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풍’의 철학적 유래 :
늦봄 증점(曾點)의 ‘욕기영귀’(浴沂詠歸)’ Ⅰ

  • 489호
  • 기사입력 2022.04.15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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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봄 소풍과 가을 운동회”

어느 정도 나이 든 연령인 경우 듣기만 해도 가슴 뛰게 하는 초등학교의 대표적인 행사다. 맛있는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둘러메고 산뜻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소풍가는 것이나 ‘우리 편 이겨라’ 하면서 함성을 지르면서 하는 운동회. 그 행사 자체도 즐겁지만 무엇보다도 이날 하루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들뜨게 한다.


운동회보다는 소풍이 더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문제는 하필이면 소풍가는 날 새벽녘까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만약 비가 내리면 소풍가는 것을 취소하고 수업을 한다 하셨는데 비는 그칠 줄을 모르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당연히 소풍가는 줄 알고 숙제를 안했기 때문이다. 용왕님을 탓하고 있는 시점에 천만다행으로 학교갈 즈음이 되면 비는 거의 그쳐 예정된 소풍을 가게 된다. 비가 온 뒤 더욱 청명해진 봄 정경은 봄 소풍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농경사회에서 봄비는 일 년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흔히 비가 와야 할 때 내리는 비라는 점에서 ‘시우(時雨)’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런 봄비는 대부분  밤에 내리고 아침이면 그치는 경우가 많다. 즉 봄비는 마치 밤손님처럼 온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 두보가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를 읊은 적도 있다.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 좋은 비는 그 내릴 시절을 알고 있나니

       당춘내발생(當春乃發生) : 봄이 되면 내려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구나.

       수풍잠입야(隨風潛入夜) : 비는 동남쪽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리나니

       윤물세무성(潤物細無聲) : 사물을 적시거늘 가늘어서 소리가 없도다.

       야경운구흑(野徑雲俱黑) : 들녘 길은 낮은 구름과 함께 어두워지고

       강선화독명(江船火獨明) : 강 위의 고기잡이 배 불만 홀로 밝구나

       효간홍습처(曉看紅濕處) : 새벽에 일어나 붉게 젖은 곳을 보니

       화중금관성(花重錦官城) : 금관성의 꽃들도 비에 젖어 만발하였으리



▲ 심사정沈師正,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부분들, 153.5×61cm.


▲ 두보의 「春夜喜雨」 뒷부분의 시구를 그린 것이다.


이렇게 세우(細雨) 같은 봄비가 내리는 계절에 소풍가는 것은 다 유래가 있다. 소풍을 간다는 것은 이제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음력 삼월(三月) 상사일(上巳日) - 양력으로는 사월 초인데, 북쪽은 여전히 춥지만 이때쯤 되면 남쪽 지역의 경우 제법 따사로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 에 물가가 있는 야외에 나가 봄맞이 계불(禊祓) 행사를 거행한다. 이같은 봄맞이 계불 행사는 서성(書聖)으로 평가받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 모임’으로 유명해지는데, 이같은 봄맞이 계불 행사는 이후 봄이면 소풍가는 근거가 된다.

이런 계불 행사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 근거는 공자 문하의 광사(狂士)로 일컬어지는 증점曾點이 말한 [욕기영귀(浴沂詠歸)]라는 고사다. 봄밪이 계불에 해당하는 욕기영귀는 ‘기수에서 욕하고 흥얼거리면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늦은 봄날[모춘(暮春)]’에 소풍을 가는 것과 관련된 증점의 ‘욕기영귀’에 대해 알아보자.


2. 공자 3천 명의 제자 중 공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한 제자는 과연 누구일까? 논어 선진(先進)에는 공자가 ‘자로子路’, ‘증석曾晳(=증점曾點)’,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등 네 명의 제자에게 평소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한 삶에 대해 말해보라는 말이 나온다. ‘자로’, ‘염유’, ‘공서화’ 이 세 사람은 모두 자신들이 ‘세상이 쓰이는 것’을 주장하는 데 비해 증점은 달랐다. 공자가 “증점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자, 증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증점이 말하기를, “세 사람이 가진 뜻과는 다릅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 또한 각자 자기의 포부를 말한 것이다”하자, 증점은 대답하기를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대舞雩臺에서 봄바람을 쐬다가’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영이귀詠而歸]”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증점이 하고자 한 것을 허여許與한다”하였다.

흔히 〈행단고슬도〉라고 알려진 이 그림은 『논어』의 내용을 참조하면 〈사자시좌도四子侍坐圖〉라고 해야 한다. 맨 앞 부분에 슬을 앉고 있는 인물이 증점이다. 가운데 앉은 흰 수염의 인물은 공자다.


흔히 증점의 ‘욕기영귀’浴沂詠歸’ 또는 ‘영이귀詠而歸’로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의 전모다. 공자가 증점의 잠시 현실을 떠나 하루를 야외에서 보내겠다는 이른바 ‘은일隱逸 차원의 성향’이 깃든 ‘욕기영귀’를 허여한다는 것은 공자가 추구한 ‘세상이 쓰이는 것’과 관련된 사상에 비추어볼 때 예외적인 것에 속한다. 증점의 이 같은 말에 대해 주희는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증점의 학문은 인욕人欲이 다한 곳에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곳에 따라 충만하여 조금도 결함이 없음을 봄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동정動靜할 때에 종용從容함이 이와 같았으며, 그 뜻을 말함에는 현재 자기가 처한 위치에 나아가 그 일상생활의 떳떳함을 즐기는 데 지나지 않았고, 애당초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하려는 뜻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마음속이 유연悠然하여 곧바로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 각각 그 마땅한 곳을 얻은 묘妙함이 은연중 말 밖에 나타났으니, 저 세 사람이 지엽적인 일을 하는 것에 급급한 것과 견주어 보면 그 ‘기상氣象’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감탄하시고 깊이 허여하신 것이며, 문인들이 그 본말을 기록함에 특히 이를 자세히 한 것이니, 그도 또한 이것을 앎이 있었다.

기상론을 통해 증점의 욕기영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만큼 증점의 행위가 갖는 긍정적인 점을 말한 것이다. 특히 ‘인욕이 다 했다’는 것은 세속적 차원에서 추구하는 명예, 재물, 권력 등과 같은 외적 사물이 주는 유혹이 전혀 없고, 또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천리가 유행하여 곳에 따라 충만하여 조금도 결함이 없었다’는 것은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왔을 때 그 새로운 봄의 기운에 맞아 행한 자연스러운 몸가짐이 갖는 의미를 윤리적 차원과 미적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중국 문인사대부들이 산과 물이 없기에 직접적으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와 유사한 쇄락한 즐거움을 누리게 한 것은 ‘욕기영귀’의 기상과 풍취였다. 철학적 차원에서 볼 때, 늦봄에 펼쳐진 자연의 변화에 담긴 이치 즉 천리의 유행을 체득할 수 있는 ‘욕기영귀는 유학자들에게는 단순 봄맞이 야외행사 혹은 야외소풍이란 의미 이상으로 다가왔다. 넓은 평지에 살았던 중국 문인사대부들은 산수공간에 직접 누대를 지을 수 없을 경우 정원을 꾸밀 때 차경借景 조경을 통하여 그런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였다. 이런 점은 중국의 강남지역에 있는 ‘졸정원拙政園’, ‘사자림獅子林’, ‘유원留園’, ‘창랑정滄浪亭’ 등과 같은 대정원에서 볼 수 있다. 기암괴석으로 가산假山을 축조하여 조그마한 폭포를 만들고 아울러 연못을 파고 누대를 지어 ‘요산요수’와 ‘욕기영귀’의 풍취를 누리기도 하였다.

조선조 유학자들도 실제 산수 풍광이 좋은 곳에 거처할 수 없었던 경우라도 증점의 ‘욕기영귀’ 관련 시 하나 짓지 않으면 우아한 풍류를 누리는 선비행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욕기영귀’의 풍취風趣와 기상을 누리고자 하였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경우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독락당獨樂堂’ 옆에 있는 반석에 ‘영귀대詠歸臺’라 명명한 것이 말해주듯 실질적으로 ‘욕기영귀’의 풍취를 누리는 삶을 산 경우도 많았다.


▲ 옥산서원 뒤쪽 계곡의 암반 위에 단아하게 지어진 독락당의 부속건물이다.

독락당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의 동편에는 옥류를 끼고 등심대(燈心臺), 탁영대(濯纓臺), 관어대(觀漁臺), 영귀대(詠歸臺), 세심대(洗心臺) 등의 반석이 있다.

농경사회의 경우 인간이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곳에는 산은 없더라도 냇가 정도의 물은 있다. 이에 물가에 ‘영귀대詠歸臺’ 같은 누대를 지어놓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할 때 증점의 ‘욕기영귀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당연히 늦봄이란 좋은 시절, 멋진 풍광을 접했을 때 마음도 쇄락灑落해지고, 이에 상응하는 시적 감흥도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야외에 나가 ‘욕호기浴乎沂’ 하고 ‘풍호무우風乎舞雩’ 하는 행위는 예법과 신독愼獨이 지배하는 일상적 삶의 틀 혹은 유가적 삶의 영역 등과 잠시 동안이나마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자연으로 감[왕往]’의 행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야외로 나가 봄날을 만끽하는 봄 소풍의 유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