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캐스터 ‘김수현’의 순간들

  • 463호
  • 기사입력 2021.03.07
  • 취재 박효진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 조회수 13462

<League of Legends>,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 수많은 게임 중계를 맡으며 자신만의 밝은 에너지로 생생하게 그 현장을 전달하는 ‘갓경 누나(언니)’ 김수현. e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김수현은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이름일 것이다.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는 ‘안경 누나’, ‘엔젤’, 그리고 유명 스트리머 ‘우왁굳’의 아내로 잘 알려진 김수현 캐스터의 On 그리고 Off의 순간을 조명해보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프로 캐스터’ 김수현의 시간부터 무대 뒤 편, 꾸준히 공부하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인간’ 김수현의 시간까지. 그녀가 걸어온 여러 삶의 순간들을 만나보자.


Q. 안녕하세요. 김수현 아나운서/캐스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게임 방송 아나운서와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수현입니다.  정치외교학, 신문방송학 07학번이에요.


Q. 아나운서, 특히 ‘게임’ 캐스터로의 진로를 정한 계기가 있을까요?

단순히 저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도 “게임 하세요?”라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과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아나운서를 준비한 것은 2011년부터였습니다.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네요. 그 당시만 해도 게임 방송은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 방송의 아나운서로 활동할 기회 역시 현저히 적었습니다. 그 이후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의 리그인 LCK가 개막했고 그때부터 다양한 게임 방송과 리그의 다양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방송과 게임을 함께 다룰 수 있는 게임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고 2016년 SPOTV GAMES의 공채를 통해 게임 방송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게임 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너무나 큰 만족감과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게임 방송에 제가 가진 에너지를 쏟으며 좀 더 길고 깊게 호흡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당시 성승헌 캐스터님과 피디분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게임 캐스터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Q. 본인이 느끼기에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장이라는 것,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며 진행되는 방송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계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경기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해설 위원분들과 함께 선수들의 마음을 느끼고 경기를 읽어내며 결말까지 가는 드라마를 매 순간 내 입을 통해 전달합니다. 중계가 끝나고 나면 목은 쉬어있고 몸도 지쳐있지만 그 에너지가 쏟아져 나올 때의 행복은 그 어떤 경험과도 비할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게임 방송은 언제나 시청자가 상당히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 환호, 박수소리를 바로 앞에서 지켜보며 방송이 진행되고,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경기나 방송을 해야 할 때에도 언제나 데스크에는 실시간 채팅창이 함께 합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방송의 분위기와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만 무대에 설 때 언제나 설렘을 가지게 됩니다.


Q. 듣기만 해도 굉장히 설레는 순간들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가 있을까요?모든 중계가 소중하고 즐거웠지만 가장 최근 경험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12월 초 ‘발로란트 퍼스트 스트라이크 코리아’라는 발로란트의 첫 공식 대회가 있었습니다. 평소 FPS장르를 워낙 좋아해서 발로란트도 꾸준히 했었고 덕분에 남편과 예능 유튜브를 촬영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를 인연으로 대회의 분석 데스크와 인터뷰를 맡을 아나운서로 투입이 됐었는데요, 4일의 릴레이 경기 중 3일 차 되던 날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심각해져, 급하게 무관중으로 진행해야 했고 다음 날 경기 시간 역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갑작스럽게 3일 차 경기를 중계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됐는데요, 제가 진행하기에는 너무나 큰 대회였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롤파크에서의 중계였기 때문에 다가온 기회에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이 아닌 걱정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평소 워낙 즐겨 하는 게임인데다 함께하는 해설진이 워낙 베테랑이셔서 무사히 중계를 마칠 수 있었고 제작진들과 해설 위원들 그리고 몇몇 시청자들의 좋은 평가도 함께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FPS는 First-person shooter의 약자로,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무기나 도구를 이용해 전투를 벌이는 슈팅게임의 일종이다.)

사진출처-dailyesports

http://m.dailyesports.com/view.php?ud=20201203220629724674bcc1e038_27#_enliple


Q.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게임 캐스터’로 거듭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계를 맡은 종목에 대한 이해도와 임기응변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게임 캐스터는 리그 전체를 아우르며 중계와 진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게임 중계와 함께 MC의 역할 역시 필요합니다.


게임 방송을 시작하기 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MC의 역할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게임 캐스터를 하면서 온몸이 굳어버리는 제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게임에 대한 이해, 리그 전반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었다는 것을 추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임 자체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이고 리그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 팀들, 그리고 심지어 팬들의 니즈와 스토리를 알아야 ‘좋은 중계’가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때문에 한 종목의 중계를 맡게 됐을 때 모든 캐스터들이 엄청난 깊이로 공부하고 중계에 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경기이니만큼 돌발 상황이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시청자들의 평가 또한 달라지기도 하며 함께 하는 해설자들과의 호흡 역시 그렇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지금의 ‘프로’ 김수현에게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네요. 혹시 본인만의 슬럼프 극복 방법이 있나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는 나보다 어울리는 누군가가 오르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제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가면 그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도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직 부족하나 해야만 할 때, 도전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되새기는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Our life is what our thoughts make it)” 입니다. 비판이 두렵고 실패가 두려워 주춤거리게 될 때마다, 자신에 대한 불안함이 엄습할 때마다 이 구절을 읊곤 합니다. 마치 자기최면, 긍정의 힘과 비슷한 의미로 보일 수 있지만 그와는 다릅니다. 부정적인 일이, 좌절감이 생기더라도 맞설 용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매 순간 감사하고, 작은 감사에도 행복해지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생각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 자체라고 합니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Q. 공감해요. 그런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있어야 힘든 순간이 닥쳐와도 잘 이겨내고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팬들 역시 도전적이고 밝은 김수현 아나운서님의 모습을 더 사랑해 주시는 것 같고요. 평소 팬들께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고 계신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을까요?

 가장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안경 누나'와 '엔젤' 모두 마음에 들어서, 둘 중 택일을 하기는 참 어렵네요. 안경 누나는 저에 대한 관심이 낳은 감사한 이름이고 엔젤이라는 별명은 불러주시는 자체만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 모두 마음에 듭니다.

사진 출처: 김수현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Q. ‘성균관대학교 07학번 김수현 학생’이 궁금해요. 기억나는 대학생활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과 생활보다는 동아리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학 입학 후 흑인문화 동호회인 레퀴엠 멤버로 들어가자마자 분기별 공연을 위해 매일 막차 직전까지, 동아리방도 없어 학교 지하의 통유리 창을 거울삼아 연습했고 교내 외에서 열리는 모든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그 당시 레퀴엠 멤버들과 여전히 깊은 친밀감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동아리방 없던 ‘쪽방 생활’이 결속력을 더 다져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 봄부터는 레퀴엠 선배의 권유로 문화 기획 동아리 SKKiP스킵의 창립 멤버로 정말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에는 상당한 고충이 따랐습니다. 첫 파티를 기획하고 난 이후 부정적인 시각과 사건 사고로 인해 힘든 날들을 직접 발로 뛰며 이겨냈고 결국 우리의 첫 기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은 성균관대에 새로운 문을 열어낸 동아리라며 긍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졸업 후 중앙 동아리로서 동아리방까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찾아가 함께 축하해 주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무대에 섰고, 누군가의 무대를 기획한 경험은 아직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 사회과학대 전공이시면, 주로 수선관에서 수업을 들으셨겠네요?

네 맞아요. 정치외교학, 신문방송학 전공이라 수선관에서 수업을 들었죠. 수업이 끝날 때마다 경영관 지하 3층 소극장 계단 옆 낡은 창고와도 같은 곳에 다 같이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수다를 떨다가 다시 높은 경사를 힘들게 올라가 수선관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여전히 그곳을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앞으로도 게임 관련 방송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게임 캐스터로서 아나운서로서 MC로서. 안경 누나이기도 누군가의 아내인 엔젤이기도 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Q. 마지막으로 방송계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방송계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메이저 방송뿐만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채널의 생성으로 인해 인력 부족으로 일할 사람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모든 직업이 그럴지 모릅니다. 보이는 것이 많은 방송계는 더욱이 그 화려한 면과 ‘PD’, ‘아나운서’라는 멋들어진 직업명으로 인해 도전하려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현실은 그와는 조금 다를지 모릅니다. 자주 밤을 새우며 몸이 망가지기도 하고 시청자들의 뭇매에 크게 상처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번의 프로젝트를 끝낸 후 느낄 수 있는 희열, 보람은 절대 다른 직업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송계에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결국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저도 수십 번의 탈락을 통해 부족함을 매번 느끼고 다른 이와 비교하며 실망 또한 했지만 그저 버텼기에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게임 방송을 시작한 나이는 29살이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이 일을 진정하고 싶은지 꿈꾸는 그 시기에 확실히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꿈과 욕심이 분명 현실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