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승 유학대학 교수

이천승 유학대학 교수

  • 382호
  • 기사입력 2017.10.31
  • 취재 윤정은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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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노란 열매를 떨구는 가을이다. 모든 학우들이 알고 있듯이 은행나무는 우리 학교 상징이다. 인문사회과학캠퍼스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정문부터 늘어선 은행나무들이다. 이 은행나무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을 상징하여 심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학교를 상징하는 것은 공자와 관련이 깊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공자와 관련있는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학생들은 졸업하기 위해서 '인성' 영역에서 '인성고전'이나 '성균논어' 중 한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오늘은 성균관의 계절을 맞이해 '성균논어'와 '인성고전'과목의 교수인 이천승 교수를 만나보았다.

이천승 교수는 1960년 후반, 전주에서 출생했다. 고등학교까지 전주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유학(留學)' 왔다. 이천승 교수는 그때까지 '유학(儒學)'을 공부하리란 생각이 확고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내려오던 전통적 가풍을 답답함 혹은 굴레로 여긴 적이 많아서다. 그러나 그는 유학을 중심에 둔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의식적으로 유학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유학의 중심에 들어선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회고한다. 학부 공부를 하며 '정통'에 흥미를 느끼고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흥미의 연장선으로 대학 졸업 후에도 성균관대학교에서 계속 석박사 과정을 다니며 한국유학을 공부했다.


"얼마 전 우리 대학을 졸업한지 30년 된 학번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겨운 모임을 가졌습니다. 600주년 기념관 자리는 예전에 유학대학이 있었던 곳으로 여러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오래된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당시 건물 외부는 멋진 석조였죠. 그러나 내부는 매우 열악했어요. 특히 추운 겨울에는 더 했지요. 겨울에 태어난 때문인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 저에게는 고통이었어요.

때로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석탄을 때면서 교수님과 은밀한 합의 하에 조기 겨울방학에 들어갈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를 추억할만한 우리 학교 건물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유학대학 앞의 소나무가 심어진 분수대, 금잔디 광장에 있었던 소라껍질처럼 생긴 휴식 공간, 확장되면서 없어진 학교 정문 등. 학교가 정말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한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의 그 건물들이 떠오르는 것은 현실에 대한 당시의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얼룩진 내 소중한 청춘의 일부였기 때문이겠지요."

◈ 성균논어란?
'성균논어'는 유학을 교시로 하는 우리 학교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과목이다. 오래전부터 '유학' 내지 '유학원론' 등의 이름으로 강좌가 개설됐는데, 일종의 교양유학을 새롭게 개편한 것이다. 따라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은 모두 한번쯤 거쳐 갔던 통과의례와 같은 과목이다. '성균논어' 강좌의 교재로 사용하는 『우리들의 세상, 논어로 보다』는 강의를 전담하는 교강사들이 한데 모여 정리한 책이다. 크게 인, 의, 예, 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의예지는 '인의예지 그 자랑 우리 대학교'라는 교가의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학교가 중시하는 가치이다.

◈ 성균논어의 구성
첫째 인(仁) 부분에서는 '사람다움'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흔히 어진 마음이나 사랑으로 이해되는 인은 '친밀한 관계의 확인'이자 '나에게서 타자로 점차 확대되어 우리 모두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인의 정신은 동심원을 그리며 사회와 자연 생태계로 확대되어 모두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상의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라 한다.

둘째, 의(義) 부분에서는 경쟁 시대에 어진 마음에 기초한 정의로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한다. 올바름을 뜻하는 의는 우리 마음의 저울추라 일컬어진다. 수업에서는 정치와 경제 분야의 사례를 통해 의로움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현실적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셋째, 예(禮) 부분에서는 사람 간 만남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조화를 지향하는 행동 양식'에 대해 알아본다. 예를 잘못 생각하면 억압이나 거추장스러운 절차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공동체적 삶의 가운데에 있다. 따라서 예는 사회관계의 내비게이션이다. 예의 본질과 형식을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관혼상제를 통해 보다 이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나간다.

마지막 지(智) 부분에서는 지식을 넘어 지혜로의 길을 찾아보려 한다. 사회적 성공만을 위한 지식 추구의 수단적인 공부를 넘어서려 한다. 참다운 지혜를 좇으며 공부의 의미와 목표를 되새긴다.


그의 수업은 교재 내용에 질문을 받고 시작한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받는 날에 큰 힘이 난다고 한다. 이처럼 질문을 통해 주요 개념을 집중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쉬는 시간 후, 전체 흐름에 맞춰 개념을 정리해 준다. 때로는 사회적 쟁점이 되는 주제에 대해 토론한다. 이천승 교수는 질문과 토론 위주의 수업은 '성균논어'와 '인성고전'에 보다 적합하다고 말한다. 두 과목 모두 자신을 성찰하면서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때문이다. 어느 날, 그에게 '성균논어' 과목을 수강했던 학생이 '강의시간에 생각하고 토론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 삶의 태도를 말했던 것이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고 말하며 면접시험에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실은 쓸모가 있다"는 노자의 말을 연상했다.

그는 수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업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비판적으로 공감하려는 이해의 장소입니다. 강의실로 향하기 전에 매번 연구실 문 앞에 써 붙인 니체의 글귀 하나를 되새기곤 합니다. '이 순간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고, 내가 해낼 일이 궁금하다. 그렇게 궁금해지는 순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자칫 반복이라 싶어 둔감해지거나 잡사에 휘둘리며 본분을 잊어버릴 때 힘이 되는 말입니다. 나의 작은 노력 하나가 먼 훗날 세상을 변화시키는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논어』를 중심으로 하는 유학적 기반은 이래저래 우리 대학교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 모두가 성균논어를 배우며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 등이 서서히 몸에 배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고 더욱더 노력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지금 제가 모교의 교수로 있다는 사실이 낯설 때도 있어요. 항상 배우는 학생의 자리에 있었던 시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저 역시 박사까지는 그래도 정해진 과정이 있었기에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지만, 정작 그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관심을 펼쳐나갈 수는 있어도 그 일과 직접 관련된 일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서 입니다. 그래도 내가 해오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있으니까 기회가 오더군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자가 강하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느낍니다. 현실적 여건이 어렵더라도 관심과 열정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기회는 오더군요.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특별한 역할은 애써 찾아서 얻는 일도 있지만, 우연찮게 찾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단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는 평범한 진실을 믿었을 때 해당되겠지요. 다만 아쉬운 점은 정작 교수가 되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다지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그럴 것입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지, 정작 그 자리에 가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동양의 사유에서 볼 때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계기일 뿐입니다. 현재 내가 지향하는 목표가 내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책임이 있는 자리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등을 천천히 생각해 보시길 바라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 높이 올라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높'이 가려면 '푹'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것을 아는지요? '높'자를 뒤집으면 '푹'자가 되는 말장난 같은 단순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더 멀리 그리고 오래가기 위해 현재의 자신을 철저히 반성해보는 시간이 바로 대학생인 지금의 시점이지 않을까요. '인의예지 그 자랑' 우리 성균관대학교에서 모두 함께 그 저력을 찾아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