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명리설 비판

  • 516호
  • 기사입력 2023.05.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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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國破山河在 : 나라가 깨졌어도 산천은 그대로 있고

城春草木深 :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푸르러 간다.


唐代 두보(杜甫)가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고 수도 장안(長安:西安)이 점령된 시점에 읊은 「춘망(春望)」이란 시구의 일부분이다. 두보가 살던 시대에는 대규모 전쟁이 있더라도 산천은 크게 피해를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현대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현대 무기를 사용하는 산악전이라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그럼 전쟁이 없는 정황에서의 오늘날 산천의 모습은 어떨까?


2. 과거와 다른 현대인의 삶의 정황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산에 터널을 뚫거나 도로를 건설해 산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어떤 곳은 통째로 산을 깎아 산 자체가 없어진 경우도 있다. 물길도 댐과 저수지를 만들어 물의 기존 형태가 변형되거나 혹은 물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경우도 있다. 풍수의 기본이 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공간에서 산이 없어져 평지로 변하고 물길이 변한 곳도 많다. 과거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일컬어지는 곳도 예전만 같지 않다.


이처럼 도시마다 새롭게 건설된 신도시의 면모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기존 산천의 모습은 많이 변했고, 지역에 따라 그곳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느냐 하는지에 따라 과거 풍수지리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언급한 곳이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바뀐 곳도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누에를 사육하는 곳이면서 과거 툭하면 물에 잠겼던, 낙도(落島)라고 일컬어진 잠실(蠶室 :강남지역)은 지금 부촌의 상징이 되었다. 과거 한국과 중국 역사에서 최악의 유배지였던 한국의 제주도(濟州島), 중국의 해남도(海南島)는 이제 누구나 가보고 싶은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다.


이런 정황에서 기존 풍수지리서에서 오늘날 이같이 새롭게 탄생한 부유한 신도시를 길지(吉地)로 언급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지형과 관련된 기의 흐름과 물의 흐름 등이 중요했다. 과거 물[水]이 재화의 쌓임이란 점과 연계되어 논의된 것은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정황에서 제기된 사유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도로가 발달된 오늘날 정황에서는 이런 점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서울에서 과거 수로를 통해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마포 등]들이 쇠락한 지역으로 변하고 강남이나 서울 도심처럼 사통팔달 도로가 뚫린 지역이 상업의 중심지로 변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더 중요한 것으로 ‘자본의 흐름’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그 자본의 흐름은 과거 풍수지리서에서 길지 등으로 말한 것과 큰 관련성이 없다면 과거 풍수지리서에서 제기한 이론과 다른 차원의 이론 보완이 요구된다.


* 세종대왕 : 문화재청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홈페이지

조선조 어효첨(魚孝瞻)은 비보(裨補) 풍수 차원에서 당시의 풍수를 보는 자가 궁성의 북쪽 길을 막고 성내에다 가산(假山)을 만들어 지맥(地脈)을 보충하게 하기를 청한 것에 대해, 과거 중국역사에서 나라를 세울 때 수도로 정한 곳이 동일하더라도 국운의 길고 짧음이 같지 않기에 나라의 운수가 지리설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역사적 실례를 들어 논증한 적이 있는데, 어효첨 견해의 논리성에 감동을 받고 합리적 판단을 내린 인물은 세종이다.


의료기술 발달과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 섭취로 인해 요즘은 과거 60세가 되면 관행처럼 행해졌던 ‘환갑잔치’를 한다면 눈초리를 받을 정도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 유발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인간이 신이 되는 ‘호모데우스[ Homo Deus]’ 시대의 도래까지 예견한다. 이제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神仙)이 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과거라면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기준이었던 관료적 삶은 오늘날에는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정도의 직업이 되었고, 때론 특정 기업체 이름을 앞세운 ‘**공화국’이 상징하듯 이제 큰 재부와 권력은 자본가의 차지가 되었다. 예술의 경우 과거에는 ‘딴따라’라고 폄하되었을 법한 防彈少年團[약칭: BTS] 멤버들은 전세계 그 어떤 인물보다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名士]’가 되었다. 이밖에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상기후는 과거에 있었던 기후에 입각해 저술된 명리 텍스트가 과연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인지를 의문시하게 한다.


이제 모든 분야의 상황이 변화된 시점에서 과거 풍수명리 텍스트가 갖는 적확성과 효용성은 어느 정도 유효할까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이란 땅에서 중국중심주의에 입각해 저술된 풍수명리 텍스트의 내용을 불변의 진리 혹은 ‘정칙(定則)’으로 믿고 추숭(追崇)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조선의 사람이다. 조선시를 즐겨 쓰리라[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는 말을 통해 주체적 문학사상과 철학사상을 펼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조에서 그 어떤 인물보다도 합리적으로 풍수와 명리를 비판한 학자인데, 이같은 정약용의 명리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한국 정황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3. 정약용의 「갑을설(甲乙說)」에 나타난 명리설 비판


정약용은 기본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작성된 ‘갑을설(甲乙說)’ 및 역법(曆法)을 가지고 정약용 자신이 살던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이치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있다[於理不必然也]’라는 사유를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를 들어 증명한다. 정약용은 우선 운명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역법이 시대마다 변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된 역법을 가지고 옛날 제왕ㆍ성현ㆍ경상(卿相) 등의 사주(四柱)의 갑자ㆍ을축을 모아서 길흉을 증명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명리학의 대가로 추앙받는 곽박(郭璞)이 진력(晉曆)을 가지고 길흉을 추정한 것과 원천강(袁天綱)과 이순풍(李淳風)이 당력(唐曆)을 가지고 길흉을 추정한 것을 정약용이 살던 시대의 역법으로 채용한다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중국명리학사에서 곽박(郭璞), 원천강(袁天綱), 이순풍(李淳風) 등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정약용의 이같은 비판은 명리학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에 해당한다.


정약용은 보는 시각에 따라, 걸음을 옮기는 데에 따라 방위가 갖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사유는 방위가 갖는 일종의 중국 중심주의 사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반도를 해동(海東)이라 하거나 동국(東國)이라 일컫는 것은 모두 중국을 중심으로 한 규정에 해당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반도는 중국을 중심으로 했을 때 해동이 아니라 그냥 ‘어느 한 지역’에 있을 뿐이다.


정약용은 동일한 사유에 입각해, 지리적 측면에서 자신이 사는 곳의 기후만을 기준으로 하여 천지의 ’일정한 기후[恒氣]‘로 결정한 것도 이치상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하면서 역법과 관련해 지역에 따른 해 뜨는 시각과 기후의 다름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늘날 각국이 사용하는 표준시는 다르다. 미국같은 나라는 표준시만 해도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미국 이전에 대국이었던 과거 중국의 경우도 지역에 따라 표준시가 달라야 하는데 북경시만을 표준시로 사용한다. 과거 대국이었던 중국의 이런 정황을 감안하지 않고 저술된 명리학 텍스트의 내용은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약용이 이처럼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일종의 ‘한 지역 중심주의’와 연계된 사유를 문제삼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한국에서 명리를 전공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정약용이 특히 문제삼는 것은 과거에 만들어진 갑을론을 만고에 바꿀 수 없는 ‘정칙(定則)’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약용은 그것은 ‘이치에 있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가 없다[於理不宜然也]’고 결론 내린다.


*  다산 정약용 초상화.

정약용은 ‘풍수설’과 ‘일월설’ 등을 통해 풍수명리가 갖는 문제점을 철학적 측면에서 매우 정치(精致)하게 비판하고 있다.



4. 나오는 말


중국철학사를 보면 왕충(王充)은 『논형(論衡)』 「문공(問孔)」에서 “이 시대의 유생과 학자들은 스승을 맹신하고 고인을 추앙하며 성현의 말은 모두 잘못이 없다고 여긴다”라는 말을 필두로 하여 『논어』에 기술된 공자의 언행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성인인 공자의 언행을 불변의 진리 및 ‘정칙’으로 삼는 것을 문제삼는다. 왕수인(王守仁)은 ‘뭇 성인은 모두 그림자에 불과하니, 양지야말로 나의 스승이다[千聖皆過影, 良知乃吾師]’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良知 철학을 전개한다. 이같이 기존 유가 경전 및 성인들의 말에 대해 비판적 자세로 임한 학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은 기존 풍수명리 텍스트에 대한 비판에도 유효하다고 본다. 즉 공자와 같은 성인(聖人)들도 비판당하는 판에 성인이 아닌 인물들이 저술한 기존 풍수명리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고전은 변화된 정황에 맞는 비판과 재해석이 있을 때 지속적인 생명성을 갖게 된다. 이제 기존 풍수명리 텍스트 이론을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할 때 온고(溫故)를 벗어나 지신(知新)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기존 풍수명리 텍스트에 대한 ‘차고이개금(借古而改今)’식의 해석이 요구되는 시점이 도래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