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윤비 교수

  • 452호
  • 기사입력 2020.10.03
  • 취재 고병무 기자
  • 편집 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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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가? 아마 어렵고, 피곤하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정치라는 학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진짜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윤비 교수를 만나보았다.


윤 교수는 독일에서 서양정치사상을 공부했고, 정치학과와 역사학과에서 서양 중세사와 르네상스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2010년도에 성균관대학교로 오게 되었고, 최근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사회과학단장을 맡게 되면서 잠시 동안 학교를 떠나있게 되었다.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은 기본적으로 상근 근무이기 때문에, 앞으로 2년간은 연구재단이 있는 대전으로 내려가서 생활하게 된다고 한다. 서울은 중요한 회의나 평가가 있을 때만 올 것 같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사회과학단장직을 수행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학교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최근에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을 맡게 되었다. 한국연구재단이 무엇인지, 사회과학단장을 맡게 되면 어떤 일을 하는가.

먼저 한국연구재단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다. 한국연구재단은 기초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준정부기관으로, 정부 후원 하에 운영되던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2009년에 하나로 합쳐지면서 탄생한 조직이다. 현재 총 7개의 사업본부와 17개의 단으로 나눠져있고, 예산 규모만 거의 6조에 육박한다. 윤 교수는 그중 인문사회연구본부 내 사회과학단장을 맡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우리나라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수행되는 주요 연구프로젝트를 발주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성균관대학교는 연구재단 사업의 수주와 수행에 있어서 여러 학교 가운데에서도 단연 발군의 성적을 거두어 왔다. 최근에 우리학교가 BK사업에서 전국 종합대학교 2위라는 큰 성과를 거둬냈는데, 이 역시도 한국연구재단에서 관장하는 사업이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알고 있는 상당히 많은 연구들이 한국연구재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과학단장은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를 발굴, 기획하고, 선정, 평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사회과학과 관련된 연구를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과기부)와 협력해서 기획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과제가 올바로 수행되고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사회과학단장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이러한 중책을 맡게 되어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교수의 가장 큰 기쁨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장을 맡게 되면서 그럴 수 없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대신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넓은 차원에서 한국 학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서 기쁘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주로 정치 사상에 대한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정치학에도 국제정치나 비교정치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서구 정치 사상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인가?

“정치사상은 우리 존재에 대한 비판적인 반성을 하는 행위입니다.”

학부에서는 국제정치학 관련 학과를 다녔다. 과 자체가 국제정치에 주안점을 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사상을 소홀히 했다는 것은 아니다. (웃음) 알다시피 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는 우리나라에서 ‘민주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부딪히던 시기였다. 자연히 그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광범위하게 서적들을 읽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것에서 특히 큰 기쁨을 느꼈다.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것은 정치와 인간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 과거의 노력들을 오늘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여기서 ‘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어떻게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답이 있을 수 있나? 과거의 사상을 현대에 바로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과거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부터 비교적 최근이라고 생각하는 헤겔,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기와 지금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그 시대에 얻은 지혜를 오늘날에 온전히 가지고 와 적용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


정치사상연구의 필요와 매력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일기를 한 번쯤 써봤을 것이다. 지나간 일기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내가 가지고 있었네’라고 말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은 때로 낯설고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라는 존재,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지금의 나의 생각이 사실은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과거의 생각들이 시간을 두고 켜켜히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일기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재인식하는 행위이다.


오늘의 인간세계, 오늘의 정치, 경제, 사회제도, 이를 떠받치는 아이디어들도 과거의 생각과 실천을 바탕으로 탄생하고 발전해왔다.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것은 결코 과거를 골동품 애호가처럼 모으고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사상을 읽으며 이해하는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존재에 대한 통찰력을 얻으려는 것이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목적이다. 과거로부터 살아온 기록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을 수 있듯, 과거의 사상을 연구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얻게 된다.


가장 인상깊은 사상가나 학자가 있다면 어떤 사람인가.

사실 인상깊었던 사람이라고 하면 너무 많아서 한 두 사상가를 뽑을 수가 없다. 정치적인 스탠스가 어떤지에 상관없이 모두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아직도 그들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 성균관대학교 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하면, 항상 내가 강의에서 강조하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이라는 사람의 말이 무조건 맞고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플라톤이 중요한 이유는 서양에서 현대까지 남아있는 기록 중에 정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최초의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국가>나 <법률>은 그 기록이다. 즉 인간이 정치에 대해 말을 만들어본 첫 경험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세계, 인간, 정치에 대해 무언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체계를 만들어 보려한 노력이 기록이 플라톤의 저작들이다.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유학을 가게 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독일과 학풍이 맞았습니다.”

수업을 하는 도중에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하면 스스로 연구계획을 짜서 몰두하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공부의 바운더리를 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학부에서도 철학, 역사,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지금도 역사학, 철학, 도상학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면에서 미리 정해진 이수과정이 따로 없는 독일의 학풍이 나와 맞았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연구를 학문분야간의 특별한 구분이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독일을 가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었고 결국 독일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독일인, 독일 문화, 독일어를  모두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큰 다행이다.

독일에서의 에피소드는 아주 많다. 독일 친구들과 술도 꽤나 마셨다. 아예 날을 잡아 한 거리에 모여서 잘 알려진 술집마다 한 집씩 들어가 한잔씩 마시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마시다 날이 밝으면 근처 빵집이나 카페에서 함께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처음 독일에서 강의를 할 때는 무척이나 떨렸었다. 너무 걱정이 되어 종이 한페이지에 내가 할 말의 순서를 시간별로 적어보기도 했다. 물론 그 순서대로 진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웃음) 가장 절친한 독일 친구는 베를린 영화제나 극장에 한국 영화가 들어오면 일부러 나를 위해 표를 사오기도 했다. <괴물>, <멋진 하루>라는 영화를 봤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외에도 많은 즐거운 추억이 있지만, 너무 많아서 다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웃음) 전반적으로 좋은 일도 많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한다.


정치학이라는 학문에 처음 입문하는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길 바란다. 또한 그들을 위해 정치학과 관련된 책 한권만 소개해주면 감사하겠다.

우선 아까도 말했던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이외에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추천한다. 사실 권하고 싶은 책은 많지만, 그중에서 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또한 너무 전공서에만 얽매여서 읽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문학책이나 자신의 분야가 아닌 책들도 많이 읽어봤으면 좋을 것 같다. 정치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모여 거대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서로간의 관계들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행위이다. 인간의 삶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학, 예술 따위의 고정된 구분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학생들이 전공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여러 분야의 도서들을 고루 읽어보기를 바란다.


성균관대학교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치는 지금의 정상을 더 나은 정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삶이 어떠한 규칙에 따라 일정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으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예전 영화 중에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나는 전설이다>의 주연이었던 윌 스미스가 나온 영화인데, 로봇과 인간의 삶이 떼어놓을 수 없이 맞물려버린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에서 어린아이와 주인공이 함께 강에 빠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본 생명구조로봇이 물속에 뛰어들지만, 아이를 먼저 구하라는 주인공의 말을 무시하고 주인공을 구한다. 로봇은 구조에 성공할 확률을 계산하여 아이가 아니라 윌 스미스를 택한 것이다.

로봇의 논리라면, 가능성이 더 많은 쪽이 옳다. 인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는 그 어느것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인간만이 가치판단을 한다. 정치는 그러한 가치판단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무엇이 옳은 행위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세계는 처음부터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져있는지도 모른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옳은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 윤리이다. 그리고 정치는 그러한 윤리적 판단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어둡고 약한 부분들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그 어떠한 존재보다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성균관대학교의 학생들이 그러한 인간적 존재로서 성장해 가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한다.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정직하고 성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경쟁에만 치중하거나 남들만 따라가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소위 말하는 주류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안에서도 이상주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고, 그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해주면 감사하겠다.

“예의있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가르치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의와 염치이다. 예의라는 것은 허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며 배려이다. 개인적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가 안좋다면, 아쉬움은 남겠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다. 결과가 최선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직도 중요하다. 정직이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주변에 대한 배려없이 고해성사하듯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이 곧 정직한 삶이다. 예의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며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삶,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