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관한 동양철학적 고찰 Ⅰ

  • 477호
  • 기사입력 2021.10.13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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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유럽 문명이 지중해라는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과 달리, 바다는 동양[구체적으로는 동북아시아] 문명이 형성되는데 주류가 아니었다.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유럽문명과 문화를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민족이 결합해 서서히 형성되었음에 반해 아시아는 지중해와 같은 바다가 없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유럽중심주의’에 입각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가 처한 지리적 상황의 다름은 바다에 대한 인식 차이로 나타났다. 주로 농경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았던 중국문인들에게 삶과 직접적 관련이 없던 바다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동양 문인문화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물에 대한 인식과 함께하고 있다. 동일한 ‘물’에 대한 인식이라도 바다가 갖는 ‘알 수 없는 깊이’, ‘넓이’, ‘미와 추를 가리는 것 없이 받아들임’ 등과 같은 속성은 ‘도(道)’의 상징, ‘올바른 정치 행위와 관련된 바람직한 통치술’, ‘현실적 삶에서의 참된 지혜와 지식의 상징’, 때론 ‘현실도피와 연계된 은일적 삶’ 등과 연계되어 이해되곤 하였다. 이런 점에서 서양과 달리 인간이 극복하고 정복해야 할 자연대상으로서 바다가 아니었다.


서양문학사를 보면 바다와 관련된 소설은 많다. 『백경(白鯨:Moby Dick)』,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보물섬(Treasure Island)』, 『포세이돈 어드벤처(The Poseidon Adventure)』 등과 같이, 우리가 ‘바다’하면 떠오르는 소설 혹은 영화가 있다. 바다의 거센 파도가 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바다를 건너는 모험심은 바다와의 투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찾고자 하는 정복욕을 불러일으켰다. 바다에 대한 도전 과정을 통해 문명을 이룬 것이 서양에서의 바다의 이미지다. 그런데 중국에서 ‘바다’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소설은 없다. 바다라도 ‘관해정(觀海亭)’, ‘망양정(望洋亭)’과 같이 정자에서 바라본 바다였다. 이같은 점에 착안하여 서양과 달리 이해되었던 동양문인들의 바다에 대한 사유를 알아보자.


2. 『노자(老子)』 : 유약겸하(柔弱謙下)의 여성성에 근간한 정치적 바다


중국문화를 통관하면 ‘바다는 모든 내를 받아들인다[해납백천海納百川]’라는 사유와 유사한 말이 자주 나온다. 도의 속성과 관련해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라는 사유를 말하는데, 그 유약한 것의 가장 적합한 예로 물을 든다. 노자는 도의 속성을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다양하게 규명한 적이 있는데, 이같은 사유를 통해 강과 내 할 것 없이 육지의 모든 물이 모이는 최종적인 장소는 바로 바다라고 규정한다.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은 바다는 모든 물의 맨 아래에 있으면서 흘러들어오는 물의 맑고 깨끗한 것을 가리지 않고 다 포용하는 무차별, 무분별의 포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바다란 ‘도가 천하에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바다가 맨 아래에서 모든 물을 포용하고 자신을 낮추면서 다투지 않은 결과 그 바다에 모든 물이 귀의한다는 것을 말한다.


강과 바다가 계곡들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것이다. 백성 위에 있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몸을 남의 뒤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짐스러워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받들면서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다투려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다.



제왕이라면 이같은 바다의 속성을 반드시 따라야 함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바다가 갖는 속성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노자는 이처럼 부드럽고 약하고, 겸손하면서 자신을 낮추는 유약겸하(柔弱謙下)의 여성성을 통해 바다를 이해하고 아울러 이런 점을 정치에 적용해 제왕이 어떤 정치를 했을 때 천하가 모두 자신에게 귀의하는 가를 밝히고 있다. 노자의 바다에 대한 이같은 견해는 ‘해납백천’으로 귀결된다.


3. 『장자(莊子)』 : 소지(小知)에서 벗어난 대지(大知)와 도의 상징으로서 바다


『장자』 「추수(秋水)」에는 ‘망양지탄(望洋之嘆)’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위대한 인물이나 심원한 학문 또는 대자연에 대한 자기의 식견이 미흡함을 깨닫고 탄식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아울러 황하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지닌 ‘하백(河伯)’이 북쪽 바다와 같은 넓이를 가진 인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북해약(北海若)’을 만나 나누는 대화가 나오는데, 하백이 바다의 드넒음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협애한 지식에 근거한 것인지를 깨닫는 고사가 나온다.


가을철 황하에 큰 홍수가 난 상태에서 형성된 강의 큰 넓이에 대해 하백은 자신의 넓음이 갖는 아름다움에 스스로 감탄한다. 그런데 이것은 하백이 황하의 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 들어가 형성된 더 큰 아름다움이 있는 경지, 즉 바다를 모르는 상황에서의 판단이었다. 하백이 본 그 넓이가 갖는 큼이란 먼 거리에 떨어져서 말과 소를 구별할 수 없는 정도이다. 하백은 그것을 참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다가 북쪽으로 가서 끝없이 넓이를 알 수 없는 ‘북해(北海)의 약(若)’을 보고서 자신이 그동안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 얼마나 좁은 시야에서의 판단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하백의 이같은 깨달음의 결과는 도에 대한 올바른 체득과 판단과 관련이 있다.


하백이 북해약에게 바다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판단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을 인정하자, 이에 북해약은 이제야 큰 이치를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말한다. 하백이 황하의 물에 대해 내린 판단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판단에 속한다.


바다가 강하(江河)와 차이가 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득 차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는 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위대한 역량이 있는 바다는 스스로 많다거나 적다거나 하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냥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다르다. 장자는 이런 점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공자가 자신이 아는 것을 마치 박학한 것처럼 여기는 것을 든다. 공자의 앎이란 하백이 자신의 물이 가득한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 소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바다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하백의 판단은 소지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진리를 인식하는 방식의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유가가 ‘선을 택하고 그것을 불변의 진리로 단단히 지킨다[택선고집(擇善固執)]’는 원칙하에서 사물을 판단하라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 소지는 자신이 선택한 중심과 기준을 통해 여타 사물을 상대화하여 판단하는 분별지의 결과물이다. 이에 장자는 추수와 관련된 하백의 좁은 시야 즉 ‘우물 안의 개구리[정지지와(井底之蛙)]’와 같은 소지 차원에서 자신만이 옳다고 판단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대지 차원에서 세계의 모든 사물을 판단할 것을 말한다. 하백이 소지에서 벗어나 대지의 지혜를 갖추려면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평가하면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북해약은 ‘하나의 사물에 중심을 두어 다른 사물을 판단하는[이물관지(以物觀之)]’ 방식이 아닌 ‘전체를 기준으로 하여 사물을 판단하는[이도관지(以道觀之)]’ 방식을 알려준다.


장자는 이같은 대지와 도의 상징으로서 ‘바다’를 통해 우물 안의 개구리의 소지를 비판하는 것에는 공자와 공손룡(公孫龍) 등과 같이 어느 한 분야만을 진리라고 여기는 이른바 ‘일곡지사(一曲之士)’들의 제한된 지식과 판단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장자』「추수」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 우화를 통해 말해진 바다는 도의 상징이며 대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장자는 바다를 통해 철학적 측면에서는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 및 미학적 측면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바다’ 하면 해적이 떠오르는 것은 동양보다는 서양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합법적 해적을 등용한 것도 서양 바다 문명권에서의 일이다.


*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카나가와 바닷가의 높은 파도(神奈川沖浪裏)〉
호쿠사이와 같은 격량이 일고 있는 바다에서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은 이같은 정경은 중국과 한국의 문인들에게는 매우 낮선 것에 속한다.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가고 소식(蘇軾)이 해남도(海南島)에 유배갔던 상황이 아니면 내륙에 사는 문인들은 아마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일엽편주를 타면서 즐긴 정경은 많이 접할 수 있다. 소식이 「적벽부(赤壁賦)」에서 “작은 배가 물결 따라 흐르다가 만경(萬頃)의 아득함을 넘어간다. 넓고 넓구나, 허공에 의거하여 바람을 타는 듯 그 머무를 곳을 몰랐다. 가볍게 나는구나, 세상을 버리고 홀로 자유롭다보니 날개가 돋아 신선의 세계에 오르는 것만 같았다(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 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라고 읊은 것이 그것이다.


* 마원(馬遠), 〈운생창해(雲生蒼海)〉
남송대 활약했던 화원화가인 마원이 구름낀 창해를 그린 것으로, 중국회화사에서 매우 드물게 바다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한 귀퉁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기에 ‘마일각(馬一角)’으로도  일컬어지는 마원이 바다를 그린 의도는 아주 작은 경관 속에 광할하고 아득한 경계를 펼쳐보이기 위한 것이지 바다 그 자체를 그리고자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