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일미(茶隱一味) 차문화와 현대적 의미

  • 582호
  • 기사입력 2026.02.26
  • 편집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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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동양[동아시아] 차문화(茶文化)는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였다. 중국 차 문화의 역사를 보면 ‘다’(茶: 茶에 관한 발음은 편의상 일반적 용례 및 사용하는 문장에 따라 달리한다. 예를 들면 茶山 丁若鏞을 ‘차산 정약용’이라고 하면 어색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에 관한 경전으로 당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을 꼽는다. ‘차는 액체로 된 지혜다’, ‘차는 한 잔의 인생이다’라는 차에 관한 잠언이 말해주듯 동아시아에서 문인들이 마셨던 차는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었다.


 ▲ 劉宋年, 〈鬪茶圖〉. 왼편 아래부터 위로 시작하여 오른편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투차를 준비하고 끓인 차를 따르고 마시고 품평하는 투차 전반의 정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송대는 차가 일반화되면서 최고의 차로 선정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었기에 ‘다툼[鬪]’이란 용어를 쓴다. 

전반적으로 色·香·味를 제대로 갖춘 최고의 차를 품평하기 위한 긴장감이 흐른다.


‘동양은 문인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문화 주도의 핵심은 문인이었다. 물론 ‘조선조는 사대부의 나라’라고 해서 중국과 조금 다른 점은 있지만 조선조 사대부들이 추구한 차 문화의 핵심도 문인 차 문화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양의 문인들은 예로부터 차를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사유를 깊게 하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로 여겼다. 차에 관한 발언에서 화(和), 경(敬), 청(淸), 적(寂), 은(隱), 유(幽), 아(雅)를 비롯하여 사무사(思毋邪) 등을 거론하는 이유다.

중국 차문화사를 통관하면 이같은 차는 양생과 수양에 도움을 주고 때론 ‘시의 흥취를 돕고[조시흥(助時興)]’, ‘신선의 영험한 경지에 통한다[통선령(通仙靈)]’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등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되곤 하였는데, 그 최종적인 결론은 차와 은일을 동일시하여 이해한 ‘다은일미(茶隱一味)’ 차 문화다.


▲ 徽宗, 〈文會圖〉 부분. 정치에는 무능해 북송을 망하게 한 혼매한 군주였지만 書畵에 뛰어난 장기를 보였고, 

차에도 조예가 깊었던 휘종이 신하들을 위해 버드나무가 우거진 봄철에 마련한 찻자리 그림. 

왼편 가운데 흰옷을 입고 신하들에게 손으로 권유하는 인물이 휘종이다.



2. 송대 휘종(徽宗)의 구별 짓기 차 문화


중국 역대 문인들의 음다(飮茶) 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흔히 동진(東晉)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차가 갖는 실질적인 효용성 및 그 특성에 관한 규정은 당대 육우가 『다경』을 지은 것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차에 관한 전문적인 저술과 차 문화에 대한 철학적 규명은 당대 육우의 『다경』에서 시작하여 이후 명대까지 저술된 다양한 다서(茶書)에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정황에서 주목할 것은 명대부터 제기된 문인[문인과 사대부는 다르지만, 편의상 본 추천서에서는 사대부를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들의 은일(隱逸)적 삶과 관련된 차 문화, 이른바 ‘다은일미(茶隱一味)’ 차원의 차 문화다.


흔히 차의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육우의 『다경』은 송대 이후 문인들이 추구한 차 문화의 전모를 밝혀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육우는 차의 속성을 ‘차가움[한(寒)]’으로 규정하고 이 같은 차는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덕을 겸손하게 실행하는[정행검덕(精行儉德)]’ 인물에게 적합하다고 여겼다. 차의 효용성으로는 주로 양생(養生) 차원에서 접근한 점이 많다. 이 같은 육우의 차에 관한 논의가 직접적으로 적용된 것은 당대를 이끌어 갔던 주된 세력의 하나인 귀족과 스님들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차의 속성과 관련하여 말해지는 화, 경, 청, 은, 유 등과 같은 속성은 육우 『다경』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즉 후대 송대 이후 문인들이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추구한 조화롭고 관계 지향적인 삶, 운치 있는 삶에 근간을 두면서 철학과 미학 차원에서 새롭게 규명된 것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용어가 익숙하게 된 송대에 와서다. 그 정점을 보여주는 것은 휘종(徽宗)의 『대관다론(大觀茶論)』이다.


휘종은 『대관다론』에서 ‘(차의 본질적인 속성인) 맑음[청(淸)]을 이루어 조화로움[화(和)]에 인도하고, 운치[운(韻)]가 높아지니 고요함[정(靜)]을 이룬다[치청도화, 운고치정(致清導和, 韻高致靜]’라는 발언을 통해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단순히 음료를 마신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관계를 조화롭게 하고 자신의 내면의 안정을 추구하는 관계 지향적이고 수양적 차원임을 밝혔다. 이 같은 차에 관한 규정은 결과적으로 차가 개인 차원의 음료에서 사회 관계성 차원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특히 휘종이 자신이 마시는 차는 일반 평범한 ‘백성[용인(庸人)과 유자(孺子)]’과 다르다는 이른바 ‘구별 짓기[Distinction]’ 차원의 차 문화를 전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차에 관한 철학적, 미학적 차원의 시도가 이루어진다. 송대의 ‘좋은 차를 고르기 위한 다툼[투차(鬪茶)]’과 차의 색(色), 향(香), 미(味)를 꼼꼼히 따지는 문화가 발생한 것은 바로 이같은 차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차가 단순 음료가 아닌 문인들이 추구한 삶과 수양 및 미의식과 연계되자 많은 다시(茶詩)를 통해 이런 점을 읊는 현상도 발생한다. 송대 차 문화가 당대 차 문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며 이후 차 문화의 철학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된다.


 ▲ 文徵明, 〈惠山茶會圖 부분〉. 차를 끓이는데 ‘천하 두 번째’로 좋다는 혜산 계곡의 물을 찾아 수레와 배를 타고 간 문인들의 독특한 차 문화를 그린 그림. 

제대로 된 차 한잔을 마시고자 했던 문인들의 매우 독특한 취향을 보여준다.


3. 주권(朱權) : 임하(林下) 차 문화와 다은일미의 상관성


시대가 흘러 명대에 오게 되면 송대와 다른 차 문화가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은일 지향적 삶과 관련된 차 문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 시발점에 있는 것은 주권(朱權)의 『다보(茶譜)』다. 주권은 『다보』에서 차에 관한 효용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한 잔의 차에 담긴 맑은 기운은 수양의 도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시적 흥취를 돕는 역할, 정신을 맑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선령(仙靈)에 통할 수 있다는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누구나 마시는 차가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화되는 길이 열린다. 이러한 정황에서 주목할 것은 자연에서의 차 문화[林下에서 즐기는 차 문화]에 대한 발언이다. 이제 차가 집단적 성격에서 개인적 성격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같은 전환의 핵심은 은일 지향적 차 문화로 귀결된다.


명대는 환관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역대 황제들이 무능했고 많은 문인들을 탄압하였다. 이 같은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은 의외로 송대와 다른 차 문화가 발생하는 계기로 작동하였다. 문인들은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보다 명철보신(明哲保身) 차원에서 은일 지향적 삶을 추구하였고, 이런 정황에서 한 잔의 차는 그러한 삶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 唐寅, 〈事茗圖〉. 하루 해가 긴 날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차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겠다[事茗]’는 은사의 삶을 그린 것


은일 지향 전통은 중국 고대 은대(殷代)부터 있었고 당대의 백거이(白居易) 등이 중은(中隱)을 주장하는 등 다양한 변천을 거치는데, 그것이 문인들이 지향한 문화적 형태와 결합되어 나타난 것은 명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명대부터 이루어진 다은일미적 차 문화는 중국 문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한국 차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서양과 차별화된 동양의 인간상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은일적 삶을 사는 선비[은사(隱士)]’를 거론할 수 있다.


은(隱)이 동양 문인들의 삶에서 단순히 ‘숨는다’, ‘물러난다’라는 행위 차원에서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태도, 미의 전략, 문인이 추구한 이상적인 삶,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문예 차원에서 요구된 핵심 철학과 미덕이 담긴 용어였다. 즉 문인들이 거론한 ‘은일 지향적 삶’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명철보신(明哲保身)을 통한 자기 보존과 탈속 지향적 삶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문인들은 ‘세속의 질서가 도와 어긋날 때’, ‘권력과 명예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탁하게 될 때’ 주로 은일적 삶을 택하곤 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차는 은일적 삶의 동반자이면서 문인 자신의 심상이었다. 이러한 차 문화는 특히 명대에 유행하게 되는데, 명대 문인들은 한 잔의 차를 통해 ‘맑음[청(淸)], 담담함[담(淡)], 고요함[정(靜)], 조화로움[화(和)], 마음 비움[허(虛)], 그윽하고 조용함[유(幽)], 탈속 지향적 삶[은(隱)]’ 등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에 문인들이 자연[임하(林下)]에서 한 잔의 차를 달여 마시면서 검소하지만 아취(雅趣)가 있고 품격 높은 삶의 표상으로서 차가 운용되었다.


아울러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것은 마음을 씻는 것[세심(洗心)], 거경(居敬)의 삶을 실천하는 것,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궁리(窮理)의 실천 도구로서의 차 문화로도 이어졌다. 그 결과 기존과 다른 새로운 문인 차 문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홀로 마시는 차가 신묘하다[독철왈신(獨啜曰神)]’라는 사유에 바탕하여 제기된 이른바 ‘차와 은일적 삶은 동일한 경지라’는 다은일미(茶隱一味) 사유다. 이같은 다은일미 차 문화가 갖는 독특한 의미는 흔히 차하면 거론하는 ‘차와 선(禪)의 동일시함[다선일미(茶禪一味)]’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차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송대 이후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차에 관한 저서[茶書]’가 나타나는데, 이같은 많은 다서에서 강조하는 차 문화의 핵심은 은일과 연계된 것이다. 즉 과거 문인들이 추구한 은일적 삶은 단순히 세속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공간 선택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주목할 것은, 이같은 명대에 형성된 은일 지향적 차 문화는 조선조 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은일미 차원의 차 문화에 대한 이해는 폭넓게 말하면 동아시아 문인들의 차 문화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문인들이 추구한 다은일미 차원의 다도 미학은 형식 차원에서 차를 마시는 기술과 의식과 거리가 멀고, 차를 매개로 인격을 완성하고 올바른 삶을 지향하는 총체적 인간학의 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4. 나오는 말


그럼 다은일미 차 문화가 갖는 현대적 의미를 보자. 한국 차 문화라고 하면 흔히 ‘한복 입고 차를 다리는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형식화되어 있고, 왜 차 한잔을 마시는가 하는 점에 대한 철학과 미학 차원의 제대로 된 분석은 없었다. 이런 정황에서 다은일미를 통해 동양 문인들의 차 문화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연구는 중국은 물론 한국의 차 문화 현실에 비추어 볼 때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급격한 사회변동의 시대를 살아간다. 이런 정황에서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오히려 인간 내면은 소외되고 항상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되새김하면서 바쁜 일상을 영위하곤 한다. 이른바 한때 피로사회[Fatigue Society]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한 시대적 상황에서 차분함과 절제, 관계와 성찰을 중요시하는 다도 정신과 철학은 단지 과거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시대적 정황에서 볼 때 과거 문인들이 추구한 다은일미 차 문화는 오늘과 미래에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중요한 인문 자산에 속한다. 오늘날 동양 문인 차 문화에서 다은일미를 통해 지향하는 차 문화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