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인 이중원 교수의 시선(視線)
-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고민하다.

  • 461호
  • 기사입력 2021.01.28
  • 취재 박효진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좋은 건축물은 나쁜 건축물과 달리 쉽게 지어지지도 않고 쉽게 지을 수도 없습니다. 건축과 도시의 지속성에 대한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한다면,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우리 후손 대다수가 좋은 건축물에서 배우고, 일하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460호 커버스토리에서는 건축가, 교수, 특히 <건축으로 본 시카고 이야기> 저자 이중원으로서의 삶을 조명해본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가 책 속에 녹여낸 건축 기행의 발자취와 그 비하인드를 함께 따라가보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건축학과 이중원 교수입니다. 학교에서 3학년 <건축설계> 과목과 <현대 건축론>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연구 분야는 미국 현대건축입니다. 지난 10년간 성균관대 출판부를 통해 보스턴, 뉴욕, 시카고 건축에 관한 책을 썼고, 앞으로도 미국 도시와 건축에 관한 책을 쓰려 계획 중입니다.


 도서 출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8년 건축 설계 분야로 미국 보스턴에 유학을 갔고 졸업 후에는 그곳에서 11년간 살았습니다. 틈만 나면 미국 다른 대도시에 새로 지은 건축물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때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출판부가 주관하는 도서 출판 공모전에 선정 되어 2012년 <건축으로 본 보스턴 이야기>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으로 본 시카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핵심내용 한 가지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선, 시카고는 미시건 호수와 시카고 강을 이해해야 합니다. 미시건 호수는 말이 호수지 사방으로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규모입니다. 이 호수에서 Y자 형태로 시카고 강이 도시를 휘감습니다. 시카고는 호수와 강을 지렛대 삼아 건축의 효과를 극대화한 도시입니다. 특히 시카고 강을 따라 전개되는 마천루 협곡은 우리에게 도시 내에서 건축적 드라마는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산악 국가의 수도인 서울은 유난히 하천이 많은 도시입니다. 우리의 하천 변은 대부분이 고속도로이거나 우기의 배수로 역할 때문에 도시와 벽을 쌓고 있습니다. 한강과 하천변을 배수로 상태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마 시즌을 위한 충분한 물탱크를 땅 아래에 두어 사시사철 같은 높이의 수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후에는 수변을 따라 범람하지 않는 조경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변 조경은 영원히 사유화할 수 없게 공공의 녹지띠로 조성해야 합니다. 이곳에 수변공원과 산책로를 만들고 천변에 100년의 시간을 두어 시카고처럼 마천루를 서서히 그리고 성의껏 세운다면 그것이 살아 있는 역사이고 전통이 될 것입니다.


시카고는 미국 다른 도시들과 달리 그곳 시민들이 자기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건축적 퀄리티에 대한 요구 수준도 높고 개별 건물보다 건물이 모여 이루는 집합적 효과에 남다른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시카고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세기만 해도 매연, 먼지, 도살장, 철로, 공장이 가득한 회색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한 세기 동안 시카고는 수변 녹색 도시로 변해갔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버지가 타이베이에 국방무관으로 나가셔서 3년 넘게 (초5-중2) 미국인 학교를 다녔습니다. 태극기 앞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다가 타이베이 미국인 학교에서 3년간은 성조기 앞에서 ‘Allegiance to the Flag’를 하고,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를 불렀어요. 보스턴으로 유학을 가서는 미국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습니다. 보스턴에서 9년간 미국인 회사를 다니면서 그 회사가 지불하는 의료보험과 교육 비용으로 아이 둘을 낳아 길렀습니다. 보스턴에 사는 동안에는 언어차별과 인종차별로 진저리를 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미국과(한국과 마찬가지로) 제 관계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2009년 귀국한 후에 한국 건축에 관한 책과 정보는 많은데 미국 건축에 관한 책과 정보는 없거나 있어도 오래된 것 밖에 없고 정보들은 ‘도시-구체적(city-specific)’이지 못하고 ‘나라-일반적(country-general)’인 점이 조금 거북했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그런 도시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이 된 건축적 원인과 도시적 조건이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미국을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계와 학계와 업계가 내놓는 캐치프레이스를 흉내 내지만, 이를 구축하고 있는 구축 원리와 건축 특성은 모르고 있습니다. 미국을 알려면 개별 도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주가 주도를 가지고 있고 지리적 조건과 연방정부의 요구에 대응하면서 개별적인 역사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건축행위를 해왔습니다. 이런 국가 연합체로서의 미국을 건축적으로 심도 있게 전하기 위해 미국을 책의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나아가 각 도시가 만드는 건축문화를 통해 한국인이 미국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가길 원합니다.


보스턴, 뉴욕에 이어 시카고(다음 도시는 시애틀이라고 들었다)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보스턴과 뉴욕과 시카고는 각각의 매력이 있습니다. 보스턴은 우리의 경주 같은 곳으로 미국 건축의 시작점입니다. 미국 건축의 시작, 흐름,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꼭 들여다보아야 하는 도시입니다. 미국 내 최초의 건축대학이 MIT와 하버드대학에서 설립된 것도 보스턴을 미국 건축 1번지로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뉴욕은 주지하다시피 미국 경제 수도입니다. 미국 현대 도시의 물류 흐름이 어떻게 도시계획과 맞물리며 작동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뉴욕이 필수적입니다. 처음에는 보스턴, 뉴욕을 쓴 다음에는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DC를 순서대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필 과정에서 뉴욕을 파면 팔수록 시카고가 궁금해졌습니다. 뉴욕은 유럽과의 무역으로 글로벌 허브 도시로 성장했고 시카고는 뉴욕에 물자를 보급하는 내륙 허브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왜 필라델피아가 아니라 뉴욕이 또 왜 세인트루이스가 아니라 시카고가 허브 도시로 성장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시카고의 건축적 매력은 미시건 호수와 시카고강을 따라 전개되는 호반과 수변의 녹지공원과 공공건축입니다. 시카고 인들은 수변을 공공재로 인식하며 도시를 지어나갔습니다. 자연과 공공조경을 먼저 기획했고 그 후에 보행 다리와 철로와 차도를 기획했고 그 다음에 건축이 들어가 완성을 했습니다. 수변에 아파트를 짓고 특정 집단이 소유하여 수변경관을 사유화하는 서울과는 사뭇 다릅니다. 혹은 강변과 하천변을 따라 고속화도로를 짓는 방식과도 사뭇 다릅니다.


시애틀은 1850년부터 지난 170년간 급격하게 발전한 도시로, 나이가 아주 어려서 도시의 역사나 전통이 짧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시애틀의 장점입니다. 보통 1000년이 넘은 나이 많은 도시들은 부수고 세우고를 여러 번 반복했기 때문에 도시의 기원과 성장 과정을 유추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에 반해 시애틀은 근대도시의 태동-성장을 한눈에 물리적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건축가들에게는 대단히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근대도시가 어떻게 생멸을 하는지 볼 수 있으니까요.


시카고에서의 가장 인상 깊은 건축물이 무엇인가요?

건축적인 차원에서는 루커리(Rookery) 빌딩, 도시적인 차원에서는 리글리(Wrigley) 빌딩입니다. 루커리 빌딩은 시카고 금융가에 세워진 건축이고, 리글리 빌딩은 시카고 최대 상업가(미시건 에비뉴)와 시카고강의 교차점에 세워진 주요 빌딩입니다. 루커리 빌딩은 남북전쟁 이후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어둡고 육중하고 무겁습니다. 건물의 내부가 초기 디자인했을 때는 외관과 같이 어두웠는데 라이트가 리모델링하면서 밝아졌습니다. 외관과 대비되게 얇은 백색 철골구조를 빅토리안 시대답게 장식적으로 꾸며졌고 천창에서는 자연광이 떨어집니다. 육중한 갈색 외관과 깃털 같은 백색 철골 로비 천창이 빚는 대조미가 두드러지는 건축물입니다.


리글리 빌딩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카고 “미라클 마일” (시카고 강 건너 북쪽으로 전개되는 미시건 에비뉴 북단 1마일 상업가로) 초입에 세워진 백색 건물입니다. 시카고 강은 미시건 호수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곳에서 한 번 꺾입니다. 그 변곡점에 1920년에 다리를 세우고 1923년에 리글리 빌딩과 건너편 시카고 트리뷴 타워를 세웠습니다. 미라클 마일의 게이트와 같은 20세기 초 마천루입니다. 리글리 빌딩은 미시건 에비뉴에서 보나 시카고강에서 보나 중앙에 있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나 크루즈를 타고 가나 정중앙에 있는 입지조건을 톡톡히 살린 건물입니다. 특히 건축가가 백색 돌 외장을 수직적으로 여러 단계로 나누어, 아래는 짙은 돌을 쓰고 위로 갈수록 옅은 돌을 썼습니다. 따라서 위로 갈수록 밝아지는 이 건물은 묘한 시카고 하늘의 변화를 갈무리해서 건물의 상승감을 티 안 나게 부추깁니다. 리글리 빌딩은 도시적 입지 조건을 최대한 살렸고 자리에 맞는 섬세한 돌 외장 색깔 변화 디테일로 거대한 도시 드라마를 연출하는 건축물입니다.


책 출판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버지가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 2007년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제게 귀국해서 함께 살자고 제안을 하셨고 그 후 보스턴 11년 생활을 정리하고 2009년 성균관대에 부임해 와 부모님과 함께 서판교에 ‘삼대헌(삼 대가 함께 사는 집)’이라는 집을 짓고 아버님을 12년간(보스턴에서 1.5년 포함) 모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 둘을 데리고 시애틀에 가 있는 동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임종을 보지 못했습니다. 임종 당시, MIT 지도 교수님 퇴임행사가 뉴욕에 있어 시애틀에서 저녁 비행기로 뉴욕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시애틀 공항을 가는 버스 안에서 누나로부터 아버님 소천 소식을 듣고 급히 뉴욕행 비행기를 취소하고 다음 날 새벽 아이들 둘과 귀국했는데, 그 사건이 책 출판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입니다. 시카고 책을 아버님께 헌정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관련 도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주의하는 것이 있을까요?

미국도시 건축 시리즈를 쓰면서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이야기인지 역사인지 비전인지 혹은 좋은 건축물 소개인지를 자문합니다.  제가 쓰는 글에 제 자신이 빠지지 않게 이야기 함정에 함몰되거나 이야기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건물은 아무리 사소한 건물일지라도 긴 시간을 거쳐 탄생합니다. 그래서 각 건물 이야기 안에는 영웅담과 스캔들로 가득합니다. 가끔 저자도 단일 건물 이야기 속에 빠져 책이 본래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포인트를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 건물 이야기를 모아 얼개를 짜고 시사점을 도출해야 하는데, 지엽적인 한 스토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퇴고의 과정은 무척 중요합니다. 나는 책의 두께를 300페이지 정도로 쓰고 싶다면 600페이지 정도를 먼저 씁니다. 그러고는 수개월간 덮어 두어 책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눈으로 썼던 분량의 반을 버리는 작업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2~3번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길고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1년에 한 권씩 책을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저는 제 책이 단지 건축 소개서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재미도 느끼지만 가끔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 환경에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는 책이면 좋겠습니다.”

 <건축으로 본 뉴욕이야기> 퇴고 과정, 2014년


건축 전공자의 시선에서 ‘좋은 건축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brim over

우리가 잔에 포도주를 따를 때 가끔 잔이 넘치는 걸 영어로 ‘brim over’ 한다고 표현합니다. 모든 좋은 건축은 차서 넘치는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합니다. 좋은 건축은 오랜 시간을 두고 오랜 고민 끝에 서서히 느긋하게 지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과 느긋함이 시작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좋은 건축물은 나쁜 건축물과 달리 쉽게 지어지지도 않고 쉽게 지을 수도 없습니다. 좋은 건축물은 정성스럽게 지은 잉여와 여분의 건물입니다. 기능성과 효율성보다 여백성과 잉여성이 건축을 좋게 만듭니다. 좋은 건축물은 좋은 책과 마찬가지로 방문자가 방문하기 전과 방문한 후가 같지 않습니다. 좋은 건축물은 건물 방문자에게 공간적 감동과 사상적 변화를 유발합니다. 관점과 행동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좋은 건축물’은 무엇인가요?

우리 문묘와 성균관을 좋아합니다. 종묘는 역사가 끊어질 수 있어도 문묘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집단 기억’(Anamnesis)이 있고 우리의 ‘집단 기대’(Prolepsis)가 있습니다. 대성전과 동묘와 서묘, 명륜당과 동제와 서제 기둥과 마당 사이에는 우리의 집단 기억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우리의 집단 기대가 꿈틀거릴 곳입니다. 성균관은 신라 시대의 국학, 고려시대의 국자감, 조선시대의 성균관 그리고 현대시대의 성균관대학교로 면면히 이어지는 공공의 기억이고 공공의 기대입니다. 사조와 왕조는 변해도 지식을 생산하고 인재를 양성하려는 문묘와 성균관의 의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건축을 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건축인들은 건물을 있게 하는 의지를 ‘건축 이전의 건축’이라 생각합니다. 문묘와 성균관은 그런 선험적 건축 혹은 원-건축이기 때문에 가장 좋아합니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졸업생, 90학번 이중원은 어떤 학생이었나?

1990~1995년 학부생 기간 동안 남들과의 경쟁에서 굳이 이기고 싶어 하지 않는 아주 소심한 학생이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동기들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일찍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대학생 시절 한 가지 잘 한 선택이 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3학년 선배님의 권유로 작업실 건축학과 동아리인 ‘동바리(동바리는 한옥에서 주춧돌이라는 의미)‘ 6기로 들어간 것입니다. 반지하 주차장에서 6명이 3년간 함께 살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TV도 없고 편히 앉을 수 있는 소파나 침대가 없어서 늘 제도판과 친해져야만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자취하고 형들과 집단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누구고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나의 단점은 무엇인지 같이 한솥밥을 먹던 형들의 지적을 통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형들을 통해 많이 깨지고 깨닫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것에 특히 경도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형들이 나가는 공모전 도우미도 뛰고 함께 전통건축 답사도 갔습니다. 당시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동바리 합숙생활은 미국 대학생들이 말하는 Fraternity House 같았던 곳입니다. 그 덕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수생이 되어 보았고 공모전에 입상도 했고 성대 신문에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