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번역가 황석희를 만나다

영상번역가 황석희를 만나다

  • 384호
  • 기사입력 2017.11.24
  • 편집 한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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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 ‘데드풀’과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재밌게 봤을 것이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좋아해서 매 시즌을 챙겨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 영화와 드라마이지만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영상에 맞으면서도 우리가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 한글자막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와 드라마의 자막을 쓴 황석희 영상번역가의 특강이 지난 11월 15일이 퇴계인문관에서 열렸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강연이 진행되어 영상번역을 진로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Q. 어떻게 영상번역가가 되셨나요?
대학생 시절 영어교육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대학교 2학년 때 공부할 자신이 없어 임용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도망쳤어요. 당시 영어교육과의 특성을 살려 영어과외를 했고 덕분에 풍족하게 살았지만 언제까지 과외만 할 수 없으니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고민 했죠. 그러던 중 할 줄 아는게 영어 밖에 없으니 번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옮긴이로 적힌 책 한 권을 갖는 것이 꿈이었는데 초보에게는 책 번역을 맡기지 않죠. 계약서, 서신, 전문 번역 등 비슷한 번역만 했고 그런 번역들이 지겨워졌어요. 그래서 다른 번역들을 알아보았고 영상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죠.

처음 할 때는 영상 테이프와 대본을 받아서 번역 했는데 러닝타임이 1분 번역하는데 2시간 걸렸어요. 누구나 처음에는 오래 걸리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번역을 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듯 번역가가 되겠다는 소명의식은 없었지만 번역을 계속 맡아서 해 오다 보니 영상 번역가 황석희가 된거에요.

Q. 기억에 남는 오역은 무엇인가요?
번역을 하다 보면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오역이 없는 번역? 10명 이상이 감수를 해도 모든 작품에는 오역이 생겨요.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를 번역한 적이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얘기인 영화에요. 요리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정말 공들여서 자막을 쓴 작품이에요. 근데 영화 중간에 ‘sweetbread’라는 말이 나와요. 저는 당연히 ‘꿀빵’이라고 번역을 했죠.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소의 흉선을 가르키는 요리 재료였던 거에요. 민망했죠. 정말 공들여서 쓴 작품인데 저 민망한 오역으로 열심히 했다고 말도 못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오역을 100% 없앨 수는 없어요. ‘오역을 전혀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아니라 ‘오역을 최소화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번역을 해야 돼요.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누구나 틀릴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오역을 했으면 그걸 정리해서 다음에는 같은 문장을 잘못 번역하지 않겠다라고 명심하면 돼요.

오역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는 잘못한 번역들을 정리하는 방법도 있고 관객들의 피드백을 받는 방법도 있어요. 욕은 무시하세요. 의미 있는 피드백만 받아들여서 정리하고 다음에 번역할 때 참고 하면 돼요. 전문용어는 그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 요즘은 각 분야별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그 곳에서 물어보면 다들 친절히 알려주세요. 번역 작품들도 많이 찾아보세요. 찾아보고 비교하면서 좋은 것들은 배우고 나쁜것들은 버리세요. ‘영상번역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어요. 자신이 찾아보고 공부해야 하는 거에요. 그렇게 오역을 계속해서 줄여 나가면서 자신의 번역실력을 쌓는 거죠.

Q. 영화를 번역할 때 괴로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번역 할 때 괴로워요. 영화 번역은 대사가 어떻게 나오는가가 번역을 결정해요. 번역을 할 때 처음부터 완성본을 받지 않아요. 미편집본이 오고 몇 개의 수정본을 더 본 뒤에 파이널 작품을 받게 돼요. 문제는 매 영상을 받을 때마다 대사가 수정 돼요. 국내에서 호응이 좋겠다고 생각 돼서 신나게 번역한 대사가 다음 영상에서는 짤리고 이상한 미국식 개그로 바뀌어서 오기도 해요. 그럼 한숨부터 나오죠. 그러다가 제가 생각했던 좋은 대사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 때는 정말 감사하죠. 이렇다 보니까 어떤 대본이 오느냐가 중요해요.

영화 ‘데드풀’을 번역할 때가 정말 괴로웠어요. 부담 되죠. 하지만 이 작업을 할 때가 정말 웃겨요. 데드풀은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올 수 있는 대사가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친한 영상번역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같이 번역을 고민하는 경우도 있어요. ‘데드풀2’가 곧 나올텐데 차라리 저 말고 다른 분이 번역했으면 한 적도 있어요. ‘데드풀2’의 번역이 잘 안나오면 “에이 데드풀 1이 훨씬 낫네”라는 말을 들을 거잖아요. 다른 번역가가 번역을 했으면 “황석희가 더 잘했네”라고 하겠죠?

Q. 인공지능(AI)이 번역도 한다면 번역가의 미래 전망은 어떤가요?
현재의 AI수준 그 이전부터 이미 번역가들에게는 위기였어요. 특히 기술 번역은 위기감을 크게 느껴야 돼요. 문학 번역과 같은 일들은 인간의 감정을 다루고 있어 인간의 고유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아요. 아직은 AI가 인간의 감정을 100% 대체 하기 힘들죠. 그렇지만 AI로 한번 번역하고 영화사 내부에서 조금씩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가도 될꺼에요. 영화사 내부 인력만으로도 서툰 AI번역을 충분히 수정 할수 있죠. 그렇다 보니 저희 세대까지는 번역가가 괜찮지만 다음세대부터는 조금 걱정 되네요.

Q. 영상번역을 진로로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구어 번역을 할 때 중요한 한가지를 말하자면 캐릭터에요. 특히 영화 번역에서 캐릭터 번역이 중요하죠. 말투도 인물의 캐릭터에 맞게 설정해야 되고 시리즈 물이 있다면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캐릭터였는지도 잘 살펴봐야해요. 매 영화마다 인물의 캐릭터들이 달라요. 한 영화 안의 인물들도 캐릭터들이 다르고요. 그래서 하나의 말투로 모든 영화를 표현할 수 없어요. 어떤 뉘앙스 스타일로 인물의 다이나믹함을 표현하는가가 번역가의 차이를 내는 부분이에요.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우리는 늘 자막을 보고 자막을 통해 그 내용을 이해한다. 우리에겐 자막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런 자막은 황석희 영상번역가와 같은 분들의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다. 황석희 번역가의 특강은 영상번역 일을 꿈꾸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우리에게도 영상번역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특강을 통해 학생들이 영상번역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영상번역 분야를 발전 시킬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취재: 23기 이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