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미인 서왕모(西王母) 이야기 Ⅰ

  • 491호
  • 기사입력 2022.05.1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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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동아시아문명권에서 절세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여성은 많다. 흔히 중국역사에서 사대미인[양귀비楊貴妃, 서시西施,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이라 일컬어지는 여성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 이전에 절대미인으로 일컬어진 여성이 있다. 바로 신화속에 나타나는 서왕모(西王母)다. 동아시아신화를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 복희[伏羲=包犧]와 짝을 이루는 여와(女媧)를 비롯하여 많은 여신(女神)이 등장하는데, 이런 여신은 이후 여선(女仙)으로 변화된 과정을 겪는 특징이 있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서왕모다. 도교 차원에서는 서왕모, 남악위부인(南岳魏夫人), 마고(麻姑), 하선고(何仙姑)를 ‘사대여신’이라고 병칭하는 데, 그 가운데 서왕모의 지위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서왕모는 반인반수(半人半獸)로 여신, 혹은 도(道)를 체득한 인물 등으로 규정되다가 점차적으로 남성의 사랑을 받는 여선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 半人半獸의 표범 꼬리를 하고 있는 봉발蓬髮의 서왕모 상상도  


서왕모 존숭 현상은 고금에 걸쳐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이른바 ‘문화적 흐름’의 한 현상을 엿볼 수 있는 대상에 해당한다. 서왕모에 관한 이같은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동아시아 여성과 관련된 신화는 물론 여성관의 변모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정착과 더불어 여신과 남신의 관계도 점차 차이에서 차별의 관계로 만들어진다. 이에 여성은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보다는 의미를 부여받는 대상으로 변화함에 따라 여신의 탈신성화가 일어나게 된다. 여신의 탈신성화 경향에 나타난 여신의 남신의 보조자 혹은 배우자로 탈바꿈하는 이런 변천 과정에는 음양론 사유가 작동한다. 음양론은 중국의 철학은 물론 문화와 역사 및 예술을 이해하는 관건인데, 이런 점은 신화와 여성이란 주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서왕모가 반인반수의 여신으로 규정되다가 이후 주목왕(周穆王)부터 시작하여 한무제(漢武帝) 때에 여선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절대 미인이면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이같은 절대미인이면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서왕모에 대한 인식에는 음양론 차원에서 이해된 여인상 및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바라는 여인상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다.


2. 음양론 관점에서 이해된 서왕모


여신과 여선은 음양론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음적 속성에 속한다. 이런 점을 『산해경(山海經)』 「대황서경(大荒西經)」에 나타난 서왕모의 거처와 용모와 관련하여 이해해보자. 특히 음이 서쪽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서해의 남쪽에 유사(流沙)의 물가, 적수의 뒤, 흑수의 앞에 큰 산이 있는데 곤륜구라고 부른다. 신이 –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호랑이로서, 무늬 있는 꼬리가 있는데 모두 흰색이다 - 살고 있다. 그 아래 약수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염화산이 있는데 물건을 던지면 즉시 태워버린다. (그곳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머리꾸미개[勝]’를 쓰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 꼬리를 하고서 동굴 속에 산다. 그를 서왕모라고 부른다. 이 산에는 오만가지가 다 있다.


기본적으로 반수반인의 서왕모가 거처하는 방위와 다양한 형상 및 정황 묘사는 음적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음양론 차원에서 볼 때, 앞서 본 바와 같이 동쪽이 생의 상징이라면 서쪽은 사를 상징한다. 어두운 동굴은 양의 이미지가 밝은 것을 의미하는 것에 비해 음적 이미지다. 인간의 삶을 성도(城都)가 상징하는 문명 공간이 양의 이미지라면, 산수가 상징하는 자연공간은 음의 이미지다. 『주역』에서는 양과 음을 자연변화와 관련하여 양과 봄의 상징으로서 ‘운종룡(雲從龍)’의 현상을, 음과 가을의 상징으로서 ‘풍종호(風從虎)’의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것을 적용하면, 서왕모의 호랑이 이빨에 표범 꼬리는 음과 서쪽을 상징한다.


‘적수의 뒤’, ‘흑수의 앞’이란 것을 오행에 적용하면, 적수는 남, 흑수는 북이란 점에서 서왕모가 거처하는 곤륜구는 서쪽에 해당한다. 아울러 오행으로서 서쪽의 색은 백색이 된다. 염화산의 강력한 화기를 통한 죽음도 음적 이미지다. 이같은 호랑이와 표범 등을 오행에 적용하면 금이 되고, 이에 서왕모를 다른 이름으로 일컬을 때는 ‘금(金)’자를 붙여 일컫게 된다. 이밖에 곤륜산에 ‘오만가지가 다 있다’는 것은 이후 불사의 여신 상징인 서왕모가 여신으로서 모든 만물을 낳는 기능적 측면과 현상을 기술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결과적으로 천제의 여자로서 서왕모는 태음(太陰)의 정령(精靈)에 해당한다. 도교 상청파(上淸派)에서는 서왕모를 ‘만기(萬氣)의 어머니’라고도 한다. 이같은 음양론 시각에서 규정하는 서왕모에 대한 것은 두광정(杜光庭), 『용성집선록서墉城集仙錄(敘)』에 잘 나타난다.


서화(西華)의 지극히 묘한 기운이 변화함으로써 금모(金母)를 낳았다...음령(陰靈)의 기를 주로 함으로써 서방을 다스렸다. 또한 왕모라고도 호를 하니, 모두 태무(太無)를 빼어 바탕으로 하고 신의 현오(玄奧)함을 길렀다. (서왕모는) 서방의 아득한 가운데에서 대도의 순수한 정기를 나누고 기를 맺어 형체를 이루었다. 동왕목공과 음양 두 기운을 함께 다스리면서 천지를 양육하고 만물을 빚어 고르게 하였다. 유순한 근본을 체득하여 극음(極陰)의 으뜸이 되니 서방에 위치를 짝하면서 만물을 양육하였다. 천상 천하와 삼계 시방에 여자가 신선에 오르고 도를 얻은 것은 모두 서왕모에 예속되었다.


서왕모를 ‘금모’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오행에서 서쪽을 금으로 규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서화’와 ‘태무’는 서쪽을 상징하는 금모의 속성 및 본질에 해당한다. 두광정은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일음일양(一陰一陽)’하는 자연의 변화 및 원리에 적용하여 목공과 금모에 대한 지위를 밝히고 있다.


또 일음일양하는 도의 묘용에 의해 만물을 재성(裁成)하고 군형(群形)을 영육하니, 낳고 낳음이 멈춤이 없이 새롭고 새로운 것이 서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하늘은 덮고 땅은 실어, 청한 기운과 탁한 기운이 그 공을 같이한다. 해가 비추고 달이 임하여 주야에 그 작용을 가지런히 한다. 이 두가지 상을 빌려 나의 삼재를 이룬다. 그러므로 목공[동쪽의 동왕공]은 진방(震方)에서 주인이 되고, 금모는 태택(兌澤)에서 존경을 받아 남진(男眞)과 여선(女仙)의 지위가 다스려지는 바가 밝게 드러난다.


동쪽의 동왕공인 목공을 진방에 적용한 것은 진방이 문왕(文王) 후천팔괘에서 동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서쪽의 서왕모인 금모를 태택에 적용한 것은 문왕 후천팔괘에서 서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음일양하는 자연의 현상과 그 질적 차이를 각각 해와 달 및 ‘긍정적’인 청한 기운과 ‘부정적’인 탁한 기운에 적용하고 있는 것은, 주대(周代)에 남성을 혈연의 중심으로 보는 종법제가 실시됨과 동시에 형성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신이나 여선의 경우도 ‘양선음악(陽善陰惡)’과 ‘양주음종(陽主陰從)’의 적용을 피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동아시아 신화에서 여신 혹은 여선에 대한 규정 중 주목할 것은 여신과 여선에 관한 ‘음유지미(陰柔之美)’를 통한 미에 대한 기술이다. ‘양강지미(陽剛之美)’는 주로 남신(男神)과 관련된 남성성, ‘음유지미’는 주로 여신과 관련된 여성성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서왕모의 경우는 특히 음유지미와 관련하여 장식미인이란 점을 강조한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런 점을 절세미인이되 특히 장식미인의 특징을 보이는 서왕모의 용모와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