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불이선란도〉와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

  • 568호
  • 기사입력 2025.08.01
  • 편집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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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동양서화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유명한 인물들은 모두 서예와 회화에 모두 장기를 떨친 인물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들을 거론하면, 중국 북송대 미불(米芾), 원대 조맹부(趙孟頫)와 예찬(倪瓚), 명대 동기창(董其昌)과 문징명(文徵明), 청대 정섭(鄭燮)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을 서예가들에게 물어보면 유명한 서예가라고 말하지만, 화가들에게 물어보면 매우 유명한 화가라고 말한다.

▲ (왼쪽) 米芾, <春山瑞松图> / (오른쪽) 米芾, <吴江舟中诗卷> 부분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을 도외시하고는 조선조 서화사의 핵심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추사 김정희의 경우는 정섭을 알지 못하면 추사의 회화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처럼 서화에 모두 뛰어난 인물들은 서화는 심성(心性)을 표한다는 것과 추구하고자 한 미의식은 공통적인데, 그 바탕에 깔린 이론은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 혹은 ‘서화일원론(書畵一源論)’, ‘서화이명동체론(書畵異名同體論)’ 등이다. 서화동원론의 경우 육서(六書) 중의 하나가 상형(象形)인데, 그 상형이 서예와 회화적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곤 한다.

▲ (왼쪽) 鄭燮, <蘭竹石圖> / (오른쪽) 鄭燮, 《行書墨蘭苦茗七言聯》


2. 심화(心畵)로서의 서화와 서화동원론

서화동원론은 어느 한 시대에 제기된 것이 아닌 동양 서예와 회화의 발전 내력이 담겨 있다. 중국서화예술사를 보면, 서예에서 한말(漢末)부터 유행한 초서(草書)는 이제 실용적 측면에서 벗어나 예술 차원에서도 문인 사대부들이 즐기고 익혀야 할 장르에 속한다. 하지만 회화는 달랐다. 문인 사대부들이 회화를 즐기기 시작한 것,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산수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송대에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예술은 기본적으로 천지자연의 이치 혹은 도(道)를 하나의 점과 획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예술가가 도 혹은 이치를 표현하려면 먼저 그것을 마음에 체득한 다음 기교를 통해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동양예술은 예술가의 심을 표현하는 예술로 규정한다. 이런 점에서 동양에서의 시·서·화는 모두 심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당연히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청대 화가인 왕원기(王原祁)는 “서예는 비록 하나의 기예지만, 기(氣)는 서권(書卷)에 합하고 도는 심성에 통한다. 이런 이치에 깊이 계합(契合)하는 자가 아니면 서예창작을 하는데 가볍게 수작하지 말라.[王原祁, 『麓臺題畵稿』「送厲南湖畵冊十幅」]”고 말하는데, 이런 사유는 회화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서예와 회화의 불가분리성은 그것들이 모두 예술가 개개인의 마음속에 깃든 주관적인 정취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회화에 비하면 서예가 개개인의 마음속 주관적인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은 일찍이 거론되었다. 송대 곽약허(郭若虛)는 “서화는 정사(情思)에서 발한다[書畵發之於情思]”라고 말한다. 정은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고, 사는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결국 서화는 마음을 비단이나 종이에 찍고 그린 일종의 심인(心印)이 형상화된 심화(心畵)다. 송대 미우인(米友仁)은 “양웅(揚雄)은 글자를 심화로 보았는데, 이치를 궁구한 자가 아니면 그 말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없다. 호회화도 심화이다.[米友仁,『題新昌戱筆圖」]”라고 하여 서화를 모두 심화로 본다. 심화이기에 그것을 형상화한 것에서 인간의 사정도(邪正)도 구분된다. 아울러 심화이기에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손에 의하여 드러나고 이에 ‘득심응수(得心應手)’와 ‘심수쌍창(心手雙暢)’ 등을 강조한다.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작품은 서화 모두 기운생동(기운생동)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서예의 전완법(轉腕法) 및 용필법(用筆法)이 요구되고, 이에 서화동원론이나 서예와 회화는 둘이 아니라는 것이 강조된다.


3. 영자팔법(永字八法) 書畵同源論

서예(書道)와 화도(畵道)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일단 서예의 요체를 알아야 한다. 정섭은 서화는 동일한 이치라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화법을 알려면 서법[서예]에 통해야 한다. 난과 죽을 그리는 것은 초예를 쓰는 것과 같다[鄭燮, 「題蘭竹」]”고 말한다. 정섭의 이 말은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 혹은 서화동체론(書畵同體論)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서법에 통할 필요가 없고, 또 난죽을 그리는데도 초서와 예서를 쓰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잘 그릴 수 있다. 초상화, 공필화(工筆畵) 등과 같이 물상(物象)과 참으로 닮은 그림을 그리는 형사(形似)적 차원의 회화를 말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림이나 글씨는 바로 작가의 인품이나 마음을 담아내야 한다는 사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서화동원론과 유사한 사유는 송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실제 서화동원론을 강조한 것은 원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이면서 화가인 조맹부(趙孟頫)다. 조맹부는 호가 송설(松雪)로서 조선조를 휩쓸었던 송설체의 주인공이다. 조맹부가 말한 서화동원론의 핵심은 “돌은 비백체(飛白體)로, 나무는 주서(籒書)로 하라. 대나무를 그리려면 또 영자팔법에 통해야만 한다. 모름지기 서화는 본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趙孟頫, 「秀石疏林圖卷」]”라는 것이다. 서예의 획을 운용하는데 강조하는 영자팔법은 단순히 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대나무를 그리는 데 적용이 되고, 비백체도 돌을 그리는 데 적용하라는 것은 그만큼 회화에서의 서예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趙孟頫, <秀石疏林圖>. “石如飛白木如籒, 寫竹還需八法通. 若也有人能會此. 方知書畵本來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  趙孟頫, <證道歌>. 당나라 승려 永嘉玄覺이 지은 「證道歌」를 松雪體로 쓴 작품



서화동원론을 강조하는 경향에는 어떤 기법과 운필법을 통해 그리는 것이 문인 사대부들이 지향하는 우아하고 고상한 문기(文氣)와 사기(士氣)를 표현하는 예술이 가능한가 하는 미학적 질문이 담겨 있다.


4. 추사의 <불이선란도>와 서화동원론

추사가 <불이선란도>를 그리면서 응용한 동기창(董其昌)의 서화동원론 차원의 이론은 유명하다.


선비가 그림을 그릴 때는 마땅히 초예와 기자의 법으로 그려야 한다. 나무는 마치 쇠를 구부린 듯하고, 산은 마치 모래에 획을 그은 듯하여 달콤하고 속된 좁은 길을 완전히 제거하여야 이에 사기(士氣)를 이룰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엄연히 격에 이르더라도 이미 환쟁이의 마귀의 세계에 떨어져 다시는 구제할 약이 없다.*




* 董其昌, 『畵旨』, “士人作畵, 當以草隸奇字之法爲之. 樹如屈鐵, 山如劃沙, 絶去甛俗蹊徑, 乃爲士氣. 不爾, 縱儼然及格, 已落畫師魔界, 不復可救藥矣.”


사기를 표현하는 문인화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림을 그릴 때 ‘예서를 쓰는 법을 운용하라는 것이다. 예서체는 글자의 변화 형태가 풍부하기 때문에 문인화가가 추구하는 고상한 뜻, 맑고 높은 흉금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간결한 선으로 형체와 생명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사가 <불이선란도>에서 “초예와 기자의 법으로 난초를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그 뜻을 알 수 있으며, 어찌 좋아할 수 있으랴.[以草隸奇字之法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라는 발언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동기창의 이상과 같은 서화동원론적 예술 창작 정신이다.


▲ (왼쪽) 董其昌, <婉戀草堂圖>  / (오른쪽) 董其昌, <般若波羅蜜多心經>


난을 치는데 삼전법(三轉法)을 강조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난을 치는 것과 관련하여 “난을 치는 법은 또한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文字)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기운[文字香, 書卷氣]이 있는 다음에야 될 수 있다. 또 난치는 법에 그림 그리는 법칙을 쓰려면 한 번의 붓놀림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화가로서) 조희룡(趙熙龍) 같은 무리는 나에게 난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을 그리는 법칙 한 길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그의 가슴속에 문자의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金正喜, 『阮堂全集』 권2「書牘·與佑兒」]”라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난 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회화에 속한다. 하지만 추사는 난을 치는 것이 서예의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깝다고 하고 또 난 치는 법에 그림을 그리는 법을 쓰려면 한 번의 붓놀림도 하지 말라고 한다. 거기다가 난을 치는 것에 문자향과 서권기를 더할 것을 요구한다. 그냥 난 잎 하나 ‘휙’ 하고 그으면 될 것 같은데 난 하나 치는데 요구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사유는 기본적으로 서화동원론이 작동한 결과다.

서화동원론은 결국 서예와 회화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지향하는 미의식은 무엇인가와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서예나 회화가 모두, 탄성이 풍부한 모필(毛筆)의 일필휘지(一筆揮之)를 통하여 기운(氣韻)이 생동하는 획과 서권기를 요구하는 사유의 결과물이 서화동원론이다.


5. 나오는 말

심화로서 서화의 용필은 동법이고, 서화는 동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예술가의 심령(心靈)과 성정(性情)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사유가 깔려 있다. 아울러 인간이 자연과 화해를 이루면서 천지의 화육(化育)에 참여하는 인간의 삶을 기운이 생동하게 형상화시키고자 하는 사유도 깔려 있다.

이같은 서화동원론에 입각한 예술창작론을 오늘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즈음 우리 주변을 보면 서구미술사조가 도입된 이후 서예는 물론 문인화를 포함한 전통예술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예는 서예대로, 회화는 회화대로 각각 따로 놀고 있고, 과거 문인들이 서예와 회화를 통해 지향한 바를 망각한 채 소재적 차원, 기법적 차원에서의 작품만 나열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거 서화동원론을 주장하면서 예술가들의 작품이 명품으로 평가받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섭이 강조하는 것과 같이 서예는 회화의 요체를, 회화에서는 서예의 요체를 가미하여 작품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