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유학자들의 신선문화에 관한 연구 (Ⅱ)

  • 480호
  • 기사입력 2021.11.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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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3. 신선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


황현은 신선처럼 사는 사람의 예를 들어 신선처럼 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신선은 바람과 기운을 타고 세상 밖으로 날아가 노닐며, 일체의 인간사를 혹덩이나 쭉정이로 여기면서 전부 다 버리는 존재다. 그것이 비록 천지보다 뒤에 사라지고 해와 달과 별보다 늦게 시든다 해도 사실은 귀신일 뿐이다. 귀신에게 무엇을 부러워할 게 있겠는가. 세상에서는 항용 눈앞의 쾌락을 즐기는 자를 일러 ‘신선’이라고 한다. 그 논리가 제법 근사하기는 하나, 그것은 잠깐은 몰라도 오래 지속될 수는 없으며, 그 일이 끝나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황현은 일상의 인간사를 가볍게 보고 세속적인 것과 단절을 꾀하는 방외(方外)적 삶을 귀신이라 규정하는 것은 현실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과 괴리된 삶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황현은 ‘육합(六合=天地四方)의 방내(方內)적 공간’에서 인간관계망을 유지하는 가운데 세상만사 걱정거리 하나 없이 술과 함께 쾌락적인 삶을 극대화하면 신선이란 것을 강조한다. 즉 신선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삶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왕사천(王師天)이 즐긴 ‘태평하고 호탕하며 자잘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으로서 소싯적부터 술을 좋아하고 도박을 좋아하고 잠을 즐겼다. 멀리 유람하기를 좋아하고 협객(俠客)의 신의를 좋아하였다’라는 삶을 신선풍 삶으로 규정한다. 이런 신선풍은 경외(敬畏)의 마음가짐을 통해 신독(愼獨) 차원의 계신공구(戒愼恐懼)를 추구하면서 유가의 예법을 지키고자 하는 선비의 행태와 전혀 관계 없는 ’호걸풍 신선에 해당한다. 장유(張維)도 이유간(李惟侃) 말년의 소유자재하는 삶을 신선처럼 사는 삶으로 보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장수(長壽)에 다복(多福), 풍부한 가산(家産), 고위 관직 역임, 자식이 잘됨 등을 거론한다. 장유가 읊은 이유간의 신선처럼 사는 삶은 모든 유학자들이 바라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해당한다.


황현이나 장유가 제기한 신선처럼 사는 것 혹은 신선 경지는 은일 지향의 담박함이 담긴 신선풍과 차이가 있는 사유로, 유학자들이 신선처럼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 호걸풍의 신선처럼 산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이상의 발언은 청빈함을 기본으로 하는 은일자가 지향한 삶과 더욱 차별화된다. 이제 이런 신선처럼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된 신선경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4. 인경(人境)에서의 신선 추구적 삶 지향


“산천은 본래 신선이 사는 곳이다[山川自是神仙窟]”라고 하지만 산천에 산다고 다 신선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 본래 신선굴이라, 신선들이 사는 곳[洞府]은 극히 맑아 인간 세계 아니네”라고 읊는데, 어디 금강산이 쉬이 갈 수 있는 곳인가. 그곳에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런 점에서 신선굴은 우리 곁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유가 나타나고, 아울러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만이 신선굴이 아니라는 사유에서 출발하여 인경에서의 신선처럼 사는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립(崔岦)은 징영당(澄映堂=高參議)이 남산에 두채의 집을 짓고 사는 정경을 신선처럼 사는 삶이라 기술하고 있는데, 이런 기술에는 궁벽한 자연공간이 아닌 인경에서 추구한 신선처럼 사는 삶의 정황을 잘 말해준다. 신선이 있다는 전제 조건에서 출발했을 때 의문시 되는 것 중 하나는 신선이 누리는 즐거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신선이 누리는 즐거움은 신선이 사는 세상의 진애(塵埃)와 동떨어진 기이하고 수려한 궁벽진 산수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신선처럼 살고자 할 때의 산수공간이 반드시 인경과 거리가 있는 궁벽진 공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도성 안의 남산이 그런 공간에 해당한다고 진단하는데, 이것은 신선경은 인경과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관료적 삶을 포기할 수 없고 아울러 피세 차원의 오랫동안 세속을 떠나 되돌아오지 않는 것[長往而不返]’을 추구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껏해야 증점(曾點)의 ‘욕기영귀(浴沂詠歸)’식의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유학자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성의 인경에서도 신선처럼 살 수 있는 자연공간을 선택해 그곳에서 탈속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밖에 자연산수공간에서 신선경을 찾을 수 없는 경우 자신이 거처하는 공간에서 이른바 ‘마음의 신선[心仙]’을 꿈꾸기도 한다. 조선조 유학자들은 신선처럼 살 수 있는 신선경은 굳이 궁벽진 자연산수공간일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어떤 삶을 누리는가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삶은 때론 쾌락 추구적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선경은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다[仙境不遠人]는 사유로 나타난다.


5. 선경불원인(仙境不遠人) 사유


신선처럼 살고자 한다면 일단 인경을 떠나 궁벽(窮僻)진 산수공간에서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모색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산수공간에서 신선처럼 살 수 없는 정황에 처한 유학자라면 주위에 신선의 정경을 느낄 수 있는 정자나 정원을 조성하고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속내를 모색하면 된다. 이처럼 외적 환경을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인위적 공간을 조성하여 신선처럼 사는 방식도 있지만 유학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이 신선 공간이라 여기는 사유를 강조한다.


이에 이이(李珥)는 자신이 사는 공간의 자연 정경이 삼신산과 같은 선경이라고 여기면 굳이 삼신산과 같은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한성의 성안에 있는 ‘청풍계동’이 바로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인경에서 살면서 그 인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산수공간에 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연 정경이 마련된 상태에서 신선처럼 사는 것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이홍유(李弘有)는 인간에는 스스로 신선경이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경치 좋은 산수공간에서 ‘아름다운 은둔[嘉遯]’의 삶을 살면서 세속적인 걱정거리를 다 끊어버리고 책을 읽고 술 한잔 마시면서 사는 것이 바로 신선경이라는 것을 말한다. 조면호(趙冕鎬)는 바쁜 일이 없는 것이 신선경이라고 한다. 이직(李稷)은 마음이 편안하면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신선의 땅[신선경]’이라고 한다. 이밖에 이른바 도연명의 도화원경(桃花源境)을 신선과 연계하여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 거론한 내용을 보면 유학자들은 불로장생의 신선을 추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신선처럼 사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도리어 ‘가둔’의 삶과 관련된 신선경에서 신선처럼 사는 것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에 유학자들은 선경이란 인경과 떨어진 궁벽진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무욕과 허정의 마음 상태에서 자신의 주위 환경을 선경으로 여기느냐의 여부에 있음을 강조한다. 즉 방내적 공간과 인간관계를 포기할 수 없었던 유학자들은 ‘선경불원인’의 사유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도불원인(道不遠人)’ 사유의 신선적 삶에 대한 적용이기도 하다.


6. 나오는 말


삼강오륜 및 예법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조선조 유학자들이 실리라는 관점을 통해 자연의 원리 및 변화를 이해한 경우 도교에서 추구하고자 한 불로장생과 방외적 신선문화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취(逸趣) 및 탈속을 통해 신선처럼 사는 즐거움을 찾고자 했다.


그럼 조선조 유학자들이 신선처럼 살고자 한 삶의 방식을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 적용한다면 어떤 지혜로움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따라 미래에는 불로장생의 신선처럼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다. 예를 들면 인공장기 발달 및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약품 개발은 이런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물론 이런 혜택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에게 한정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이같은 불로장생의 신선 가능성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유학자들이 추구한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삶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피로사회’로 규정되기도 하는 오늘날 과거 유학자들이 추구한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삶은 올바른 심신 건강을 유지하는데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정선(鄭敾), 〈청풍계지각(淸風溪池閣)〉

청풍계(淸風溪)는 인왕산 동쪽 기슭의 북쪽 종로구 청운동(靑雲洞) 54번지 일대의 골짜기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이(李珥)는 궁벽진 곳이 아닌 인경(人境)에 있는 이곳을 선경으로 일컬고, 이런 공간에서 노니는 것을 신선풍 놀이로 이해한다.


정선(鄭敾),  [신묘년풍악도첩]의 〈삼일포(三日浦)〉

예로부터 우리나라 호수 중 제일 경치가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진 고성의 ‘삼일포’는 신라의 사국선(四國仙)이 절경에 반해 삼 일간 이곳에서 놀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관동팔경은 예로부터 선경으로 일컬어졌는데, 이서(李漵)는 그 가운데 ‘삼일포’를 신선경이라고 하였다. 안축(安軸)은 “선경은 굴속에 감춰져 있고, 유리처럼 맑은 물 출렁이네, 둥그렇고 작은 봉래섬이 부용처럼 물에서 솟았네(仙境藏洞中, 琉璃水溶溶, 團欒小蓬島, 出水如芙蓉)”라고 그 신선경을 읊고 있다. ‘둥그렇고 작은 봉래섬이 부용처럼 물에서 솟은 것’은 그림 중안의 ‘사선정(四仙亭)’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