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 교수와 함께 바라보는 사회

  • 477호
  • 기사입력 2021.10.11
  • 취재 박효진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 조회수 5863

사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우던 시대를 지나 우리는 경제와 정치, 아울러 다양한 공동체와 개인들의 문화 영역을 아우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사고 능력과 현상에 대한 통찰력, 전문적인 지식, 문제 해결능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호기심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나는 누구인가’ 나아가 ‘우리’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이는 꼭 필요한 자극이다. 10월의 <인물포커스>의 주인공 구정우 교수는 학생들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그 답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다. 구정우 교수는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어떠한 시선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가 바라보는 ‘사회’는 무엇일까?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구정우입니다. 저는 주로 세계화, 인권, 정치사회학, 조직사회학 이런 쪽으로 연구를 해왔어요. 제 책과 논문의 대부분에 ‘인권’이 들어가요. 조직과 관련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키워드도 꽤 들어가 있고요. 세계화와 관련해서는 미국 사회학회(ASA)에서도 활동을 오래 했고, ASA 운영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Q. 교수, 작가, 연사, 연구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이력이 있다면?

해외의 연구자들이나 정책, NGO 하시는 분들과 교류하면서 글로벌하게 활동했던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CSIS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서 전 세계 인권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다양한 나라의 연구자, 활동가를 한데 모았어요. 전 한국, 아시아 대표로 참가했죠. 베를린도 가고, 튀니지도 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갔어요. 서아프리카의 요충지인 가나도 방문했죠.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할 때 케냐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안내 영상이며 방송에서 계속 중국말이 나와 신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가나 공항에 도착하니 너무나 ‘삐까번쩍’해서 놀랐는데 (스벅도 있더군요!), 알고 보니 중국의 대규모 원조로 건설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꾸준히 개도국에 대외원조하는 게 이래서 중요한 거구나. 이렇게 국격을 올리는 거구나 싶었어요.       


Q. 교직에 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 고등학교 때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사회부나 정치부 기자가 멋있어 보였어요. 그런데, 늘 부족한 수면에 또 술에 ‘쩔어’ 살아야 하는 기자의 일상을 접한 후 바로 이 길을 접었죠. 박사학위를 받아보자, 교수가 웰빙이 더 좋은 것 같아,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방학도 있고, 젊은 학생들이 늘 ‘고객’이고, 안식년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20년도 훌쩍 넘은 지금 젊은 사회부 기자들이 매일 저를 애타게 찾는 걸 보면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사회학 교수! MZ 세대, 젠더 문제로부터, 공정성과 사법정의, AI와 디지털 전환까지 온갖 질문을 받고 상냥히 대답해 주는 제 모습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난 사회학자인가 보다 되뇌게 됩니다. 그래도 자연스레 말발이 늘고 세상 보는 지혜가 생기는 느낌이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아요.


Q. 본인만의 특별한 수업방식이 있다면?

저는 학생들과 토론하는 걸 좋아해요. 현재도 제 수업은 반은 제가 강의 저장을 하고, 반은 실시간 수업으로 토론하고 이렇게 진행돼요. 저는 13년 전 성대에 부임하면서 4과목 중 3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으로 계약서에 도장 꽉 찍고 들어왔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국제어 강의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영어로 진행되는 토론에 품을 많이 들였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어쩔 땐 독이 돼서 빡쎈(?) 국제강의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외면하기도 하고, 영어가 좀 더 유창한 외국인 학생과 토론 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내국인 학생들이 불평하는 일도 있더라고요. 조금 미안하긴 한데, 외국 학생들이 객지 생활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냐 하면서 이해를 구하는 편이죠. 이번 학기는 ‘인공지능과 인권’ 수업을 학·석 공통 과목으로 개설했는데, 유럽에서 온 친구들이 진짜 엄청 열심히 토론에 참여해요. 너무 재미있습니다. 


Q. 안타깝게도 학생들과의 대면 만남이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만나본 20, 21학번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역시 직선적이더라고요! 강의 평가에서 돌직구 날리던데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만남이 없고 인격적인 만남이 거의 없다 보니 더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20학번, 21학번을 진짜 직접 만나본 일이 없어서, 화성에서 왔는지, 금성에서 왔는지 모를 노릇이에요. 나도 만나고 싶답니다. 화면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지적 호기심이 매우 많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상을 통해 경청하고 또 적극 참여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제가 특히 MZ 세대에 관심이 많고 외부 강연도 많이 하는데, 제가 더 세심히 연구하고 지켜봐야 할 소중한 제 학생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위드 코로나가 빨리 되어서 곧 직접 만나기를 바랍니다.


2019년, 사회학 입문 수강생 70명과 구교수가 함께 진행한 인간하트 퍼포먼스. 퍼포먼스에 앞서 진행된 야외 수업에서는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사회 통합과 참여의식 함양을 위해 매년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2019년까지 총 7번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어 하루빨리 퍼포먼스가 재개될 날이 오길 바란다.


Q. 사회학 이론 수업뿐 아니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강의를 새롭게 연구, 시도 중이신 거로 알아요. 개설된 통계 수업들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전 그동안 ‘국제인권’ ‘사회학입문’ ‘비교사회학’ 이런 이론, 사회문제 중심의 강의를 해왔어요. 코로나 전까지 너무 재미있게 학생들과 소크라테스 식으로 수업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IT, 이공계 중심으로 바뀌고 있더라고요.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에게 데이터를 다루는 역량을 키워주는 게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서 ‘소셜빅데이터분석’을 개설하기 시작했죠. 온라인 빅데이터를 스스로 수집하고, 모인 데이터를 확률 모형인 ‘토픽모델’을 통해 분석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수업이에요. 통계 수업들이 많이 개설되는데, 실제 분석하는 법을 친절히 가르쳐 주는 수업은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죠. 좀 고생이 되더라도, 아 내가 ‘고기 잡는 법을 직접 가르치자’ 이렇게요.   


Q. 신규 개설된 <대격변의 시대>강의가 굉장한 이슈인데요. 수업 준비과정에서의 비하인드가 궁금해요.

학교에서 상당히 공을 들여 ‘총균쇠’ 저자인 제래드 다이어몬드 UCLA 교수님을 성대 석좌교수로 모셨어요. 계약 기간은 3년이죠. 어떤 식으로 성대 구성원들과 만나게 할까 고민하다, 제게 제안을 했어요. 수업을 함께 디자인해 보면 어떻겠냐는 거였죠. ‘가문의 영광’이다 싶어서, 바로 승낙하고, 다이어몬드 교수님께 이메일을 했죠. 제가 생각하는 강좌명과 내용을 담아서 말이죠. 흔쾌히 동의하셨고, 강의 진행과 관련한 아이디어도 주셨어요. 8월 졸업식을 위해 축사를 직접 촬영해서 보내주시기도 했죠. 그런데 이게 ‘총균쇠’ ‘문명의 붕괴’ ‘대변동’ 세 권을 그것도 원서로 모두 다루다 보니 (총 1,500쪽), 책 읽고 강의 준비하는데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더라고요. 때려 넣은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요. 후회막심! ‘그냥 하던 수업할 걸.’ 그런데, 책으로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뉴기니, 이스터섬, 마야 문명 이런 곳에서 어떻게 농업이 꽃피고, 언어와 국가시스템이 발전했는지를 지역 유튜브 영상과 곁들여 보니까 이거 꿀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 여행 충동도 마구 들었죠. 학생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성장하는 느낌입니다.  


Q. 사회학, 사회학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사회학은 한마디로 ‘넘나드는’ 학문이에요. 개인과 집단,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와 세계를 넘나들죠. 어떤 분은 개인의 심리로 깊게 들어가서, 인간의 동기와 본성에 대해 탐구하죠, 또 다른 분은 계층이나 인구 등을 택해서 개인 심리와는 상관없는 좀 더 패턴화된 것들을 연구해요. 현대와 근대를 연구하는 분들이 대다수지만, 어떤 분들은 조선시대, 계몽주의 시대, 심지어는 중세 이전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도 있어요. 경제, 조직사회학을 매개로 경영학, 경제학 하시는 분들과 교류하면서 사회학의 영역을 개척하는 분도 계시죠. 이리저리 넘나드는 학문이다 보니 사회학처럼 지루할 틈 없고 재미있는 학문도 드물어요. 성균관대 사회학과에는 경제, 조직, 사회조사, 건강, 종교 등을 연구하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계세요. 언젠가 꼭 수업을 듣거나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 보길 바라요. 대학원 진학도 좋고요.


Q. 사회학을 공부하며 배울 수 있는 것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알파고의 아버지죠, 딥마인드의 CEO인 데미스 하사비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신은 학문들을 ‘접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른바, glue person이라고 자기를 규정했죠. 본인은 인지과학을 했는데, 딥마인드에 와서 AI를 하다 보니 공학자, 의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를 다 연결시키는 게 본인의 역할이었나 봐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하사비스 사회학자 아냐?’ 넘나드는 학문으로 사회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유연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여러 시각들과 관점을 종합하고 융합하는 역할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기자들도 누굴 찾을지 모호하면 늘 절 찾아요. 사회학자니까요.


Q.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회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

아무래도 신문기사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많이 접할 수 있겠죠? 청년 일자리 문제, 젠더 갈등, 저출산 고령화, 디지털 전환, 건강과 보건, 이 모든 이슈들이 사회학의 중심에서 논의되고 있고, 늘 네이버 펼쳐 보면 수많은 기사와 스토리가 한눈에 들어오잖아요? 물론 직접 신문을 구독해서 잉크 냄새 맡으며 펼쳐 보는 것도 좋아요. 아주 좋은 아날로그 경험이 될 거예요. 또 유튜브도 사회학적 지식의 보고에요. 물론 베버, 뒤르케임 등을 찾아보라는 말이 아니고요. 전 요즘 빌 게이츠의 채널을 구독해서 짬짬이 보고 있어요. 최근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을 펴냈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죠. 기후변화, 중요한 주제잖아요? 환경사회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회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죠. 또 빠니보틀, 곽튜브, 뜨랑낄로 이런 유튜버 채널을 시청하고 있어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잘 소개해 주더군요. 해외 채널은 Lost LeBlanc, Janet Newenham, the Evergreens 채널을 추천해요. 사회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첩경인 것 같아요.  


Q. 시사해 볼 만한 최근의 사회학적 이슈거리가 있다면?

역시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대장동 스캔들’ 보세요. 투기 세력들이 온갖 불법, 편법, 반칙 다 써가면서 청년들과 서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잖아요. 전에 LH 직원들의 땅투기도 그랬죠. 이게 정치적인 이슈이기도 하지만, 사회학적인 주제예요. 불평등의 기원과 매커니즘, 이로 인한 사회 구성원들의 박탈감, 이를 바꿔 나가기 위한 방안과 전략,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요. 젠더 이슈도 중요하죠. 진짜 요즘처럼 남녀 갈등 심하고, 여혐, 남혐 간에 힘겨루기가 극에 달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젠더는 사회학자들이 오래 연구해 왔어요. 성 불평등의 기원을 좀 더 구조적으로 보는 분도 있고, 사회심리학적으로 편견, 선입견에서 출발하는 분도 있어요. 제 지도 학생 중에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친구가 있고, 제가 워낙 이 주제에 관심 있다 보니, 함께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Q. 교수자로서,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연구재단에서 융합연구비를 좀 큰 규모로 받았어요.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함께 혐오 표현을 식별하는 AI 모델을 만드는 건데, 사회학자들과 인공지능 교수들이 손을 꼭 잡았죠. 4~5명의 대학원생들이 여기 참여해서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공지능은 학문 분야를 떠나서  더 중요해질 것 같아요.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그 용도가 커지고 있어요. AI for Social Good이라는 분야가 있거든요. AI를 활용해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아이디어죠. 현재 네이버는 클린봇을 카카오는 세이프봇을 만들어서 온라인 댓글 중 악성 댓글과 증오 표현을 식별해서 가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이처럼 저희도 혐오 표현을 식별해 주고 사전에 경고해 주는 AI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사회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교에서 산책 할 때 저는 성균관을 자주 찾아요. 앉을 공간이 없어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수백 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공간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좀 숙연해지기도 하고 뭔가 에너지를 받는다는 느낌도 들어요. 캠퍼스 곳곳에 벤치들이 많이 놓여 있어요. 이리 보면 창경궁 저리 보면 서울성곽 막 이래서 학교 품이 참 따뜻하다 그런 느낌을 받아요. 여러분도 이 느낌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오프라인 수업은 하지 못하지만 가끔 도서관도 나오고 학교에 와서 산책도 하세요. 그때 제 연구실 (교수회관 428호) 꼭 들르시고요. 코로나에 주눅 들지 마시고 각자가 있는 곳에서 꿈과 목표를 실현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위드 코로나 시작돼서 학교에 나올 수 있을 무렵이면 바로 옆에서 친구들 만나고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나, 제 랩(솜SIC랩) 학생들에 대해 궁금하시면, 이 링크를 방문해 주세요.

https://sites.google.com/view/somssi-lab/%ED%99%88?authuser=0

여러분, 화이팅 하시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