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관한 동양철학적 고찰 (Ⅱ)

  • 478호
  • 기사입력 2021.10.27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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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77호에서 이어짐)


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4. 유가(儒家) : 성인(聖人)되는 공부 측면에서 이해된 바다


동양문인들에게 바다는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실용 차원의 바다가 아니었다. 아울러 바다를 넘어 타 지역에 가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획득하는 정복 차원 혹은 전쟁 차원의 바다는 아니었다. 서양처럼 문명과 연계된 바다는 더욱 아니었다. 동양문인들에게 바다는 주로 관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관상 그 자체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관련된 학문적 차원과 윤리적 차원에서 이해된 바다이기도 하였다. 유가 경전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실례를 보면,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바다에 뗏목을 타고 건너갈 때 나를 따르는 자는 아마 자로일 것이다"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공자가 진짜 바다를 보고서 한 말은 아니었다. 유가에서 바다에 관해 철학적 견해를 제대로 밝힌 인물은 맹자다.


맹자가 이르기를 “공자께서 노나라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가 작다고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큰 물이 되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유학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말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주희(朱熹)는 맹자의 이 말에 대해 성인의 도가 큼을 바다에 비유하여 말한 것으로 풀이한다. 바다를 성인의 경지로 풀이한 것을 다른 차원으로 말하면, 그 바다와 같이 넓은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혹은 성인의 학문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유학자들은 바다를 통해 성인으로 가는 학문의 길이 바다처럼 가없음을 말한다. 이런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이 지은 「학해부(學海賦)」다.



「학해부」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면서 포용하는 드넓은 바다’는 바로 드넓은 학문의 소유자인 ‘성인(聖人)’을 상징한다. ‘학해’라는 말이 상징하듯 배워야 하는 학문의 세계, 성인이 되는 길은 넓고도 넓다. 그 학문 세계의 종극은 성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인데,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없다. 하여, 바다가 넓다는 말만 듣고 주저하듯이, 성인 되는 공부의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고서 지레 겁먹고 만다. 그렇지만 그런 드넓은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김성일은 성인 되는 방법으로 맹자가 말한 ‘물이 웅덩이를 채운 이후에 점차로 나아간다[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라는 사유를 제시하면서, 차근차근 노력하면서 학습할 것을 다짐 한다. 이처럼 성인과 같은 드넓은 바다에서 학문에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면서 전념할 것을 말하는 차원에서 이해된 바다는 결국 성인의 드넓은 학문을 상징하는 다른 이름이었다.


중국 명대 영종(英宗) 때의 양거(楊琚)는 ‘관해정(觀海亭)’이라는 정자에 대한 감흥을 기록한 기문(記文)인 「관해정기(觀海亭記)」를 쓴다. ‘관해정’이란 정자 이름이 말해주듯, 「관해정기」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거친 풍랑을 겪어보지 않고 다만 정자에서 바다를 본 감상을 읊은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산에 정자를 만들어 놓고 바다를 관상하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차원의 바다였다. 따라서 이런 이해는 실제 격랑(激浪) 치는 바다가 어떤 위험 요소를 띠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문제가 있다.


이런 정황에서 양거가 「관해정기」에서 바다의 물길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고, 오가면서 쌓이는 것을 잠시라도 쉬지 않는 바다의 속성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여 이해한다. 즉 바다를 통해 인간 본성의 선함과 도체(道體)의 무궁한 묘한 경지를 볼 수 있고, 결론적으로 『주역』「건괘」에서 말하는 스스로 굳세게 노력하면서 쉼이 없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의 이치를 깨닫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양거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적 롤 모델로 바다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관해정’에서 바라본 바다는 모험을 유발하고 경쟁을 유발하는 경제적, 상업적, 약탈적 차원의 바다가 아니라 철학적이고 미학적이면서 인문학적 바다였다.


유가에서 바라 본 드넓은 바다는 성인의 드넓은 학문 세계의 상징이었다. 이에 세상의 모든 물이 차근차근 웅덩이를 메워가면서 바다로 가는 것을 성인 되는 공부로 연결하여 이해하였다. 아울러 인간이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를 알려주는 ‘롤 모델’로서의 바다이면서 지혜를 주는 바다였다.


5. 은일(隱逸)과 유토피아 지향의 상징으로서 바다


중국문화에서의 바다에 관한 사유는 관료 지향적 삶을 추구하고 문화인으로서 도시적 삶을 추구하는 유가보다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을 강조하고 강호(江湖)에서 은일적 삶을 추구하는 도가에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단 강과 호수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문화에서 볼 때 바다는 매우 궁벽한 곳에 속한다고 여겼다. 장자는 ‘북쪽 바다(北冥=北溟)’의 곤(鯤)이 거대한 붕(鵬)으로 화(化)해 ‘남명(南冥)’으로 옮겨간다는 우화에서 말하는  바다는 궁벽한 곳에 위치한 바다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같은 궁벽한 곳에 있는 바다는 때론 은일자의 피세(避世) 공간이 되거나 혼군(昏君)의 가혹한 정치로부터 벗어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논어』에서 은(殷)나라가 망할 때 부지휘자 양(陽)과 경(磬)을 치는 양(襄)이 바닷가로 들어갔다는 고사다. 부지휘자 양과 경을 치는 양이 바닷가로 들어갔다는 것은 당시에 사회를 유지하는 예악(禮樂)이 더 이상 실현되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 예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은 ‘천하유도(天下有道)’의 사회가 ‘천하무도(天下無道)’의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천하무도의 사회에서는 뜻있는 인물들은 궁벽한 바다로 도피하여 때를 기다리곤 하였다. 『맹자』에 나오는 은(殷)나라 폭군(暴君)인 주(紂)를 피하여 북해의 변두리에 살았다는 백이(伯夷)의 고사와 강태공(姜太公)[=강상(姜尙)]이 동해의 물가에 살았다는 고사는 이런 점을 말해준다. 도피 공간으로서의 바다의 궁벽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피의 공간 혹은 은둔의 공간으로서 바다가 도교적으로 신비화되면 『열자(列子)』「탕문(湯問)」에서 말하는 불노불사하는 신선과 성인의 무리가 산다는 것과 관련된 이른바 ‘삼신재해동설(三神在海東說)’ 등으로 나타난다. 과거 문인들이 그런 곳을 찾아가는 것은 하나의 꿈이기도 하였다. 유학자들은 ‘삼신재동해설’을 근거가 없는 황당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바다 너머 뭔가 이상향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어린 짐작에는 불노불사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부조리한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과 유가 관료지향적 삶에 대한 벗어남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궁벽한 곳을 상징하는 바다가 세상의 혼란함을 피하는 도피의 공간, 은일 추구의 공간이 되거나 때론 도교 차원에서 신선이 살고 있는 이상향으로서 이해된 것은 동양문인들의 바다에 대한 또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6. 나오는 말


서양의 역사에서 중심국 역할을 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강이나 바다에 인접한 지역에서 출현하여 발전하였고, 이를 근거로 독일의 지리학자 칼 리터(Karl Ritter : 1779~1859)는 인류 문명이 하천문명→ 내해(內海)문명→ 대양(大洋)문명의 순으로 발전했다는 인류 문명의 변화설을 주장한다. 그런데 서구의 바다에 대한 이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한 문명발전과 변화설은 ‘땅이 크고 물산이 풍부하다[지대물박(地大物博)]’라고 일컬어지는 동양의 농경위주의 문명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동양문인들에게는 독일의 철학자 군터 숄츠가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바다 앞에서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라고 하는 질문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상 본 바와 같이 농경적 삶 속에서 삶을 영위하던 동양의 문인들에게 바다는 ‘끝이 없는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소지에서 벗어나 대지를 추구하게 하는 바다’, ‘좋은 물과 나쁜 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강의 물을 다 받아들이는 포용력의 상징으로서 바다’, ‘반드시 본받아야 할 무한한 역량을 지닌 성인의 상징으로서의 바다’, ‘은일적 삶과 불노불사 등과 연계된 바다’ 등으로 이해된 이른바, 철학화, 정치화, 미학화, 윤리화된 차원의 바다였다.



* 자사호(紫沙壺) 문구:  관해청도(觀海聽濤)

‘바다를 봐야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관해청도(觀海聽濤)’는 직접 견식(見識)을 넓혀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흔히 청나라 강희(康熙) 황제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다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문구다.



김홍도(金弘道), 〈망양정(望洋亭)〉

배를 타고 바다의 거친 파도와 싸워 이겨야 생존하는 정황이 아니라 단순 감상하는 차원이면 정자에서 바라본 바다는 파도가 더 강렬하게 일어날 때 더욱 흥취가 난다. 이런 그림을 통해 동양과 서양에서 바다를 어떤 삶과 연계하여 이해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정황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 정선(鄭敾), 〈망양정(望洋亭)〉

김홍도의 〈망양정〉보다는 파도 형상이 훨씬 더 격하게 그려져 있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특별한 지역에만 있는 ‘망양정’이나 ‘관해정(觀海亭)’에서 파도치는 정경을 바라보고 그린 그림은 많지 않다. 그것은 화가들이 바다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관해정의 ‘관’자, 망양정의 ‘망’자가 의미하듯 바다를 바라보는 정황이지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우는 것은 아니다. 바다도 놀이하는 공간으로서의 바다 이미지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