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숨기지 마세요<br> 이영음 동문

아픔을 숨기지 마세요
이영음 동문

  • 335호
  • 기사입력 2015.11.13
  • 취재 노혜진 기자
  • 편집 유정수 기자
  • 조회수 11064

올여름,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화제가 되었던 '인사이드 아웃'. 이 영화에서는 '슬픔'의 감정을 부정적인 것이 아닌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는 <인사이드 아웃>의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영상에 담아내고자 꿈꾸는 필름 메이커, 이영음(영상 11) 동문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상학과 11학번 이영음입니다. 현재 뮤직비디오 조감독을 하면서 영상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영상과 디자인을 하는 필름 메이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마음이 잘 맞는 우리 학교 영상학과 선배 두 분과 함께 '브레인 엑시트'라는 영상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바이럴 광고(이메일이나 다른 전파 가능한 매체를 통해 어떤 기업이나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널리 퍼뜨리는 마케팅 광고)나 온라인 광고, 뮤직비디오, 기업 홍보영상, 브랜드 필름 등 각종 영상 관련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저의 역할은 '비주얼 디렉터'라고 해서 영상 미술과 모션, 연출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로 인디뮤직비디오 작업을 많이 하는 선배 한 분이 회사에 들어오셨어요. 4명이 '티끌'이라고 하는 뮤직비디오를 메인으로 받는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어 그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연출로도 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필름 메이커 중 한 명인 신동글 감독님 밑에서 1년째 조감독으로 일하고 있어요. 감독님과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 영상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계기

"저는 예전에도 지금도 영화감독 되는 게 꿈이에요.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미술, 디자인 쪽을 전공하셔서 그 영향도 많이 받았죠. 원래는 미술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그쪽으로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영화에도 관심이 생겨 그 두 분야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영상을 택했어요. 저는 기존 교육제도에 약간 불만이 있어서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 혼자서 아무리 교육제도를 비판하더라도 말만 그렇게 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다면 사람들로부터 신뢰성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대학교 영상학과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수능을 위해 공부하는 그 제도가 수긍하기 싫은 거예요. 영상학과를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전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거기서 내신 관리도 했지만 3년 동안 영상 관련 포트폴리오를 준비했고 영상특기자로 우리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 선호하는 영화 장르

"영화마다 가진 색깔과 연출자의 의도가 다르잖아요. 각각의 영화에 나타나는 그런 점이 다 좋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성장에 관한 영화를 특히 좋아해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부정적인 걸 좋아해요. 혹시 영화 <인사이드 아웃> 보셨어요? 거기서 슬픔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런 느낌이 참 좋아요. 부정적인 면도 잘 가꿔야 하고 사랑해야 해요. 힘들면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프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해야 그걸 제대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맞닥뜨리면서 더 큰 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유의 성장에 관한 영화들을 좋아해요. 이별이나 아픔을 통해 한 번 더 성장하는 영화들이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나 픽사의 영화들, 예를 들면 '업'이나 '토이 스토리 3'도 아픔을 극복하고 난 뒤의 성장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굉장히 좋아해요."

"아직은 시작단계라 조연출로서 필모그래피는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거의 바이럴 광고를 많이 찍었어요. 작년부터 조연출로 활동하면서 자잘하게 한 것들이 아주 많아요. 참여한 것을 보면 지누션 컴백 티저, 세븐틴과 삐삐밴드 뮤직비디오 등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했던 건 이니스프리 바이럴 광고 영상이랑 악동뮤지션 한글날 프로젝트 영상, 그리고 지금 뮤직비디오 몇 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과제로 단편영화도 많이 찍었어요. 작년에 졸업 작품으로 '말하지 못해서'라는 단편영화를 하나 찍었고 학생 영화에서 영화 미술 감독으로도 참가했어요. 그 과정에서 공간을 꾸미고 소품도 만들고, 분장하고 의상 준비하는 등 미술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 참견했었죠. 그 땐 그 일들이 프로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현장에 나가보니 규모나 의식의 차이 외에는 크게 다를 게 없더라고요. 학생 때 이것저것 했던 게 나중에 많은 도움이 돼서 처음 촬영장에 나갔을 때 큰 실수 없이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 자기 작품만의 특색

"아직 저는 완벽하게 제 의지대로 작품을 만든 게 별로 없어요. 뮤직비디오나 바이럴도 제가 감독이지만 온전히 감독만의 역량은 아니거든요. 고객이 존재하고 그들의 기대와 기획에 맞춰 촬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잘 충족시키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죠. 그런 부분에 있어 아직 제 색깔을 만들어 낸 작품은 그다지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작년에 만들었던 졸업 작품이 그나마 가장 제가 하고 싶은 걸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도 아직은 저만의 색깔이라기보단 감성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잘 표현은 못 해도 아픔과 성장, 이런 내용을 좋아하거든요. 완전히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저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감성을 보고 저답다고 말하곤 해요. 아직 색깔이나 이런 걸 말할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야 저만의 색깔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야기가 먼저 존재해야 하고 기술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해요. 기술만 앞서는 영상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요. 세상에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은 정말 많죠. 기술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영상이라는 것이 기술적이라기보단 인문학의 한 범주에 포함된다고 봐요. 그렇기에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잘 나타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저는 메시지가 우선시 되고 기술은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밤샌 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 하하하. 엄청나게 충실하게 학교생활을 했어요. 잘 놀지도 않고 과제만 열심히 하고. 저는 가정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해 3학년 때까지 학교 컴퓨터로 작업했어요. 그러면서 돈을 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일을 많이 했어요.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던 때는 일주일에 10시간도 못 잤어요. 서러운 것도 많았죠. 잘하고 싶은데 환경이 안 따라주니까. 그런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굉장히 일찍 철든 부분이 있어요. 인생에서 사람이 겪어야 하는 많은 굴곡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그것들을 사춘기 때 많이 겪어서 환경에 대처하는 점에서는 빨리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제가 원래 약간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학교 과제 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게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씩 후회가 들어요. 왜 21살 때 더 21 살답게 살지 못했을까, 그런 후회요.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조금 더 17 살답게, 18 살답게, 20 살답게 지냈어도 되었을 텐데 왜 그렇게 얽매여서 살았을까, 후회하는 부분이 있죠. 제가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때와는 다른 환경에 나와서 보니 그땐 그랬어도 됐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아마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만요."

-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

"책임을 진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성인이 될 때도 저를 보호하던 울타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변화로 다가왔어요. 이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는 거잖아요. 내가 온전히 나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된 거죠. 그게 엄청난 이별처럼 느껴져서 20살 되는 해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마찬가지로 사회에 나가서 연출하고 일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해요. 그 자체가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하는 행동 하나, 말 하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뭔가 잘 안되거나 잘못됐거나 하면 내가 정말 책임을 져야 하는구나,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특히 졸업 작품을 찍을 때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의 말 하나에 바뀌고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 이 작품을 책임지고 끌고 나가야만 했죠. 사소한 일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책임이라는 것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유하게 그 책임의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좋다고 해줄 때요. 감사하게도 제 졸업 작품이 작년 영상제에서 1등을 했어요. 그걸 상영하는데 사람들이 막 울더라고요. 뭔가 창피하긴 한데 그때 보람을 느꼈어요. 제 작품을 보고 난 사람들이 단순히 '잘 봤어'가 아니라 '이런 점이 좋았어'라고 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아직 제가 마음에 드는 걸 제대로 못 찍은 것 같아요. 앞으로 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더 많이 찍고 그 작품을 사람들이 보며 그런 말을 해 줄 때,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 앞으로의 목표

"저의 목표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감독 하고 싶어요. 회사도 계속 잘됐으면 좋겠고, 좋은 연출도 하고 싶어요. 저만의 색깔이 있는 연출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인 '넥스트 투 노멀'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와요. '정말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제가 지금 행복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고 있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는데 아직 행복이 뭔지 답은 찾지 못했어요. 그래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요. 분명 안 되는 일이고 감정적으로 힘든 일인데 그게 할 수 있다, 힘들지 않다 최면을 건다고 괜찮아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요즘에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으로 포장하려는데 사실 아픈 건 아픈 거고 힘든 건 힘든 거예요. 부정적으로 살자는 건 아니지만 힘들 때마다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내면에서 하는 말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넘어진다면 넘어지면 되죠.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조금 있다가 일어날 수 있을 때 일어나면 돼요. 그 슬프고 힘든 감정을 받아들여야 할 때는 받아들여야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감정을 표출하세요. 그래야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걸 포용하고 회유하고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생각하는 게 궁극적으로 아픔을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정적인 면도 사랑하고 내보낼 수 있어야 해요. 그걸 말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