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예술가 <br> 김주빈 동문

자유로운 예술가
김주빈 동문

  • 343호
  • 기사입력 2016.03.10
  • 취재 오솔 기자
  • 편집 이지원 기자
  • 조회수 10645

국악 및 한국무용은 이하늬, 한예리와 같은 연예인에 의해 방송되기도 하고 다양한 공연을 통해 점차 대중과 가까워지고 있다. 작년에 방영된 [댄싱9 시즌3]에서 하휘동 댄서는 한국무용과 비보잉이 조화를 이룬 무대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하휘동 댄서의 히든카드로 등장한 무용가가 바로 우리 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한 김주빈 동문이다. 비보이, 한국무용, 공연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펼치고 있는 김주빈 동문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무용 06[학사], 무용10[석사] 김주빈입니다. 우리 학교 무용학과는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세 가지로 나뉘는데 저는 한국무용으로 입학했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개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 레슨이나 개인 안무를 하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사진을 찍고 공연 제작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어요."


김주빈 동문은 어렸을 때 동네 형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무용의 길로 접어섰다. 다시 선택해도 무용의 길을 갈 것인지 묻자 다른 분야를 하고 싶기도 하지만 아마 똑같을 것 같다며 무용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작년 9월에 무용학과 임학선 교수님께서 안무를 맡은 [영웅 이순신]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9개월 정도 준비한 작품이고 주연으로 출연했어요. 제일 최근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그 전 레퍼토리였던 [The Great Teacher 공자]*도 2009년부터 주역으로 공연하고 있어서 기억나는 공연이에요.

보람 있다고 느낄 때는 사람들이 한국무용을 너무 어렵지 않게 기분 좋게 받아주는 순간이에요. 가장 기쁩니다. 어렵다는 선입견이 깨질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이 좋아요. 한국무용을 어렵고 지루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옛날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죠. 이러한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특히나 방송의 역할도 컸어요. 작년에 Mnet에서 방영된 댄스 서바이벌 [댄싱9 시즌3]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동안 그 프로그램에서 다룬 무용들은 주로 현대무용, 스트리트 댄스였어요. 1회만 방송되었지만 한국무용이 주목받으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고 들여다봐 준 덕에 뿌듯했죠. [댄싱코리아]** 도 해외에 한국무용을 알리는 기회가 되는 거니까 좋았죠. 한국무용을 널리 알리는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우리의 춤을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The Great Teacher 공자]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소통하고 배우는 모습을 문묘일무(文廟佾舞 : 팔일무, 공자의 제사를 지낼 때 추는 전통춤)로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 학교 이기동 교수(유학동양학부)가 대본을 쓰고 임학선 교수(무용학과)가 안무를 담당했다. 이 공연은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曲阜)에서 열리는 국제공자문화절, 한-프 수교 120주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댄싱코리아>는 2015년 12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적인 공연장 92nd Street Y에서 진행된 공연이다. 뉴욕한국문화원이 후원한 이 공연은 92nd Street Y에서 처음 열린 한국 춤 페스티벌이다. 우리나라 전통무용부터 현대무용까지 다채로운 춤이 펼쳐져 축제기간 동안 만석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받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상황에 맞춰 일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죠. 장단점이 있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작품을 계속 창작하는 일을 계속 고민하고 어떻게 풀어낼지 실마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에요.

이런 벽에 부딪히면 창작을 위해 그 일에서 멀리 떨어져요. 놀아야죠. 사실 계속 일들이 있어서 여행은 쉽지 않아요. 그래도 가끔 해외 공연을 가면 여행하기도 해요. 보통은 최대한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죠.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하고 있는지 생각해요. 이렇게 아예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 얻는 것도 있더라고요.

저는 공연사진을 10년째 찍고 있어요. 사진은 대학생이 된 후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무용하는 사람들이니까 춤추는 모습을 주로 찍었죠.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생겨 아는 선생님의 공연을 찍었는데 '새롭고 괜찮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점에 관심을 갖다보니 하이엔드 카메라, 필름 카메라로 찍으면서 지금까지 촬영하고 있어요.

공연 하는 사람과 찍는 사람의 대상은 달라요. 다른 사람의 공연을 촬영하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놓치고 있던 부분에 대한 공부가 되요. '아, 이 사람은 이 작품을 이렇게 들여다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똑같은 관찰자의 입장이더라도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시선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공연을 보는 시선은 또 달라요. 줌(zoom)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특정 부분을 잘라서 보기도 하죠. 공연 순간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골라서 볼 수 있는 거예요. 딱 그 부분만. 이런 과정에서 이미지에 대해 되새겨보고 새롭게 느낄 수 있죠."

김주빈 동문은 사진 외에도 무대 연출, 조명 디자이너 등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펼치고 있다. 다재다능하게 일하는 동기를 물었다.

"이 분야에 있으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무용전공이지만 안무나 무용이 메인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일이 있을 때, 필요로 할 때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죠. 무용에 앞서 '공연' 하는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공연, 무대, 조명까지 이해해야 해요. 연출, 의상, 음악 등 여러 가지 많잖아요. 어떻게 하면 작품을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공연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게 돼요. 다만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구상을 넘어서 실제로 그 요소들을 알면 외부에서 작업 할 때 구현하기 수월해지죠. '구름에 달 가듯이 해주세요.'라는 추상적인 말보다 '이 부분을 이렇게 하면 이런 효과가 날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요구가 더 효과적이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는 수준이 되면 작품을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부했어요. 공부하다 보니 실제로 무대연출이나 조명디자이너로도 일하게 된 거죠."

"자기가 찾기 나름이에요. 사회에 필요한 무용의 역할이 굉장히 많아요. 가장 크게 나누자면 안무, 무용, 교육으로 구분돼요. 순수하게 무용을 계속하는 무용수, 이 무용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안무가, 무용수들을 길러내는 교육자. 이렇게 세 가지가 기본이에요. 작품을 만들 때 순수 무용을 할 건지, 뮤지컬이나 바디 컨디셔닝을 할 건지 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교육도 학문적인 이론, 기술적인 실기 교육,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접근성 개발 등 길을 찾는 것은 개인에게 달려있죠. 다만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점은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길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의 길에만 매달리는 모습이에요. 한 가지만 생각하니까 '어떻게 해낼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과거보다 다양한 직업군이 있어요. 무용 치료사, 유아 발레부터 시작해서 방과 후 수업, 무용과 다른 장르를 결합한 직업처럼요. 현실적인 장벽은 경제적인 부분이겠죠."


"대학생 때는 다 해본 것 같아요. 아쉬운 건 없어요. 하나 있다면 졸업식을 제때에 못 간 것이 아쉽네요. 대학생활을 춤으로 채운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학교에서 춤추고 집 이런 식으로 4년을 보냈어요. 무용실에서 놀기도 많이 놀았어요. 같이 춤추는 친구들을 가족보다 자주 보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미친 듯이 춤추고 뒤풀이하고 서너 시간 자고 다시 학교 가서 연습했죠. 학교행사나 축제 때도 신나게 연습하고 놀고요. 아, 춤을 너무 열심히 춰서 성적우수 장학금을 못 받은 건 좀 아쉽네요.

무용학과 후배들에게 무용실에 12시간 이상 있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수업 외에 공연 연습이든 개인 연습이든 12시간 이상은 지내보는 거예요. 혹은 10시간 이상 '혼자' 무용실에 있어 보는 일도 권하고 싶어요. 연습을 안 해도 상관이 없으니 혼자 고민해 보는 거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 대해서요. 사람들이 힘든 것은 싫어해요. 몸 움직이기도 싫고 피곤하고 안 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빨리 포기하고 도망치죠.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죠. 이런 마음을 참고 무용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꼭 필요해요. 수업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요. 아니면 하루를 오롯이 무용실에서 살아보는 일도 좋죠. 이런 경험을 하지 않고 졸업하면 무용을 오래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요.

대학생 때 춤을 많이 춰봐야 해요. 엄청나게 많은 실험을 해보세요. 다양한 춤이든 장르든 개인 춤을 위한 실험이든. 정말 많이 이것저것 해보세요. 다른 학과와 협업해서 일하기도 하고 자신의 춤에 대해 연구도 하는 거죠. 대학 졸업 후에는 늦어요. 저는 늦게 깨달았어요. 대학생 때 더 해야 했는데. 그나마 남자 무용수가 많이 없어서 공연을 많이 할 수 있었죠. 대학생 때는 한 달에 공연을 기본 네 개씩, 많을 때는 여섯 개도 했어요. 매주 한 개씩 하는 거죠. 보통 연습을 1~3달 하는데 공연 끝나면 바로 다른 공연하는 식이었어요."



"평생 놀고먹고 싶어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춤을 추고 사람들과 만나 작업하면서 생산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살면 즐거울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부족하지 않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거죠. 이거는 중학생 때부터 변하지 않는 목표에요. 사실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 어렵죠. 말이 좋아 예술가지 새로운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이 목표를 이뤄나가는 일이 쉽지 않아요."

- 좋은 안무가란, 좋은 무용수란

"좋은 무용수는 스펀지같이 자신의 역량 안에서 안무가와 작업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죠. 너무 자신의 틀 안에 갇혀있지 않는 사람. 하얀 종이처럼 안무가가 그려내는 그림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능력이 최고의 무용수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아닐까요. 좋은 안무가란 사람들의 깊은 곳까지 끌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개인의 특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민해서 작품을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 각각의 특수성을 강조할지에 대한 여부는 안무가마다 달라요. 저는 좋은 안무가라면 무용수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맞춰줘야 해요. 확실하게 살려 줄 부분은 부각하되 공통적인 톤(tone)은 유지해야 하죠. 서로 소통하면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작업이라 쉽지 않죠."

- 추천 책과 공연

"논어를 공부하세요. 이기동 교수님의 동양철학 수업을 들었는데 논어는 정말 꼭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공자 작품을 오래 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논어를 읽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 사는 도리, 그 안에 모든 모습이 다 담겨 있어요. 어려운 논어가 아니라도 동양 철학 쪽은 공부하는 것을 추천해요.

공연은 장르를 가리지 말고 많이 보라고 하고 싶어요. 보통 영화, 콘서트, 뮤지컬 이렇게 편식하는 경향이 강해요. 정말 공연을 보고자 한다면 연극, 퍼포먼스, 넌버벌(Non-verbal: 대사 없이 이뤄지는 공연)처럼 다양한 공연을 하나씩 짚어 보았으면 좋겠어요. 알고 안 보는 것과 몰라서 안 보는 것은 다르거든요."

"신나게 놀아 보세요. 지금 아니면 못 놀아요. 누릴 수 있는 대학생활의 특권들을 최대한 많이 누려보세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후회해요. 책도 많이 읽으면 좋죠. 저도 요즘 고전영화와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해요. 스스로 나를 찾아내는 점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지 못했거든요.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해요. 이를 소홀히 하면 예술을 발전시킬 수가 없어요.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 더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이제라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누구나 아는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없어요. 저도 꾸준히 해야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많이 해보세요. 늦게 하면 그만큼 시간을 많이 흘려보내게 되니까요."


참고
http://www.92y.org/Event/Dancing-Korea
http://www.skku.edu/new_home/campus/skk_comm/news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51224_0006265731

사진제공
김주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