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사랑하는 <br> 에너자이저 김현아 교수

학생들을 사랑하는
에너자이저 김현아 교수

  • 331호
  • 기사입력 2015.09.13
  • 취재 노혜진 기자
  • 편집 유정수 기자
  • 조회수 15196

얼마 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풍차 교수님’을 알 것이다. 구르고 뛰고 소리 지르고……. 과연 저게 진짜 대학 수업인가 의문을 품으면서도 배를 잡고 굴러다녔다면, 이번 인물 포커스를 보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는 소위 ‘풍차 교수님’인, 연기예술학과의 김현아 교수를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서 화술 파트를 가르치고 있는 김현아라고 합니다.”

“연기는 어떻게 할까요? 보통 무대 위에서 연기는 온전히 배우 그 자신만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그렇다면 배우가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 신체와 소리를 통해서 어떤 극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거죠. 그러면 그걸 어떻게 표현해내느냐. 훈련된 소리와 훈련된 몸짓을 통해서 표현해요. 그런 연기를 잘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훈련해야겠죠. 연기의 가장 기본이 바로 배우의 신체와 소리예요. 그렇기에 배우는 기본적으로 신체를 훈련해야 하고 소리를 훈련해야 돼요. 그런데 그게 일반 소리가 아니라 배우를 위한, 배우에 의한, 배우의 훈련된 소리를 말하는 거예요. 배우가 말하는 것은 이미 극작가들에 의해서 한번 쓰여 다시 재정립되어서 흘러나오는 거잖아요.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언어를 표현하는 거죠. 그걸 어떤 색깔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느낌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해내느냐, 그에 따라 관객이 받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서 그러한 기초적인 훈련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소리 부분을 조금 더 부각해서 훈련하는 게 화술 수업에서 하는 거고요.”

“저는 한국에서 연극 영화과를 졸업하고 러시아로 가서 다시 연기연출과 학부로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연기와 연출을 함께 배우다보니 화술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과목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한국에서는 연기를 하면 1학년부터 벌써 작품에 들어가요. 새내기 때부터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죠. 희곡은 1단계, 2단계, 3단계의 훈련을 거친 다음 정제된 언어들이 완벽히 훈련되어야지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에요. 그런데 1학년부터 어려운 희곡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게 돼요. 갓 입학한 학생이 과연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을까요? 무대에 한 번 서거나 공연에 한 번 들어가고 나면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니까 자신이 대단한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절대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에요. 사람들이 단점을 얘기해주지 않고 그저 잘했다고만 하니까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느껴도 자존심상 그걸 드러내지 않고 하게 되죠. 하지만 학생 때 가장 처절하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훈련해야 되는 부분들을 명확하게 알아서 훈련하지 않으면 졸업하고 본 무대에 나갈 때 배우로서 가치가 작아져요. 이런 점에서 화술은 정말 중요한 과목이에요.

우리나라는 외국보다 고전 작품들이 더 적게 올라가기 때문에 화술 교육이 부족해요. 좋게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실험극 혹은 다른 개작,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많다고 볼 수 있겠죠. 그게 참신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보자면 고전극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텍스트를 자르거나 축소시키고 아니면 그 의미를 가볍게 만들어 작품을 올리는 거죠. 반면 외국은 고전극이 많은데 그러한 작품들은 언어중심이기 때문에 언어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죠.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그걸 컨테이너에 담아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해요. 본인이 준비한 내용은 너무 좋아. 그런데 대사를 할 때 바들바들 떨거나 발성이 제대로 안 되고 발음이 이상하든지, 자신감이 없는것, 눈동자가 떨릴때. 자신감이 결여되고 심리적으로 위축을 받으면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제대로 포장해서 전달하지 못하게 되고 콘텐츠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게 돼요. 이건 비단 배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에요.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살아갔을 때도 중요한 부분이 되는 거죠.”

“예전부터 연기란 무대 연극을 말하는 거였어요. 요즘 워낙 매체가 발달하다 보니 잘 모르는 경향이 있는데 원래 예술형태는 발레, 오페라, 연극 등 무대 위 공연이었어요. 무대라고 하는 공간은 브라운관, 영화 필름 등의 공간과 달라요. 작은 무대가 있으면 큰 무대도 있고 그 공간에서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게 있죠. 요즘 영화, 텔레비전 등 매체들이 많이 발달하니까 연극하는 사람들이 과하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매체에 대해서 조금만 알면 금방 적용할 수 있어요. ‘무대 언어’라고 해서 굉장히 어색하게 말하는 건 올바르게 훈련된 언어가 아니에요. 무대 위에서의 언어도 자연스러워야 해요. 대신에 울림과 표현력이 강해야 하죠. 예를 들어 같은 포르테를 친다고 하더라도 소극장에서 칠 때랑 대극장에서 칠 때랑 방법이 다르겠죠. 소극장에서는 살짝만 쳐도 포르테인 걸 알지만,대극장에서는 더 강하게 쳐야 해요. 마찬가지로 미디어라는 매체에서 클로즈업한다면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에 다 나가기 때문에 거기서 무대처럼 할 수는 없겠죠. 고래고래 소리 지를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어떤 매체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인지하는 게 중요해요. 서로 다른 점을 정확히 이해해서 배우가 감정 표현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 다양한 표현법들을 할 줄 알아야 하죠.

보통 사람들이 봤을 때는 조금 과해 일 수 있어요. 저는 그걸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명확한 전달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 인생인데 표현력이 없다는 건 앙상한 겨울 가지 같지 않아요? 푸르름, 그늘, 열매도 없고 바람 불면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조금만 하면 우수수 떨어지고. 그런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면 넘실대고 붉은색도 있고, 정말 보고 싶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너무 좋다고 그렇게 표현력 있게 살아요. 처음부터 그게 안 된다면 신체를 활용해 보세요. 몸이 열리면 마음이 열려요. 신체가 자유로워지면 마음도 자유로워져요. 신체훈련을 조금 과하게 하면 심리적인 긴장에서 벗어나게 돼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도 ‘안녕하세요?’보단 ‘어머, 안녕하세요, 너무 반갑네요!’ 이렇게. 남들이 조금 이상하게 보면 어때요.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요 하하하.”

“연기예술학과 15기에 김남주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처음 입학했을 때 가수라고는 했는데 제가 외국에 오래 있다보니 처음에는 누군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자세가 너무 좋은 거예요. 굉장히 열심히 하고 진지하고 성실하고.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하고 학기말 쯤 돼서 앨범이 새로 나온다기에 열심히 해라, 그러고 방학이 됐죠. 그러다 어느 날 전화가 온 거예요. 무슨 텔 마리텔?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남주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프로그램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흔쾌히 한다고 했어요. 우리 제자가 나오는데 당연히 스승으로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죠. 그렇게 후반부 한 시간에 투입이 된 거예요. 거기서 평소 학교에서 하는 화술수업 처럼 했는데 녹화가 끝나고 카메라 감독님들, 주변 스태프분들이 너무 웃겼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뭐가 그렇게 재밌었냐고, 뭐가 그렇게 웃겼냐고 그랬죠. 실제로도 그렇게 수업을 해요. 그러나 수업에선 웃으면 혼나요. 감정이입을 하면서 해야지 거기에 웃으면서 하면 당연히 혼나죠.”

“배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예요. 내가 뭘 얘기하고 싶은데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에너지와 감정이입은 필요가 없어요. 무조건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돼야해요. 교수님 너무 과하지 않나요? 과하지 않아요. 왜냐면 처음 배우는 사람은 아직 많은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터뜨리고 전하고 크게 한 다음 세련되게 다듬어야 해요. 이걸 처음부터 조금 조금씩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죠. 신체를 크게 열면 심리적으로도 열려요. 조금 조금씩 열어야지라고 생각하면 남들의 시선이 의식 되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계속 생각하게 돼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되죠. 이러한 마음을 처음부터 깨야 해요. 신체가 자유로워야 정신도 자유롭고 그래야 창의적인 예술이 나온다고 저는 믿어요.”

“연기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이 사람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도 진실한 것처럼 잘 대할 수 있다는 건 완벽한 사기꾼이죠. 최고의 배우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연기라고 하는 건 사실 가짜예요. 하지만 가짜라고 해도 그 안에 분명한 진실이 담겨있어야 해요. 그걸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야 되고 그 속에 감정을 이입해야 되고 집중해야 되고 상상력을 가져야 돼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마음을 열지 않고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겠어요.

저는 선생의 역할이 지식전달 보다는 학생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인도해주는 거라고 봐요. 연기를 조금 못하더라도 잘 지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선생님일 거예요. 학생으로 하여금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방송 전후 엄청나게 달라진 점은 없었어요. 아, 방송 쪽에서 조금씩 연락이 오고 그랬죠. 그런데 개강하고 학교에 나와 보니까 느껴졌어요. 오늘 가는 곳마다 “어, 마리텔 교수님이다”, “마리텔 교수다”이러더라고요. 화장실에서도 나오는데 “팬입니다, 교수님!”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우,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랬죠. 학교에 오니까 달라진 점을 느끼네요.”

“당연하죠. 적극적으로 출연해서 성균관대학교를 알리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해야죠.”

“발전은 천천히 돼요. 신체는 단기간에 바뀔 수 있지만 소리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변하는 것을 쉽게 알아채기 어려워요. 소리가 좋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소리가 쓰이는 연기에 대해 학생들이 깨달을 때 보람을 느껴요. 학생들이 ‘아, 이제 깨달았어요. 이해했어요.’ 그게 바로 기쁨이죠. 발표회할 때 아이들이 긴장하거든요. 실패할 때도 있죠. 그것도 값진 거예요. 그게 자양분이 돼서 발전할 수 있거든요. 다양한 경험의 과정에서 실패를 통해 다양한 것을 깨닫고 그 과정에서 연기가 늘어가는 그것을 학생들이 깨달을 때 그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매일의 삶을 즐겁게 살고 긍정적이고 조금 더 발전적이게 사는 것, 그게 하루하루의 목적이에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지금 이 시간에 열심히 임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목표예요.”

“뭔가를 할 때 할까 말까 고민하잖아요.그럼 그냥 하세요. 그리고 했으면 끝까지 하세요. 인생에 많은 열매들이 있어요. 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시도도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젊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하세요. 그리고 시작했으면 끝까지!
그리고 제가 항상 학생들에게 말하는 것이 '만 시간의 법칙'이에요. 전공이 있다면 그것에만 투자하세요. 현대인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요. 많이 안다는 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불필요한데 시간 쓰는 것을 조금 지양하고 전공에만 조금 더 집중하세요.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전공만 생각하세요. 그랬을 때 진정한 전문가가 탄생하는 거예요. 나는 지금 학부생이니까 대학원 가서 전문성을 갖춰야지, 그런 건 없어요. 전문성을 가지기 위한 만 시간의 법칙. 오롯이 그것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