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동양문화
- 574호
- 기사입력 2025.11.03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288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창세기 9:13절)
노아의 방주 고사를 보면, 홍수가 끝난 다음 무지개가 뜨자 이제 비가 오는 재앙이 멈춘다는 희망 섞인 바람을 보인다. 무지개는 고난이 끝나고 희망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긴다. 즉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거로 무지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 마르크 샤갈, <노아의 방주>. 상단의 중심에 흰색 무지개 안에 천사가 있다.
하단 오른편의 노아는 편한 자세로 왼손으로 턱을 괴고, 샌들은 벗고, 흰색 무지개와 노란색 천사를 즐겁게 쳐다보고 있다.
이 그림은 흰색 무지개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동양문화에는 혹심한 자연재해를 군주의 덕의 유무 및 나라의 변고 등과 관련하여 이해하곤 하였다. 하늘이 군자에게 주는 ‘꾸지람[譴告]’으로 여겼다. 자연 현상에 대한 이같은 정황에서 흥미로운 것은, 『시경』 「용풍(鄘風)」의 「무지개[체동(蝃蝀)]」라는 시에서 무지개를 음란함의 상징으로 본다는 것이다.
▲ 이 아름다운 무지개[虹]를 동양인들은 음기와 양기가 부적절하게 관계를 가진 음란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2. 무지개[虹]의 음란함
체동재동(蝃蝀在東) 무지개가 동쪽에 있으니
막지감지(莫之敢指) 감히 손가락질 못하도다.
여자유행(女子有行) 여자가 결혼함은
원부모형제遠父母兄弟 부모형제를 멀리 떠남이라.
조제우서(朝隮于西) 아침 무지개가 서쪽에 오르니
숭조기우(崇朝其雨) 아침에 비 그친다.
여자유행(女子有行) 여자가 결혼함은
원부모형제(遠父母兄弟) 부모형제를 멀리 떠남이라. *
* 『詩經』 「鄘風」 「蝃蝀」
흔히 여자가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란 점을 보여주면서 그것과 관련해 무지개를 읊은 ‘체동’이란 이 시는 남녀가 ‘음탕한 짓을 하는 것[淫奔]’을 풍자한 시라고 한다. 무엇이 음분하다는 것인가? 이런 사유는 바로 음양론 차원에서 해와 무지개를 논한 것에서 출발한다. 주희(朱熹)는 “해와 비가 사귀어 순식간에 바탕[質]을 이루니 혈기가 있는 부류와 같다. 이는 음양의 기운이 마땅히 사귀지 않을 때에 사귀는 것이니, (무지개는) 대개 천지의 음란한 기운[淫氣]이다. 동쪽에 있다는 것은 저물 때의 무지개다. 무지개는 해를 따라서 비춘다. 그러므로 아침에는 서쪽에 있고, 저녁때는 동쪽에 있다.”라고 풀이한다.
혈기가 있는 부류라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휩쓸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무지개가 뜨는 현상과 연계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해의 양의 기운과 비의 음의 기운이 사귄다는 것은 부적절한 관계다. 하지만 서로 사귄 것은 천지의 음란한 기운이 작동한 것이고, 이 천지의 음란한 기운이 작동한 결과 나타난 것이 무지개라는 것이다. 저녁 무지개를 먼저 말하고 아침 무지개를 나중에 말한 것은 음(陰)이 와서 양(陽)을 사귀었기 때문이다.
정이(程頤)는 ‘체동’에 대해 “사람이 욕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마땅히 제지해야 할 것이 있다. 제지할 줄을 모르고 욕정만 따른다면 인도(人道)가 폐기되어 금수에 들고, 도(道)로써 욕정을 제지하면 명에 따르는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무지개는 천지의 음기(淫氣)가 뭉쳐서 된 것이므로 음흉하고 간사한 기운이나 그런 기운을 가진 사람 혹은 욕정의 상징이 된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잘 안되지만 과거에는 달랐는데, 그 다름에는 음양론이 작동하고 있다.
▲ 2016년 8월. 미국 미주리주(州) 뉴헤이븐에 뜬 안개무지개(fogbow)
3. 요기(妖氣)로서 흰무지개[白虹]
무지개에도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조선조 유학자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전전긍긍한 것은 바로 흰무지개[白虹]가 출현했을 때다. 허목은 『기언』 「요기」에서 「체동」에서 말한 무지개 이외에 흰무지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운기(雲氣)가 적황색(赤黃色)으로 사방에 가득하고 밤새도록 땅을 비추면 대신(大臣)이 제멋대로 날뛰는 데 대한 보응이다. 흰 무지개는 온갖 재앙의 근본이고 온갖 어지러움의 기초이다. 안개는 온갖 사악한 기운이니, 음이 와서 양을 덮는 것이다. 무릇 흰 무지개와 안개는 간신이 임금을 모해하고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러 위세를 세우는 것이다. 낮에 안개가 끼고 밤에 밝은 것은 신하의 뜻이 펴지는 것이고, 밤에 안개가 끼고 흰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은 신하에게 근심이 있는 것이며, 낮에 안개가 끼고 흰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은 임금에게 근심이 있는 것이고, 무지개의 머리와 꼬리가 땅에 이르는 것은 피를 흘릴 조짐이다.*
백홍은 흰무지개 같은 흰 빛의 무리를 말하는데, 옛날에는 음(陰)의 사특(邪慝)한 기운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이 해를 꿰뚫는 천문 현상이 일어나면 소인이 군자를 올라타고 억눌러 화란(禍亂)을 일으키는 조짐으로 여겼고, 이것을 ‘백홍관일(白虹貫日)’이라고 한다. 허목이 풀이한 정치적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백홍관일 차원의 자연 현상은 실제 조선조 정치상황에서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윤선도(尹善道)가 풀이한 백홍관일의 정치적 의미를 보자.
태양은 모든 양(陽)의 으뜸으로 인군(人君)의 상징이요, 백홍(白虹)은 음(陰)의 사특한 기운으로 화란(禍亂)의 씨앗입니다. 백홍이 해를 꿰뚫는 변고는 대개 음이 양을 올라타고 양이 음에 억눌린 것을 의미합니다. 음양을 가지고 인사(人事)에 비유하여, 양을 붙들어 일으키고 음을 억눌러 제어해야 한다는 설이 경전(經傳)에 자세히 보이니, 지금 꼭 일일이 거론하여 죄다 설명할 것은 없고, 우선 시무에 절실하고 긴급한 것만을 간략히 전하에게 진달할까 합니다. 군자는 양이고 소인은 음이니, 군자가 나아오고 소인이 물러가면, 어찌 백홍관일(白虹貫日)의 변이 있겠습니까. 군부(君父)는 양이고 신첩(臣妾)은 음이니, 군주의 권위가 신장되고 신하의 권세가 수렴되면, 어찌 백홍관일의 변이 있겠습니까. 문(文)은 양이고 무(武)는 음이니, 문을 위로 하고 무를 아래로 하면, 어찌 백홍관일의 변이 있겠습니까. **
음양론 관점에서 태양은 양으로서 인군의 상징이고 백혹은 음의 사특한 기운으로서 화란의 씨앗이란 점에서 출발하여 ‘백홍관일’을 설명한 윤선도의 「응지소(應旨疏)」와 유사한 내용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에게도 보인다.
그런데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臨御]’ 이래로 15년 사이에 정치의 효과는 들리지 않고 세도(世道)는 날로 허물어지고, 三光[해, 달, 별]이 상도를 잃고, 수해와 한재가 함께 극심하는 등 천재와 재변이 달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쓰는 시기에 또 ‘흰무지개가 태양의 면을 뚫고 지나가는 참상[백홍관일]’을 보게 되니, 신민들이 놀라고 두려워서 조석을 보존할 수 없습니다. 요괴는 스스로 일어나지 않고 빌미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
이상과 같은 백홍관일의 변고가 일어나면 조정에서 회의를 하고, 군주는 자신의 부덕함을 반성하기도 한다. 숙종 때의 일이다.
지금 하늘을 가로지른 요사한 별과 음사한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은 일들이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할 이변인 데다 더구나 그것들이 한 달 동안에 겹으로 나타나고 있다...조용히 생각하면 그 허물은 오로지 과인의 몸에 있는 것으로 밤이면 두려움에 떨고 방황하면서 마음속에 생각이 그칠 사이가 없다. ****
* 許穆, 『記言』 「妖氣」 참조.
** 尹善道, 『孤山遺稿』 권2 「應旨疏」 참조.
*** 司諫院請進德修政箚
**** 『國朝寶鑑』 43권 「肅宗朝 3, 6년(경신, 1680)」
물론 이상 본 바와 같이 무지개가 부정적인 것으로만 여겨진 것은 아니다. 소동파[蘇東坡: 蘇軾]는 「집영전연치어(集英殿宴致語)」에서 “무지개 흘러내려 성명(聖明)의 시대 열었나니, 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상서가 아니로다.[流虹啓聖, 非人力所致之符]”라고 하여 무지개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장유(張維)는 뻗치는 기운의 상징으로 무지개를 상정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秋風倚劍氣如虹 가을바람에 칼 짚고 서니 무지개처럼 뻗치는 기운. *
倚醉揮毫氣吐虹 술기운에 일필휘지 무지개처럼 뻗는 기운. **
詞場聲價跨煙虹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문단의 명성. ***
성운(成運)도 장유와 거의 유사한 사유를 보인다.
古貌驚人氣吐虹 고인 같은 출중한 용모에 무지개 토하는 기상이라. ****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장유나 성운이 모두 노장에 밝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무지개를 단순 자연현상으로 보고 그 아름다움과 기상에 초점을 맞추어 읊은 것은 아닌가 한다.
▲ 王充은 『論衡』 「寒溫」에서 홍수는 정치나 품행의 결과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자연재해와 군주의 성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정한다.
* 張維, 『谿谷集』 권30 「經素沙戰場」 참조.
** 張維, 『谿谷集』 권30 「次副使遊漢江韻」 참조.
*** 張維, 『谿谷集』 권31 「李同知春元挽」 참조.
**** 成運, 『大谷集』 卷之上 「仙遊居士索詩。題荒句以塞其勤」 참조.
4. 나오는 말
『서경(書經)』 「요전(堯典)」에는 요임금 재위할 때 9년 동안 홍수[九年洪水]가 일어나 물이 하늘에까지 흘러넘쳐 광대하게 산을 둘러싸고 높은 언덕을 침수시켜서 백성들은 매우 근심하였다는 것이 나온다. 자연재해와 군주의 덕의 유무를 따지면 요임금은 부덕한 인물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임금은 유가의 대표적인 성인으로 추앙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한대 왕충(王充)은 이미 이런 점에 대해 『논형(論衡)』 「한온(寒溫)」에서 홍수는 군주의 정치나 품행의 결과에 따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다. 하지만 조선조 유학자들은 여전히 자연재해 및 현상을 국가의 안위 및 군주의 덕의 유무와 연계하여 이해하곤 하였다. 그 하나의 예가 바로 ‘무지개[흰무지개 포함]’였고, 이상과 같은 무지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서양과 다른 독특한 자연 이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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