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미인 서왕모(西王母) 이야기 Ⅱ

  • 492호
  • 기사입력 2022.05.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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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3. 절세미인으로서 장식미인 서왕모


앞서 기술한 서왕모의 이상과 같은 언급에서 주목할 것은 무시무시한 반수반인의 서왕모가 ‘머리꾸미개’를 하고 있다는 이른바 ‘여성성’과 관련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문화에서 미인을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이 많다. ‘우유빛 피부의 엉긴 기름[凝脂]’, ‘방정한 매미 이마와 초승달 모양처럼 길게 굽은 누에 눈썹[螓首蛾眉]’, ‘붉은 입술과 흰 이[丹唇皓齒]’ 등이 그것이다.


머리를 장식하고 다듬는 것으로 남성에게는 갓이 있다면 여성에게는 ‘머리꾸미개[승勝]’이란 것이 있다. 남성의 갓은 정제됨 몸가짐을 하기 위한 도구지만 여성에게  ‘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외모를 꾸며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한 장식이란 면이 있다. 이에 『산해경』의 서왕모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을 보자.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옥산이란 곳인데, 이는 서왕모가 거처하는 곳이다. 서왕모는 그 형상이 사람같지만, 호랑이 이빨에 표범 꼬리를 하고서 ‘휘파람[嘯]’을 잘 분다. 더부룩한 머리에 머리꾸미개[勝]’를 꽂고 있다. 그녀는 하늘의 재앙과 형벌을 주관하고 있다.(『山海經』 「西次三經」)


서왕모에 관한 기술에서 ‘玉으로 만든’ 머리꾸미개를 하고 있다는 공통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점이라면 이곳 두 번째 기술에서는 ‘더부룩한 머리’에 머리꾸미개를 하고 있다고 하여 더부룩한 머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 머리를 머리꾸미개[勝]로 장식한 서왕모


이런 정황과 관련해서는 두가지 판단이 가능하다. 하나는 더부룩한 머리를 묶기 위해서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꾸미기 위해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남성의 경우 더부룩한 머리라도 일반적으로 머리꾸미개를 통해 머리를 묶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왕모의 머리꾸미개는 장식화된 인위적 장식미인의 서막을 알리는 장치라고 본다. 머리꾸미개는 표범꼬리와 호랑이 이빨이 주는 남성성의 무서운 양강 이미지와 반대되는 유약한 여성 이미지에 해당한다. 머리꾸미개를 계절에 적용했을 때는, 화사한 봄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이해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서는 ‘대승(戴勝)’은 늦봄의 새라고 한다. 이후 머리꾸미개는 진대(晉代)에서 유행하고, 당대에 이르면 여성들이 자신의 용모를 꾸미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두광정은 『용성집선록』 「서왕모전」에서 서왕모가 봉발로서 머리꾸미개를 하고 있고 호랑이 이빨을 하면서 휘파람을 잘 분 것은 서왕모의 사신인 백방의 백호이지 서왕모의 ‘진형(眞形)’은 아니라는 반전을 꾀한다. 이에 서왕모의 외모와 관련된 장식화된 미인의 전형을 기술한다.

그럼 이처럼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서왕모 외모와 관련된 기술을 보자. 두광정이 묘사한 서왕모의 형상은 장식화된 여인상이다.


자운(紫雲)의 연(輦)을 타고, 아홉가지 반린(斑麟)을 몰면서, 천진(天真)의 채찍을 허리에 두르고 금강(金剛)의 신령한 옥새 노리개를 차고, 황금 비단의 옷을 입은 모습이 문채가 선명하고 금빛 광채가 혁혁한 모습의 서왕모는 허리에는 경색(景色)의 검을 나누어 차고, ‘나는 구름 모양[飛雲]의 큰 띠[大綬]를 매고, 머리 위에는 화계(華髻)를 하고, 태진(太眞)의 별모양의 끈이 달린 관을 쓰고, 네모난 옥에 봉의 무늬가 있는 신을 신고 있는데, 나이는 20여 세 정도 된다. 천연의 자태는 농염하고 영묘한 얼굴은 절세미인이니 참으로 신령한 사람이다.


‘자운’은 상서로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도교 색채가 묻어 있다. ‘9마리’의 ‘9’는 황제를 상징하듯이 지존의 경지를 의미한다. 타고 있는 수레를 형용하는 것, 몰고 있는 용, 들고 있는 채찍, 차고 있는 옥쇄 노리개, 입고 있는 황금 의복, 허리에 차고 있는 경색의 검, ‘비운’ 모양의 큰 띠, 머리를 장식하는 머리꾸미개와 쓰고 있는 관, 더 나아가 신발까지 봉황무늬가 있는 외모와 장식은 그 어느 것 하나 속된 것이 없는 고귀하면서도 존엄한 신분임을 보여준다. 이런 형상은 최상층 신분의 전형적인 꾸밈새로서 장식미인의 절대 표본에 해당한다. 주목할 것은 이같은 외적 장식적 요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얼굴이 매우 아름답고 20여 세 정도 되는 절대미인이란 여성관에 담긴 유미주의 요소다.


이같은 절대미인의 서왕모는 남성이라면 황제를 비롯한 그 어떤 남성이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여선으로 변한다. 더 나아가 도연명 같은 경우는 서왕모가 장수와 더불어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부탁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교태를 머금은 아름다운 여인과 연관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이같은 서왕모에 담긴 변천은 음양론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상의 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런 장식미인이면서 유미주의적 서왕모에 대한 미적 관념은 유가의 경전인 『시경』 「관저(關雎)」에서 말하는 ‘요조숙녀’가 ‘군자호구(君子好逑)’라는 차원의 여성상, 「도요(桃夭)」에서 말하는 미래의 남편 집을 화목하게 만드는 결혼적령기의 복숭아같은 여성상과 다르다. 특히 「석인(碩人)」에서 말하는 ‘회사후소(繪事後素)’ 차원의 백색 미인과 다르다.


4. 나오는 말


유가는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배제한 사유의 영향을 받아 신화가 깃들일 공간을 제한하였다. 상대적으로 도가와 도교는 신화 혹은 ‘괴·력·난·신’을 통해 유가와 다른 철학과 미학을 전개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양성평등 사회에서 매우 성차별적이면서 불편한 표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점을 동아시아 신화와 여성이란 주제에 적용하면 그 불편함과 차별성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 하나의 예로 제왕은 물론 문인사대부로부터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랑을 받았던 서왕모에 대한 인식 변천을 들 수 있다. 주목왕(周穆王)과 서왕모의 사랑을 그린 『목천자전(穆天子傳)』에서는 여선으로서 서왕모가 주목왕과 함께 시를 나누고 재회의 소망을 피력하는 것을 통해 ‘여성으로서 남성과 교감이 가능한 대상’으로 변한다.


▲〈瑤池宴圖 요지연도〉  : 西王母가 곤륜산(崑崙山) 연못  요지(瑤池)에 周穆王을 초대해 연회를 베푸는 모습.


이제 『산해경』에서 최초의 야성적이고 중성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인간의 이상적 미의 동경에 부합하는 여신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 그것은 서왕모가 이제 가부장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의 하나로 자리 매김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목천자전』의 주인공이 종법제도가 확립된 서주의 주목왕으로서, 이미 문왕(文王)의 후천팔괘도가 상징하듯 음양관의 차별화가 적용된 시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류 창조 신화에 남신이 출현하는 것은 바로 부계 씨족 시대의 남녀 양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반영한다. 즉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는 신화 속 여신에 대한 인식 변화와 관련이 있다. 양강지미를 잘 보여주는 영웅으로서의 황제(黃帝)를 비롯하여 복희[包犧] 등의 남성신들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농경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런 점에 비하여 서왕모의 경우 여신에서 여선으로 변화하고 그 과정에 절대미인으로 규정되거나 혹은 사랑의 대상이 변모하게 되는데, 이런 변화에는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과 시선이 담겨 있다. 남성과 함께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여성상의 한 단면을 서왕모가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동아시아 신화와 여성에 대한 음양론적 이해는 동아시아 신화와 여성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