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찾겠다 꾀꼬리!’: 정희량(鄭希良)의 ‘산은설(散隱說)’

  • 594호
  • 기사입력 2026.08.25
  • 편집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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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가왕(歌王)’ 조용필이 어린 시절 어둑해진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즐기던 숨바꼭질의 추억을 특유의 허밍과 리듬에 실어 노래 「못찾겠다 꾀꼬리」로 형상화한 ‘술래’는 숨은 이를 찾아 헤매는 존재요, ‘못 찾겠다’는 외침은 찾고자 하는 대상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을 뜻한다. 뜬금없이 이 노래를 거론하는 것은 조선시대 인물 중 세속의 시선을 피해 마치 ‘나를 찾아보라’는 듯 자취를 감추고 살아간 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 1469~?)이다.

1502년 34세 때 어머니가 죽자 경기도 고양에서 시묘(侍墓) 살이를 하다가, 산책을 나간 뒤 강가에 의관만 남긴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퇴계 이황(李滉)이 어렸을 때 산사에서 『주역』을 읽을 때 모르는 곳을 가르쳐준 인물이 허암이라는 등[徐命膺, 「虛菴傳」]’ 다양한 야사가 전해지는 정희량은 스스로 자취를 감춤으로써 역설적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찾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못찾겠다 꾀꼬리」의 ‘못 찾겠다’는 구절은 그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비유적 출발점이 된다. 그의 독특한 은둔 철학이 담긴 「산은설(散隱說)」*은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 ‘ChatGPT’가 그린 莊子가 말한 ‘山木’ 형상




* 鄭希良, 『虛庵續集』 卷之一 「散隱說」(a018_052c). 한국고전번역원 간행. 한국문집총간본.



2. 아무도 못 찾는 은둔 방식 : 산은(散隱)


“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 숨는 것이다. 성시(城市)에 있지 않으면 반드시 산림에 있다. 산림에서의 숨는 것은 숨는 것 가운데 작은 것이며, 성시에서의 숨는 것은 숨는 것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러나 산림도 성시도 오히려 세상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두 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산(散)’ 속에 숨는다면 누가 그 자취를 찾고 그 형체를 찾아낼 수 있겠는가? 숨어서 그 몸을 ‘산(散)’에 깃들게 하는 것이 옳다.”


「산은설(散隱說)」의 핵심은 ‘은(隱)’보다 그것을 수식하는 ‘산(散)’ 자의 개념이다. 정희량은 백거이(白居易)가 「중은(中隱)」이란 글에서 거론한 전통적인 은둔의 방식인 산림(山林)에서 은둔하는 소은(小隱)과 성시(城市)에서 은둔하는 대은(大隱)의 은거 방식을 모두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산림에 은거하는 것은 세속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하지만, 여전히 특정한 공간에 자신의 존재를 위치시키는 것이고, 성시에 은거하는 것은 더욱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 즉 누군가에 의해 찾을 수 있게 하는 ‘어떠한 공간[장소]’에 몸을 숨기는 것은 진정한 은둔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희량이 제시하는 ‘흩어진다[산(散)]’라는 것은 은둔자의 존재가 특정한 장소·형체·자취에 고정되지 않는 상태, 곧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일정한 형상으로 규정할 수 없도록 하는 존재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숨어야 올바른 것인지를 묻는 ‘산’자에는 경계의 해체와 자기 존재의 탈고정화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3. ‘산(散)’의 철학 배경: 장자(莊子) ‘무용지용(無用之用)’ 수용


“내가 나의 은거에 ‘산(散)’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대개 장자가 말한 산목(散木)의 ‘산’에서 따온 것이다. 그 나무는 궁벽한 곳에서 자라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져 있어, 개미가 그곳에 집을 짓고 벌레와 뱀이 울타리로 삼는다. 먹줄을 대해도 동량으로 만들 수 없고, 속을 파내어도 배로 만들 수 없다. 그 가지는 서까래로 만들 수 없고 그 뿌리는 수레바퀴로 만들 수 없다. 세상에 이로울 것이 없으니, 그것이 나와 닮지 않았는가?... 비록 그러하지만, 산목(散木)의 ‘산’은 목수 장석(匠石)이 지나쳐 가고 도끼와 자귀의 화를 면하니, 그 본성을 따르고 그 천성을 온전히 보존하여 다른 풀과 나무보다 오래 살아남아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죄악이 반드시 미치고[罪惡必及]’ ‘비방과 훼방이 반드시 이르며[謗毁必至]’, 조금만 움직여도 번번이 낭패를 당하니 나아가거나 물러날 때마다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얼굴을 미워하게 하고 나의 말에 성내게 한다. 이것이 어찌 ‘겉모습만 산(散)하고 내면은 산(散)하지 못한 것[散其外而不能散諸內]’이 아니겠는가?”


「산은설」에서 ‘산’은 장자적 무용지용(無用之用: 無用의 大用)의 사유를 바탕으로 세속적 질서와 공리적 가치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본성을 보전하려는 은둔의 의미를 함축한다. 정희량은 자신의 은(隱)을 ‘산목(散木)’의 ‘산’에서 취했다고 밝히면서 어떠한 실용적 목적에도 사용될 수 없는 산목의 형상을 자신의 존재와 대응시킨다. 산목은 세속적 기준에서 ‘무용(無用)’한 존재이지만, 그 무용성 때문에 도끼와 장인의 손길을 피하고 천성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결과적으로 大用]. 따라서 여기서 ‘산’은 단순한 무질서나 흩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리적 목적에 포섭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본래성을 지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으로서의 대용(大用)이란 역설이 있다.

그런데 장자의 ‘산목’이 장인의 도끼를 피하고 천수를 온전히 누리는 것과 달리, 정희량 자신은 ‘죄악필급(罪惡必及)’과 ‘방훼필지(謗毁必至)’ 등과 같이 세상일에 움직일 때마다 낭패를 당하다 보니 진퇴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 원인을 “겉모습만 산(散)하고 내면은 산(散)하지 못한 것[散其外而不能散諸內]”이라 진단하면서 외형적으로는 세속을 벗어났지만, 내면까지 완전히 흩어버리지는 못한 자신의 한계를 자각한다.

이상과 같은 정희량의 ‘산은(散隱)’에는 장자의 산목이 보여주는 ‘무용의 유용성[無用之用]’을 수용하면서, 세속적 유용성의 기준에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본성을 보전하려는 방외적 삶의 태도와 외적인 은둔만으로는 진정한 은일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경계하는 자경(自警)이 담겨 있다.


▲『大東奇聞』에 의하면, 정희량은 『周易』 (水火) 「旣濟卦」 이치로 火爐를 만들어 매끼마다 이 火爐 하나로 해결하였는데, 

후에 신선이 되었다고 점에서 이 火爐를 ‘신선로(神仙爐)’로 불렀다고 한다.



4. ‘산(散)’의 우주론적 분화와 ‘산은(散隱)’의 처세 철학


정희량은 이에 ‘산(散)’을 통해 추구한 은일적 삶은 단순히 세속을 떠나 숨어 사는 은거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주 만물의 생성·변화 원리인 ‘산’의 도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처세 방식을 제시한다.


“나무의 산(散)은 안으로 흩어진 것이요, ‘나의 산’은 밖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러나 산의 도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장차 그 큰 이치에 나아가 ‘나의 산’을 그 속에 의탁하려 한다. 태극이 흩어져 음과 양이 되며, 건과 곤이 되며, 육자[六爻]와 팔괘가 되며, 오행과 사시가 되니, 그 작용이 무궁하다. 천지가 흩어져 일월과 성신이 되며, 산악과 강하가 되며, 구름과 비가 되며, 바람과 눈이 되며, 우레와 번개가 되니, 그 변화가 무궁하다. 도가 흩어져 인과 의가 되며, 예와 지가 되며, 부자와 군신이 되고, 붕우와 부부가 되니,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어 애초에 끝이 있는 적이 없다. 태극이 합하여 흩어지지 않는다면 한 기(氣)에 머물 뿐이다. 천지가 합하여 흩어지지 않는다면 어찌 만물을 신묘하게 변화시킨다고 할 수 있겠는가. 큰 작용을 ‘무용(無用)의 가운데 의탁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산의 도’이니 내가 이 때문에 이러한 은일을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태극의 일기(一氣)가 음양과 건곤, 육효와 팔괘, 오행과 사시로 분화하고, 천지의 기운이 일월성신, 산천강하, 운우풍설 등의 다양한 현상으로 펼쳐지며, 도가 인의예지와 오륜이라는 구체적 도덕 질서로 드러나는 과정이 모두 ‘산’의 작용이라 규정한 것은 ‘산’은 하나의 본체가 다양한 현상과 작용으로 펼쳐지는 존재론적 분화의 원리라는 의미다. 정희량이 ‘산’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 은일은 이러한 우주적 질서에 역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이 된다.

이처럼 ‘산은(散隱)’의 본질이 한곳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화하고 유행하는 데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은일 역시 특정한 장소나 신분에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희량의 ‘산은’은 세속적 권력과 명리, 관료적 직분과 사회적 평가로부터 자신을 분산시켜 어느 하나의 관계나 장소에 종속되지 않는 삶을 뜻한다. 정희량은 세속적 질서가 요구하는 특정한 역할과 위치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자유롭게 하고, 고정된 사회적 자아를 해체함으로써 보다 본질적인 삶의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즉 정희량에게 ‘산’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자아의 비종속화이며, ‘은’은 이러한 자유를 실천하는 삶의 형식이다.

이처럼 정희량의 ‘산은’에서의 ‘산’은 우주의 생성 원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실존적 원리가 되고, ‘은’은 그 원리를 인간의 처세 속에서 구현하는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된다. 결국 정희량에게 은일은 세상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세속적 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우주의 변화 원리에 자신을 합일시키는 주체적 삶의 실천이었다.



5. 나오는 말


조선조 유학사에서 “장자가 나의 스승이다[「獨坐」: ‘蒙莊是我師’]”라고 선언한 보기 드문 인물이 정희량이다. 「혼돈주가(渾沌酒歌)」를 써서 장자의 혼돈 우화를 희화적으로 읊고, ‘허암(虛庵)’이라고 ‘빌 허(虛)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호를 정한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같이 정희량이 매우 뛰어난 인물인데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조선조 정치 상황이다.

정희량은 무오사화(1498) 때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고, 이후 갑자사화(1504)의 광풍이 일어나기 직전 자취를 감춘다. 이같은 정치적 정황을 허목(許穆, 1595~1682)은 ‘세변(世變)’이라 진단한다. 연산군 때 무오·갑자사화로 대표되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는 관료로서의 공도(公道)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대부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암울한 현실 상황에서 정희량이 제시한 ‘산은’은 단순한 정치적 패배나 수동적 도피의 산물이 아니었다. 조선 중기 사화의 광풍 속에서 사대부로서 겪어야 했던 존재론적 위기를 철학적으로 극복하고 자기 정당화를 이뤄낸 처세의 결정체이면서 정신적 자율성을 보존하고자 했던 조선 사대부의 외침이었다. 허목이 『기언(記言)』에서 정희량을 ‘청사(淸士)’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