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예술을 말하다<br> 이동원 무용가

몸으로 예술을 말하다
이동원 무용가

  • 326호
  • 기사입력 2015.06.28
  • 취재 최혜지 기자
  • 편집 유정수 기자
  • 조회수 14717

이동원 동문(무용 01)은 성균관대학교 현대무용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사, 예술학 박사를 수료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현대무용전공 실기를 가르치고 있다. <크리틱스 초이스 2014> 최우수 안무가,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로 선정되는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무용가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 아지드현대무용단과 원댄스프로젝트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아지드현대무용단은 성균관대학교 현대무용학과 졸업생들로만 구성되어있는 무용단이다. 1999년 성균관대학교 현대무용학과 정의숙 교수가 창단하여 안무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까지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원댄스프로젝트그룹은 아지드현대무용단과 별개로 이동원 무용가가 안무 작업을 할 때 활동하는 팀으로 창단된 지 8년 정도 되었다. 아지드는 안무가와 무용수들로 구성되어있는 게 가장 큰 핵심이라면, 원댄스프로젝트그룹은 안무가, 사운드 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 등 창작자들이 하나의 팀으로 활동한다.

안무가와 무용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영화를 만들면 영화감독이 있고 배우가 있는 것처럼, 무용 작품에서도 전체적인 연출을 하는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안무가라고 하고, 출연해서 춤을 추는 사람을 무용수라고 해요. 안무가와 무용수의 두 역할을 통틀어 무용가라고 하죠. 저는 아지드현대무용단에서는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고, 원댄스프로젝트그룹에서는 안무가, 무용수를 겸하고 있어요.”

이동원 안무가는 최근 제11회 부산국제무용제(BIDF)의 AK21 국제안무가 육성 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경연은 젊은 안무가들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최우수 팀은 상금과 함께 해외 작품 활동과 내년 초청공연 기회를 얻는다. 이번 공연에서 이동원 안무가는 <분리된 인식>으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분리된 인식>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무언가의 본연 자체를 알려면 그것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이에요. 대상을 오로지 그 존재 하나만을 두고 생각했을 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에서 몸을 분리해요. 몸을 자른다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가진 각도, 길이, 질량, 부피 등을 나눠서 춤으로 표현해요. 몸을 움직이면 몸이 만드는 각도가 변하잖아요. 신체에 있는 이 각도만을 인식해서 안무를 만드는 거죠. 예를 들면, 신체에서 손과 손가락 각자가 길이, 무게, 질량, 부피가 다 달라요. 이것들을 나눠서 춤으로 표현하는 거죠. 반면에 세상에 분리되지 않는 것들도 있잖아요. 사람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나 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 같은 것들이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작품에서는 음악 없이 무대에 마이크를 설치해서 움직이는 소리가 객석에 들리게 했어요.”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호흡의 의미였어요. 사실 인간이 갖고 태어나지 않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공기거든요. 태어날 때는 갖고 있지 않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신체에서 공기를 없애는 방법을 갖고 춤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공기의 의미를 신체에서 공기가 빠지는 모습으로 형상화해서 작품으로 만들었죠.”

이동원 안무가의 안무 특징은 컨셉이 있다는 것이다. 컵셉에 맞는 상황들을 적절하게 작품에 녹여 구현하는 안무가로 평가받는다.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중점으로 작품을 만들어요. <분리된 인식>도 그렇고 기억에 대한 작품인 <기억력테스트>도 그렇고 다 제가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중점으로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거죠. 제 사유가 작품의 가장 주된 이야기들이고 이것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움직임, 무대 등이 작품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거죠.”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예술가들은 영감이라고 합니다. 저는 영감을 받기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직업이 창작을 하는 일이다 보니까 항상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표현할 사유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은 무대에서 이렇게 구현이 되면 참 재미있겠다. 이 생각들과 연결 지어 또 다른 것들까지도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이 사유들을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동원 무용가는 자신의 중요작품으로 <다 잃어버리도록>, <어떤 소리를 원하는가>, <기억력 테스트>를 뽑는다. <다 잃어버리도록>은 지금은 그의 부인이 된 김준희 무용가와의 듀엣 작품이다. 사랑하면 상대에게 다 쏟아 붓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공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어넣어 그 사람이 움직이게 되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어떤 소리를 원하는가>는 사운드 디자이너 지미 세르와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무용공연에 움직임만 있으면 되지 왜 음악이 나올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움직임과 소리를 즉흥적으로 연결한 작품이다. 작년에 상을 받았던 <기억력 테스트>는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어떤 것을 가지고, 기억이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고 만든 작품이다. 세 작품이 여러 작품 중에 가장 애착이 가고 호응이 좋았던 작품이었다고 설명한다.

무용가로서는 어쩌면 늦은 나이에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원래는 연극배우를 하고 싶어서 연극이나 뮤지컬공연에서 배우로 연극작업 했어요. 그러다가 군대에 갔고, 군대를 제대하면서 무용으로 방향성을 바꾸고 01학번으로 성균관대 무용학과로 들어왔죠. 무용에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는 무용이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였어요. 요즘에 ‘총체예술’이라고 표현하는데 연극 안에서는 대사만으로, 무용도 마찬가지로 춤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다른 장르들이 복합적이고 총체적으로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공연 형태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어요.” 연극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용을 하면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는 다양한 것들을 무대에 구현하려면 연극도 가능하지만, 무용으로 했을 때 더 큰 확장성을 갖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용은 나이 들어서 시작하면 안 된다고 해요. 왜냐하면, 신체가 다 자라고 시작하면 시작하는 순간 내 신체가 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없어지기 시작하는 때에 새로운 것들을 몸에 시도하고 적용하다 보니 분명히 제약은 있어요. 그중에 일반 사람들이 간단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유연성이죠. 특히 남자이다 보니까 남들처럼 유연하게도 잘 안 돼요. 어렸을 때부터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제약이 좀 있고 힘들 때가 있어요.”

“극복 방법은 그냥 그 순간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별로 대단한 것은 없어요. 이런 예술 쪽에서 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 이다 보니까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힘들 때가 분명히 있지만 대단한 뭔가 극복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열심히 하고 일처럼 생각하고 고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생각하고 즐기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또 그의 멘토인 정의숙 교수가 그에게 힘이 돼주었다. “사실 제가 춤을 추는 데 가장 지원을 많이 해주신 분이 저희 아지드 현대무용단의 정의숙 선생님이세요. 처음 걷는 것부터 가르쳐주시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작품 활동과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하는 것들까지 함께 상의하는 정말 가족 같은 선생님이십니다. 저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일을 하다가 막혔을 때도 의지가 되는 그런 분이시죠.”

“슬럼프는 누구나 있죠. 저는 2~3년 전이었어요. 주목을 받고 칭찬을 많이 받았을 때였어요. 그때 너무 공연이 많이 생기니까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생각해내기가 힘들었죠. 넘쳐나는 아이디어, 너무 많은 아이디어 이런 것은 절대 없더라고요. 눈뜨면 막 춤이 나오고, 음악이 막 나오고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근데 항상 스케줄은 빡빡하게 잡혀 있었죠. 그때가 문제였어요. 작품이 질이 좀 떨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항상 비슷한 것을 하게 되는 문제가 생겼었죠. 질타를 받으며 스스로 우울해지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 후로 1, 2년을 무용공연도 보지 않고 연극과 뮤지컬 안무작업만 했어요. 그러다 작년에 다시 2년 만에 무용작품을 만들었고, 사실 이번에 부산 상도 받았지만, 더 의미가 컸던 상은 작년에 ‘평론가가 뽑은 안무가’라고 서울에서 하는 젊은 안무가들 경연 중에 가장 큰 대회가 있었어요. <기억력 테스트>로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슬럼프를 이겨낸 상이기에 더 의미가 있었어요. 지금은 다시 좀 이겨내고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는 7월 '크리틱스 초이스 2015'에서 초청공연으로 ‘기억의 심해어’라는 작품을, 가을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개인 공연을 앞두고 있다. “무용작품을 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다른 장르에서 공부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 안무 작업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렇게 잠깐 다른 곳에서 머리를 식히고 공부하고 다시 도전해서 또 이렇게 상을 받고 가고 있네요. 항상 올라가면 내려가는 것처럼 또 슬럼프가 오겠죠. 다만 잘 내려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잘 내려갔다가 잘 올라오고 항상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그냥 제가 가고 있는 길을 계속 가는 거 에요. 창작자로서, 예술가로서 더 좋은 작품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 같아요. 교육자로서 후배 양성에 힘쓰고, 착한 가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제가 수업하면서 제 학생들에게 하는 말인데 무엇이든 열정을 갖고 잘 즐겨야 한다는 거 에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빨리 생각하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냥 우선 실천해보고 했으면 좋겠어요. 놀아도 되고, 공부해도 되고, 다 좋은데 정말 열정적으로 하고 즐기면 인생이 재미있어지지 않나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