물러남과 관련된 최상의 경지에 해당한다.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外篇) 「가둔(嘉遁)」에서 마음속에 얼음을 품고 있어 세속적인 욕망이 전혀 없는 것을 상징하는 회빙(懷氷) 선생의 은일 지향의 ‘가둔의 삶’이 유학자의 눈으로 볼 때 자신의 한 몸만을 깨끗하게 하고 삼강오륜과 같은 인간의 윤리를 어지럽히는 ‘결신난륜(潔身亂倫)’의 삶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런 기술을 참고하면 비둔은 가둔보다 더 강한 은일지향적 삶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天山) 「遯卦」의 둔은 은둔의 뜻이다. 소인들이 설치는 난세에는 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형상이다. 나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물러나는 것이 곧 나아가는 것이 된다. 괘의 구성상 중심 효와 둘째 효가 서로 잘 응하고 있어 아직은 헤쳐나갈 의지가 있으나 아래의 음효가 세게 육박하면서 올라오고 있어 자기주장이 옳더라도 앞장서지 말아야 한다. 즉 상대가 소인이라도 겨루어 볼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이같은 난세에는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임을 알려주는 괘다.


2. 신퇴(身退)한 퇴계의 비둔(肥遯)


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천하무도와 천하유도의 사회에서 어떤 삶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출처진퇴관인지를 고민하였다. 이런 점에 대해 공자는 천하유도 사회에서는 ‘의를 행하여 도에 통한다[行義達道]’라는 것을 말하고, 천하무도의 사회에서는 ‘은거하면서 자신이 실천하고자 하는 뜻을 구한다[隱居求志]’라는 것을 말한다. 맹자는 각각 ‘아울러 천하를 구제한다[兼濟天下]’라는 것과 ‘홀로 그 몸을 깨끗이 한다[獨善其身]’라는 것을 말한다. 비둔은 천하무도 상황에서의 은거구지 및 독선기신과 일정 정도 관련이 있다.


후대 인물들이 퇴계와 율곡의 삶을 평가한 것을 참조하면, 비둔의 삶을 추구한 인물은 퇴계이다. 퇴계는 도산에 터를 잡은 이후 읊은 「도산잡영(陶山雜詠)」에서 그곳이 비둔하기 좋은 땅임을 강조한 적이 있다. 이런 점에 비해 윤두수(尹斗壽, 1533~1601)는 「율곡(栗谷)에 대한 제문」에서 율곡에게 비둔은 ‘나머지 일[餘事]’에 속한다고 평가한다.


      擬展所學 : 배운 것을 펴 보고자 하였고

     勇於敢爲 : 감히 행하는 일에는 용감하였네.

     世路崎嶇 : 세상 길이 험난하여,

     是非力戰 : 시비를 분별코자 힘써 싸웠네.

     群飛刺天 : 많은 유언비어가 하늘을 찔렀지만,

     聖明獨見 : 성명께서는 홀로 통촉하셨네...

     嗚呼哀哉 : 오호라 슬프도다.

     堯舜君民 : 요순 때 임금과 백성같이 되게 하는 것이

     是公素志 : 공의 평소 뜻이라네.

     肥遯林泉 : ‘임천에서 은둔하는 일[肥遯]’은

     乃公餘事 : 공에게는 ‘나머지 일[餘事]’이라네.


율곡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기 소신대로 요순 때의 임금과 백성같이 되게 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는 것은 유학자가 지향하는 ‘유가 성인이 말한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제한다[명도구세(明道救世)]’라는 사명감을 실천하고자 한 전형을 보여준다. ‘여사’라는 것은 일의 선후 차원에서는 후자에 속한다는 것이고, 가치적으로 보면 가치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두수가 율곡이 임천에서의 비둔하는 것을 ‘여사’라고 여겼다고 한 것에 비해 퇴계를 평가하는 많은 인물들은 퇴계는 비둔을 실천한 인물로 기록한다. 그 단적인 예로 조익(趙翼, 1579~1655년)이 「퇴계(退溪) 이문순공(李文純公)에게 올린 제문」에서 퇴계의 학문과 삶에 대해 “낙민[洛學의 二程(程顥, 程頤)과 閩學의 주희]의 학문을 이어받고, 산림에 살지게 은둔하셨도다[學紹洛閩, 遯肥山林]”라고 단적으로 규정한 것을 들 수 있다.


조익의 이상과 같은 발언을 좀 더 확장하면 정탁(鄭琢, 1526~1605)이 읊은 「퇴계 선생을 제사하는 글(祭退溪先生文)」일 것이다.


唯靈     : 오직 존령께서는

遡波伊洛 : 이락[程顥와 程頤]을 거슬러 올라가

窮源洙泗 : 수사[공자가 강학한 洙水와 泗水]의 연원을 찾으셨고

道尊德崇 : 도가 높고 덕이 숭고하여

所立卓爾 : 세운 바가 우뚝하셨지요

三韓千載 : 우리나라 천년의 역사에서

吾道在是 : 유학이 여기에 있었고

緬惟平日 : 평소의 행실을 회상하면

進退由義 : 의리에 따라 진퇴를 하였지요

(중략)

宅幽勢阻 : 그윽한 곳에 집을 지으니

退溪之涘 : 퇴계의 물가에 위치했고

于以棲遲 : 이곳에서 소요하며 지내니

丘壑之美 : 산수의 아름다움 함께했지요

滿架圖書 : 서가에 가득 찬 도서들은

百年計活 : 한평생의 생활이었고

風月無邊 : 청풍과 명월은 끝이 없어

庭草濃綠 : 뜰의 풀은 짙푸르러 갔지요


‘의리에 따라 진퇴를 하였다’는 것은 명종이 승하한 이후 퇴계가 신퇴(身退)한 뒤 도산에 자리잡은 것을 의미한다. 퇴계를 존숭하는 후학들은 퇴계를 기억할 때 지경(持敬)을 통한 몸가짐과 학문 및 청풍명월이 상징하는 산수지락(山水之樂)을 즐긴 두 모습을 기억한다. 그 산수지락은 바로 퇴계가 신퇴한 이후에 자신의 삶을 비둔이라 일컬은 것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자신의 삶을 비둔으로 규정한 퇴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퇴계의 삶의 반절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아울러 퇴계와 율곡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조 유명 유학자들 가운데 비둔의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인물들이 있다. 예를 들면 퇴계 이황을 포함하여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등을 들 수 있다. 장유(張維, 1587~1638)는 이들 이외에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들고 있다. 그런데 퇴계의 비둔은 이들과 다른 차원의 비둔에 속한다. 성운, 조식의 비둔은 노장(老莊) 차원의 비둔 성격이 강하다. 성수침이나 김인후는 비둔했지만 퇴계처럼 신퇴라는 차원의 비둔과 차별이 있다.



천원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된 謙齋 鄭敾의 〈溪上靜居圖〉에 그려진 곳이 ‘도산서당’인지 ‘계상서당’인지 하는 논란이 있었다. 〈계상정거도〉는 정선이 ‘계상정거’라고 한 것처럼 처음 퇴계가 계상에 서당을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주희의 편지글을 읽고 그 편지글의 핵심을 모은 『朱子書節要』를 편찬하는 시절을 그린 것이다. 집 안에서 퇴계가 책을 펼치고 읽고 있는데, 그 책은 바로 주희의 편지글에 해당한다.


3. 나오는 말


퇴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유가 성인이 지향하는 삶을 가장 실천적으로 산 인물이다. 하지만 퇴계의 비둔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지경(持敬)을 통한 경외(敬畏)적 삶을 근간으로 한 도학자로서의 퇴계 이해에서 벗어나 산수 공간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틈타 술을 한잔 마시면서 예술을 논하고 쇄락(灑落)적 삶을 추구한 향기와 윤기가 깃든 삶을 산 퇴계를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 이같이 퇴계가 신퇴한 이후의 도산에서 비둔하는 즐거움을 읊은 것에는 유가와 도가 사이의 경계적 삶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