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아니라 방법을 찾는다”
이성희 (무용학과 92) 동문

  • 506호
  • 기사입력 2022.12.27
  • 취재 이채은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 조회수 6220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아갈까. 학교를 떠나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성균관대라는 나의 뿌리를 잊곤 한다. 여기 성균관대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그 가치를 높이는 동문이 있다. 92학번 무용학과 이성희 동문은 지난 92학번 홈커밍데이 <Back to the 1992>의 집행위원이었다. 본업은 대한무용협회 사무총장이다. 이성희 동문에게 홈커밍데이 집행위원으로 행사를 준비했던 과정과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봤다.


Q1.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 92학번으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현재는 대한무용협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이성희입니다.


Q2.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현재 대한무용협회에서 실무 책임자인 사무총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한무용협회는 우리나라 무용 분야의 많은 민간단체 중 대표성을 가진 단체입니다. 저희 협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서울무용제, 대한민국무용대상, 전국무용제 등 무용분야 대표적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무용인 일자리 창출과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여 2020년부터는 ‘서울형 뉴딜일자리 청년무용예술가 양성사업’과 ‘공연예술분야(무용) 인력 지원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3. 대한 무용 협회 사무총장으로서 ‘서울형 뉴딜일자리 청년무용예술가 양성사업’을 기획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요? 

우리나라 무용 분야는 일자리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몇몇 국공립 무용단에 소속된 무용인이 아닌 이상 무용인들의 대부분은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무용 예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용인들이 안정적인 직업 즉, 급여를 받기는 매우 어렵고 대부분은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공연에 출연제의가 있는 경우 공연 출연 횟수당 출연료를 받는 방식으로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무용은 K-POP이나 뮤지컬과 같이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무용공연의 예산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습니다. 무용계 실정이 이렇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예술인들의 안정적인 급여를 보장하는 것도 당연히 힘듭니다. 따라서 무용인들은 무용에만 종사해서는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서울형 뉴딜일자리 청년무용예술가 양성사업’은 이 점에 착안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을 민간 단체에 최초로 적용한 사업입니다. 저희 협회가 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단순히 무용인들에게 무용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에만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 무용인 개인에게는 일자리를, 민간 무용 단체에는 좋은 무용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실력 있는 무용수를, 궁극적으로 수준 높은 무용작품을 양산하여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선순환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일시적 ‘출연료’를 받는 기존의 방식을 바꾸고 10개월간 청년 무용예술가들에게는 급여를 그리고 단체에는 인력채용시 발생하는 4대 보험 기관부담금을 지원하여 실질적으로 청년무용예술가 1인당 월 260만원을 지원함으로써 무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사업은 청년무용예술가들이 민간 무용 단체에서의 현장 실무 교육을 통해 좀 더 나은 일자리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큐베이팅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4. 이 사업 외에 무용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그리고 대한 무용 협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하는 다른 사업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무용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아리랑을 노래할 수 있지만, 한국무용의 한가지라도 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현재 대학 무용학과에서의 교육도 실기, 그러니까 ‘무용수’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거든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졸업 후 무용수가 되는 인원은 1년에 채 100명도 되지 않습니다. 매년 1,500명 정도 무용학과 졸업생이 생기지만 나머지 졸업생들은 무용수가 되기를 기다리거나, 일회성 공연에 출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무용학과를 졸업한 무용전공자들이 무용수 외에도 무용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법 있습니다. 무용공연 기획, 무용 마케팅, 무용 홍보나 행정 부분 등 다양한 길이 있어요. 그러나 현재 대학의 무용 교육이나 교과과정이 이런 부분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에 무용학과 학생들은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무용 분야의 현장 실무에 종사하고 있어서 무용 교육 커리큘럼의 편향성이 가져오는 문제를 실감하고 있어요. 졸업생들이 기본적으로 행정이나 기획에 대해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되면 무용공연의 퀄리티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무용전공자들은 퍼포먼스만 하다보니 공연에 필요한 행정, 기획, 무대 연출 등은 무용전공자가 아닌 타 분야에서 인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하여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무용이라는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전공자보다는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죠. 또한, 무용가가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섬세하거나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무용 교육의 커리큘럼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정이나 기획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학교에서 조성하면 졸업생들이 현장에 투입되어 더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종사하고 있는 대한무용협회는 무용교육혁신위원회와 함께 무용의 공교육 교과 편입을 한 정책 수립에 힘쓰고 있고, 무용수 이외의 무용분야 직업 교육을 위한 플랜을 만들고 있습니다.


Q5. 이번 92학번 홈커밍데이 행사 <Back to the 1992>가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집행위원으로서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쓰신 부분, 그리고 소감이 궁금해요.

제게 성균관대는 항상 뿌리 같은 존재였습니다. 졸업 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런 소속감을 느낄 기회가 잘 없었어요. 이번 행사에서도 엉겁결에 집행위원을 맡긴 했지만, 바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큰 포부를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게 올해 가장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들 중 하나가 되었네요.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하나에요. 1992년 입학 당시의 39개 학과에서 최소한 한 과에서 한명이라도 동기를 모으자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동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집행위원을 맡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웃음). 홈커밍데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동문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한편으로 제가 연락을 취했을 때 답변해주는 동기들의 문자 하나하나가 힘이 됐어요. "좋은 기회에 연락주어서 고맙다.”, “수고하고 있다.” 같은 답변을 받을 때면 이게 성균관대라는 뿌리인가라는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Q6. 이번 홈커밍데이 행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요?

제가 공연 기획자의 길을 걷고 있어서 이번 행사도 제가 하는 사업들처럼 수준높고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전체 학과에서 축하 영상을 받자는 기획이라던가, 출연자들도 수준있는 공연자들로만 섭외하고 싶었죠. 하지만 제가 집행위원장으로 늦게 준비위원회에 참여했고 함께하는 준비위원들 대부분이 행사 기획에 대한 경험이 없는지라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실행되기는 어려웠어요. 그때 함께한 준비위원장들이 “우리는 프로가 아니니 조금 어설픈 모습도 보여주자”고도했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1992년 국내, 학내 10대 뉴스 기획전, 막걸리 웰컹드링크 등 좋은 의견을 내주고 몸으로 뛰면서 항상 저에게 힘이 되어 주었어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우리 동문들을 찾아보는 재미, 동문들에게 축하 영상을 전달받는 과정, 그리고 포스터, 배너, 홍보영상, 프로그램 등을 우리의 아이디어로 만드는 자체가 제게는 인상 깊은 에피소드입니다. 행사를 치르고, 기부금을 받는 그런 형식적인 과정을 떠나서 새로운 성균관대의 인연을 만날 수 있었어요.


Q7. 앞으로의 동문회, 그리고 내년에 예정된 93학번 홈커밍데이 행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요?

92학번 동문끼리 오는 12월 19일에 발족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저희 92동기들은 이번 행사가 의례적이고, 일회적인 행사로 남지 않기를 바래요. 입학 30년만에 어렵게 이은 인연인 만큼 92동기회는 좀더 의미있는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동기와 동문들의 목소리를 내고 선후배간 교류의 장을 만드는 동문회가 지속되길 바랍니다. 92동기회와 93학번 홈커밍데이가 단순히 친목 차원의 모임이 아니라 좀 더 의미있는 역할을 하길 바래요.


 ▲ 2022년 Back to the 1992 행사


Q8. 92학번 이성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저는 무용을 너무 좋아하고, 무용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다녔어요. 첫째, F를 받지 말자. 둘째, 수업에 빠지지 말자. 셋째, 장학금을 받자. 결론적으로 이 세 목표를 모두 이루고 졸업했습니다. 제게 성균관대는 무용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가져다 준 학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균관대가 제 “프라이드”입니다. 

저는 학부 때 정말 성실히 학교 생활을 했어요. 당시 무용학과에서는 아침 7시부터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이 특강에 교수님보다 일찍 참여하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5시에 수선관 수위아저씨를 깨워서 학교에 들어갔어요. 이 생활을 거의 4년간 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레포트를 수기로 썼습니다. 졸업할 때쯤에는 거의 논문 한 권 분량의 레포트가 만들어질 정도로 성실히 생활했던 것 같아요.


Q9. 인간 이성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거창한 건 없어요. 저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일에 ‘아니다’라고 말하기보다 자신 없거나 해보지 않은 일이라도 그냥 부딪히고 일단 시도하는 성격입니다. 최근 ‘무엇인가 주어졌을 때 피할 이유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는 말을 접했어요. 멋진 말이죠? 저는 이렇게 살고 싶어요. 제 원동력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그냥 성실하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요즈음은 ‘잘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이상하게 들리시죠? 별다른 건 아니고 그냥 오늘 당장 죽어도 후회가 되지 않는 만큼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오늘 하루만큼의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Q10.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 성균관대학교는 자랑할 만한 멋진 학교에요. 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으로 활약하는 동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교 다닐 때와 비해서 애교심이 조금 퇴색된 분위기가 아쉬워요. 저는 학생들이 성균관대라는 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동문으로서 학교를 졸업하고 보면 성균관대가 모교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끈끈함이 있어요. 단순히 모교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고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대표적인 학교이기 때문이죠. 저는 재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저도 ‘성대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