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약국 김경호 회장

  • 395호
  • 기사입력 2018.05.11
  • 취재 한이현 기자
  • 편집 주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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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약학관 건립기금으로 오천만원. 그 이듬해 약학대학발전기금 일억 오천만원, 2년후 2007년 11월에 2억 원 그 후로도 계속 기부, 올해 2018년 까지 총 20억이 넘는 돈을 학교에 기부했다. 15년 세월 동안 한결 같은 학교 사랑을 보여준 보령약국 김경호(약학 54)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서민이 그토록 바라는 로또 당첨금보다 큰 돈을 학교에 기부한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를 만나기로한 곳은 종로 5가 보령약국 뒤에 있는 보령약국 사무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하고 명예회장으로 사무실 한곳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 시간 보다 먼저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는 빼곡이 그에 관한 상패와 위촉장, 여행 기념, 가족 사진이 있었다. 오래된 사무실 만큼 오래된 사진도 많았다. 각종 사진과 그에 관한 감사패만 봐도 그를 보는 듯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30여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볐다고 한다. 많은 여행 사진중 남극에서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북극도 가보았다고 한다. 극지방을 여행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가봤단다.

약속 시간 5분전에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온 그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고 활기찼다. 자신의 방에 이방인이 먼저 와 있어서 인지 약간 의아스러워했다. 그러나 곧 학교에서 온 손님들이라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터프하게 소파에 앉아 뭐이 궁금해서 왔냐고 물어봤다. 자신은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한국 전쟁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일을 겪었으니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그에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어린시절 엔 참 가난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아버지께서 저희 형제를 데리고 이북까지 가서 살아야 했던 적도 있었죠. 어려워도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밥을 굶어도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형이 약재상에서 일하는 걸 보고 자연스레 전공을 약학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덕분에 졸업하자마자 약국을 차릴 수 있었죠.”

보령약국은 60년된 전통있고 오래된 약국이다. 종로 5가하면 보령약국이라고 세간에 회자 될 만큼 유명하다. 종로 5가에서 제일 유명한 약국이라는 명성은 어떻게 얻었을까. 그는 한곳에서 변함없이 정직하게 약국을 운영한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약국 명성 만큼 그가 받은 상패도 셀수 없이 많았다. 나라에서 받은 훈장도 있고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받은 상장도 많았는데 개중에 더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상들이 다 영광스럽지만 특히 우리 보령약국 직원들에게 받은 상패가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내가 평생 일궈온 보령약국의 직원들에게 상을 받으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평소 직원들을 회사 직원이 아닌 자식처럼 대하는데, 그런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참 행복했죠.”

60년 넘게 약국을 경영하고 수익도 좋으니 그만의 경영철학이 궁금해졌다.

“대단한 경영철학은 없습니다. 그저 아픈 사람들에게 싸게, 구해달라고 하는 약을 다 구해서 파는 수 밖에요. 보령약국은 처음에 아주 작은 가게에 세들어서 시작한 약국이에요.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일했죠.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가게 한편에 군용 야전침대에서 잤어요. 일어나자마자 가게를 청소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키워나가다 보니 보령약국은 어느새 종로5가의 터줏대감이 되었죠.”

그는 지난 15년 동안 10억이 넘는 돈을 모교에 기부했고 최근 지난 2월 말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계속 되는 그의 기부에 무슨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다.

“제가 힘들었던 만큼 남들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우리 세대는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대로 학교 건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하다 보니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적도 많았죠. 제가 고생해서 힘들게 번 돈으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죠.”



나눔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그만의 평소 생각과 소신을 듣고 싶었다. “그저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남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죠. 나눔은 어렵지 않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누구나 할 수 있죠.” 라며 가볍게 소회를 밝혔다.

그에게 소망이 있냐고 물으니 별로 바라는게 없단다.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약국 자리에 빌딩을 세우고 싶다는 것. 현재 이 자리가 보령 약국 가족이 60년 동안 고생해서 일궈온 자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일하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서 약국은 그에게 가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곳이다. 온 가족이 고생해서 번 돈으로 빌딩을 세운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고 했다.

모교 후배들에게 자유롭게 한마디 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 건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해야 했거든요. 제가 어렵게 공부했던 만큼 학생들은 아무 걱정 없이 공부했으면 좋겠네요.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공부하면서 행복한 대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고령의 선배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졸업한지 60년이 넘어도 모교를 잊지 않고 늘 찾아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학교가 잘 되기를 바라고 후학들이 어렵지 않게 공부했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라는 그의 말에서 모교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