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꽃[無名花]과 노장철학
- 586호
- 기사입력 2026.05.04
- 편집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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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동양문화에서의 꽃[식물]은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 차원이 꽃[식물]이 아니었다. 인간의 덕을 식물에 비유한 비덕(比德) 차원에서의 사군자[梅蘭菊竹]는 이런 점을 대표하는데, 할미꽃과 장미를 통한 정치적 견해를 밝힌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는 이같은 꽃에 대한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우화에 속한다.
▲ (왼쪽부터) 할미꽃과 장미
설총의 「화왕계」에서 장미는 화려한 외형과 향기를 지닌 꽃으로서 권력에 아첨하고 군주의 환심을 사려는 신하지만, 군주는 이같은 외적 아름다움과 현란한 언어구사를 통한 아첨에 현혹당할 경우 결과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장미에 비해 외형적 화려함이 매우 부족한 할미꽃은 소박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으로서, 진실을 직언하고 정치의 정도를 지키면서 군주를 제대로 보필하는 신하를 상징한다. 따라서 볼품없는 할미꽃이 장미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장미와 할미꽃을 통한 비유에는 가치 판단을 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본질에 해당하는 내적인 진정성과 실질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하라는 비판적 성찰이 담겨 있다.
할미꽃은 장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지만 그래도 ‘할미꽃’이란 이름이 있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름 없는 꽃[無名花]’일 경우에는 그 존재 자체도 희미하다. 그런데 조선조 후기 호남의 실학자로 일컬어지는 신경준(申景濬)은 「순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에서 이름 없는 꽃이 갖는 의미에 주목하는데, 꽃을 바라보는 노장철학 사유가 진하게 담겨 있다.
▲ 설악산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 화백의 야생화
2. 꽃을 바라보는 시각
순창 출신인 신경준은 ‘순창의 정원[淳園]’에서 33종의 꽃을 심고 각각의 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데[「淳園花卉雜說」], 그중 하나가 ‘이름 없는 꽃[無名花]’이다. 인간은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사물에 이름을 부여한다. 인간의 삶 속에서 이름은 대상의 구별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 도구로 기능해 왔다는 점에서 인간의 언어적 사고 체계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이름이 과연 사물의 본질을 온전히 반영하는가에 대해서는 노자가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름은 항상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는 발언을 통해 이름과 본질의 괴리, 즉 언어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노자는 “도는 이름 없는 것에 숨어 있다[道隱無名](『노자』 41장)”라고 말한다. 신경준은 이름 없는 꽃에 대한 견해를 통해 이름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고 ‘무명(無名)’의 상태를 긍정하는데, 이러한 논의에는 노장철학의 언어관 및 사물인식이 담겨 있다. 먼저 무명화와 관련하여 발언한 핵심을 보자.
정원의 꽃들 중에 이름이 없는 것이 많다. 무릇 사물은 스스로 이름을 지을 수 없어서 사람이 이름을 붙여준다. 꽃이 이름이 없다면 내가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 좋겠지만 또 어찌 반드시 이름을 붙여야겠는가. 사람은 사물에 대하여 그 이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이름 밖’에 있다. 사람이 음식을 사랑하는 것이 어찌 음식의 이름이 사랑스럽기 때문이겠는가. 옷을 사랑함이 어찌 옷의 이름이 사랑스럽기 때문이겠는가.
‘상어지느러미 요리’, ‘곰 발바닥 요리’처럼 특정하게 이름 지어진 음식물을 맛있게 먹는 것은 그 이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상호명을 통해 명품이라고 일컫는 옷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에 이미 그 음식물의 맛이 있음과 옷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신경준은 일상적 사례를 통해 이름의 인위성과 비본질성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름은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 부차적이며, 경우에 따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사유는 장자가 “이름은 실질의 껍데기[名者, 實之賓](『莊子』 「逍遙遊」)”라고 한 말을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신경준은 세계는 이름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느낄 때 비로소 온전히 얻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경준은 이상과 같은 이름을 통한 인간의 판단을 문제 삼고 이름 없는 꽃의 이름을 알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름 없는 꽃에 의미를 부여한다.
▲ 설악산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 화백의 야생화
3. 무명화의 궁극적 의미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식물]을 인간이 아름답다고 여긴 기준을 통해 구분한다. 중요한 것은 거론되는 꽃들은 이미 ‘이름 있는 질서 속 존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난, 매화 등과 같이 식물에서의 꽃은 각각의 이름을 통해 고유한 성질과 미적 기준이 부여된다. 아울러 이름 지어진 꽃은 인간의 재배와 분류 및 감식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한 미적 질서로 완성되고 궁극적으로는 (군자의) 미학적 대상이 된다. 이같은 꽃에 대한 인식과 규정에는 유학에서 지향하는 미적 차원의 인간관, 자연 인식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 변산바람꽃. 1993년에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발견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발견하여 이름을 붙였지만, 무명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비해 야생화라고 일컬어지는, 자연에 제멋대로 흩어져 존재하는 꽃들은 상대적으로 인간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고 주목하는 것과 상관없이 인간의 좁은 삶의 영역보다는 드넓은 대자연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신들만의 꽃을 피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신경준의 무명화에 대한 견해를 보자.
나는 꽃들 중에서 이미 사랑스러운 것을 얻었는데 어찌 꽃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는가. 만일 사랑스러운 것이 없다면 참으로 이름을 짓기에 부족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있어서 참으로 이미 그것을 얻었다면 또 반드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신경준은 대상의 본질적 가치인 ‘사랑스러움’을 획득한 상태에서는 그 대상의 명칭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본질적인 결핍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대로, 만약 대상이 그러한 사랑스럽다는 긍정적 속성과 평가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을 명명 행위하는 정당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대상이 이미 사랑스럽다는 가치적 속성을 충족하고 있는 경우 이름을 통한 명칭의 부여는 필수적 조건이 아니며, 도리어 본질적 인식 측면에서는 부차적인 요소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에서는 ‘이름[名]’은 세계를 인식하고 질서화하는 핵심 기제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노장철학은 이러한 명명 행위가 본질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세계를 인위적으로 분절하고 제한한다고 보았다. 특히 노자와 장자는 언어와 개념이 실재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이름 이전의 상태, 즉 ‘무명(無名)’을 보다 근원적인 차원으로 제시한다. 이런 점과 관련된 신경준의 발언을 보자.
이름이란 구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만약 구별하고자 한다면 이름이 아닌 것이 없다. 형태로는 장단과 대소가 이름이 아님이 없고, 색깔로는 청색과 황색, 적색과 백색이 이름이 아님이 없다. 땅으로는 동서남북이 이름이 아님이 없다. 가까이에 있는 것을 ‘이것’이라고 하니 이것 또한 이름이다. 멀리 있는 것을 ‘저것’이라고 하니 저것 또한 이름이다. 이름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고 하니 무명 또한 이름이다. 어찌 다시 이름을 지어서 사치스럽고 화려하기를 구하겠는가.
무명(無名)’은 이름이 없다는 점에서 결핍된 상태로 규정될 수 있지만 노장철학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상태로 여겨진다. 노장은 이름과 개념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물을 상대화하여 구별하고 제한하는 인위적 장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름이 부여된 상태는 세계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면서 인간의 기준에 따라 사물을 특정 범주로 고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달리 무명은 아직 이러한 언어적 분별이 개입하기 이전의 상태로서, 이름 지음과 개념에 의해 규정되기 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의미한다. 즉 무명은 부족하거나 결여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언어적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어떠한 인위적 구분이나 해석도 가해지지 않은 온전한 상태이다. 이 때문에 노장철학에서는 무명이 사물의 본래적 성질이 온전히 보전된 상태 즉 도(道)를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꽃의 무명은 이름 지어짐으로써 분류되기 이전의 전체성, 개념화를 통한 판단 이전의 자연성이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꽃의 무명은 단순한 언어적 결여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아직 개입하지 않은 자연 본연의 상태를 상징한다.
이같은 무명화에 대한 인식에 대해 어떤 이는 “꽃은 원래 이름이 없는 게 아닌데, 네가 혼자 그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이건 이름이 없다[무명]’고 말해도 되겠느냐?”라는 질문을 한다. 즉 네가 모른다고 해서 원래 없는 것처럼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경준은 초나라 대부인 굴원(屈原)과 어부에 관한 고사를 인용한다. 즉 어부도 본래 이름이 있었을 것이고, 특히 같은 초나라 사람이었던 굴원이나 당시 사람들은 그 이름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후대에 어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어부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부의 삶과 태도에 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즉 사람들은 이름보다 어부라는 대상의 가치와 사유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굳이 어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4. 나오는 말
이름은 사물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구별하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물의 크고 작음, 길고 짧음, 미와 추 등 모든 분류 체계는 인간 인식이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구획이다. 즉, 이름은 세계 그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작용 속에서 생성된 인위적 기호 체계이다. 따라서 이름은 사물의 실재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실재를 분절하고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경준의 무명화에 대한 견해에는 노장철학이 언어를 본질의 직접적 표현으로 인정하지 않고 존재의 껍데기로 여기는 사유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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