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는 시선에 담긴 철학(1):
정선(鄭敾) <간화삼매경도(看花三昧境圖)>
- 584호
- 기사입력 2026.03.31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518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늘그막에 벼슬과 권력보다는 학문과 예술, 소박한 삶을 통한 은일적 삶을 지향하고자 한 북송대 구양수(歐陽修)는 자신을 ‘여섯 가지 종류의 하나[一]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육일거사(六一居士)라 칭한다. 그가 말한 여섯 가지란 ‘만권의 책[一萬卷書], 천 권의 금석문 탁본[一千卷金石遺文], 금[一琴: 古琴], 바둑판[一棋], 술동이[一壺酒] 및 자신의 늙은 한몸[一老翁]’이다. 이를 통해 구양수가 독서 이외에 무엇을 하면서 즐겼는지 대강을 알 수 있다.
▲ 蘇軾[東坡]의 스승인 歐陽修는 정치가·시인·문장자·역사학자로서 당송팔대가에 속한다. 「朋黨論」, 「秋聲賦」는 회자되는 글이다.
三多[多讀, 多作, 多商量]를 말하고 서예를 통한 즐거움을 말한 인물이기도 하다.
성리학[新儒學]으로 무장한 구양수를 비롯한 북송대 문인과 사대부들은 이전 시대인 당대의 귀족·문벌 중심 문화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문화적 이상을 정립하였다. 그 핵심에는 인간의 가치를 선천적 신분이나 혈통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인격과 세련된 문화적 취향을 통해 규정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자리한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 학문적 성취, 심미적 감식안이 사회적 정체성과 위상을 형성하는 기준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팔아(八雅)’는 이러한 경향을 잘 드러낸다.
▲ ‘八雅’에 해당하는 각각을 그림으로 그린 것
2. ‘팔아(八雅)’ 속의 ‘꽃 감상하기[看花]’
* 팔아 : ‘고금(古琴) 타기, 바둑 두기[棋], 글씨 쓰기[書], 그림 그리기[畵], 시 짓기[詩], 술 즐기기[酒], 꽃 감상하기[花], 차 마시기[茶]’
팔아는 단순한 취미 목록이 아니라 문인사대부의 신분과 학문적·사회적 풍격, 그리고 예술적 품위를 드러내는 문화적 실천이다. 독서는 문인사대부의 본업이자 팔아의 기초에 해당하므로 별도로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은 관료로서의 바쁜 일상에서도 틈을 내어 팔아를 향유함으로써 내면의 여유와 정신적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특정한 문화적 취향을 통해 사회적 차이를 드러내려는 ‘구별 짓기(distinction)’의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같은 실천은 이전 시대의 귀족·문벌 중심 문화와 분명히 다른, 새로운 문화적 이상을 태어난 신분이 아니라 수양된 인격과 취향으로 보는 데서 전개된다. 이 가운데 특히 꽃 가꾸기와 꽃 감상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자연을 단순한 관조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일상 속에서 돌보고 교감하는 실천을 통해 심미성과 도덕적 수양을 함께 추구하려는 태도를 반영한다.
특히 ‘꽃을 본다(看花)’는 행위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꽃이 실제로 피어 있는 순간에만 성립한다. 따라서 이는 계절성과 시간성에 의해 제한되는 경험이며, 바로 그 한정성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간화는 자연의 순환과 변화에 대한 감응을 전제로 하며, 인간이 자연의 시간에 자신을 조율하는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관계 맺기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鄭敾, 〈看花三昧境圖〉. 향나무를 제외하고 방안 기물, 마루의 선비, 뜰의 화분 등 삼단 분할로 나누어진 이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작약꽃을 바라보는 그림 속 선비의 시선이다.
3. 겸재(謙齋) 정선(鄭敾) : 〈간화삼매경도〉
때는 바야흐로 작약꽃이 피는 5월 말, 6월 초 전후인 것 같다. 어느 선비가 초여름의 더위를 느낄 무렵 잠시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의관을 완전히 풀지 않은 채 마루에 앉아 부채를 부치며 쉬고 있다. 부채를 부쳐야만 하는 계절이 된 것은 분명한데, 인물은 갓을 쓰고 의관을 걸친 상태에서 버선까지 신고 있다. 옷을 조금 풀어 헤치고 버선이라도 벗으면 시원할 터인데 점잖은 선비 체면에 그것은 할 수 없다. 선비는 언제 어디서나 몸가짐을 삼가야 하며, 홀로 있을 때조차 스스로를 경계하는 ‘신독(愼獨)’의 태도를 견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위에 점잖은 선비 체면에 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채를 부치는 일뿐이다. 비록 방종한 기좌(箕坐)에 해당하는 자세는 아니지만 경망스럽지 않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엄격한 정좌(正坐)나 위좌(危坐)가 아닌, 이처럼 다소 몸을 완화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유학적 규범에서 보자면 긴장이 느슨해진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바로 이처럼 몸과 마음이 더위에 느슨해진 그 순간, 우연히 선비의 시선은 화분에 핀 작약꽃에 머문다. 늦봄부터 초여름에 피는 작약은 꽃이 크고 화려해서 흔히 ‘봄의 끝을 알리는 꽃’으로도 불리는데, 비슷하게 생긴 모란보다 약간 늦게 핀다. 아마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부채를 부치다가 문득 꽃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부채질을 멈추고 부채를 무릎 위쪽에 무심히 내려놓은 채 꽃을 응시하는 모습은, 감각적 주의가 외부 사물[꽃]에 깊이 몰입된 상태를 보여준다. 이같은 차원의 간화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집중과 몰입을 통해 마음이 한곳에 모아지는 일종의 ‘삼매(三昧)’적 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상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은 틈에서 오히려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단 이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정제되면서도 움직임이 없는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 속에 작약꽃을 바라보는 강력한 응시가 적막감을 더욱 부추긴다. 얼굴 가까이서 부치던 부채를 무릎 근처 멀리 두고 정지된 상태에서 부채 부치는 것조차 잊은 듯 진지하게 꽃을 바라보는 눈매에서 주일무적(主一無適)의 경(敬)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이같은 간화삼매경(看花三昧境)에 빠진 모습에 더위도 한풀 꺾인 것 같다.
▲ 金弘道, 〈醉後看花圖〉. 《中國高士圖 八帖屛風》 중 하나
4. ‘본다는 것[看]’에 담긴 철학
동양 회화 전통에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이 존재하지만, 특정 대상을 정해놓고 깊은 사유 속에서 그것을 응시하는 ‘시선’ 자체를 이처럼 강조한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인 꽃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인식 방식과 내면 상태이다. 즉, 시선은 단순한 시각적 행위를 넘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행위로 확장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비의 ‘간화’는 유가적 수양론 및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실천으로 해석될 수 있다. 꽃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향유가 아니라 구체적 사물에 대한 집중적 관찰을 통해 그 속에 내재한 이치[理]를 체득하고,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꽃이라는 자연 대상을 매개로 하여, 외적 세계에 대한 인식과 내적 수양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 이 그림은 자연에 대한 심미적 향유와 도덕적 성찰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동양 문인사대부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나는 이 그림을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라, ‘꽃을 본다[看花]’는 행위에 내재한 철학적 의미-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식과 수양의 과정-를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간화는 동양 문인사대부 문화가 지향한 심미적 체험과 도덕적 성찰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지점을 드러내는 사유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흔히 독서 이후에 여가를 즐긴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독서여가도(讀書餘暇圖)’라고 부른다. 문제가 있다. 방안에는 장식적으로 배치된 중국 서적[華本]과 한적(韓籍)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 실제로 독서가 이루어지고 있는 흔적은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올바른 독서를 했다면 더위도 별로 느끼지 못했고 더구나 땀이 나서 부채를 부칠 이유가 없다. 기타 성장(盛裝) 차림의 옷차림새는 독서보다는 외출에 어울린다.
특히 여가라는 말은 더 어울리지 않는다. 여가란 선비의 경우 본업에 해당하는 책을 읽고 경전의 의미를 밝히거나 혹은 강학(講學)과 명도(明道) 이후 남는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퇴계 이황(李滉)에 대해 “선생이 강학하고 도를 밝히는 여가에 때로 ‘서예(書藝)’에 마음을 두셨는데 글씨 획이 단아하고 필력이 굳세었다.”라는 평가는 이런 점을 증명한다. 따라서 한가한 틈을 타서 즐기는 여가도 우아함과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제한적이다. 화면 속의 인물이 문인사대부라면 여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명명한 〈간화삼매경도〉에는 이런 점과 관련된 흔적이 전혀 없다. 만약 그림의 주인공이 화가라면 도리어 독서가 여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본업이 그림을 그리는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5. 나오는 말
그림 속 주인공[이 그림을 그린 겸재 정선으로 추정된다]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사물과 자연 속에서 이치를 체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삶을 도야하는 과정이 작품 전체에 ‘간화’라는 차원으로 응축되어 나타난다. 문인사대부들이 지향한 외적 규범과 내적 수양, 및 심미적 체험이 긴장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에 해당한다. 이후에는 이러한 간화의 철학적 의미를 자연의 생리(生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관점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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