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수업 듣고 헌법소원 청구했어요”
- 이정은 (행정학과 15) 동문

  • 486호
  • 기사입력 2022.03.02
  • 취재 송명진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7583

쓸모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이런걸 배워서 어디에 쓰냐’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공부는 재미가 없어진다. 바로 여기, 정말 쓸모 있고 재미있는 공부를 해본 학생이 있다. 학부시절 헌법 공부가 특히 재미있었다는 이 학생은 지난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서 결국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아 냈다. 이번 호 <인물포커스>의 주인공은 행정학과 15학번 이정은 동문이다. 꼭 만화 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포커스 인(focus-in) 해보자.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행정학과 15학번 이정은 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제반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꿈과 적성을 모두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제 목표이자 꿈입니다. 우리대학 행정학과를 선택한 것도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법이나 제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여전히 그 과정에 서있고, 지금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Q2. 헌법소원, 왜 청구하셨나요?

2020년 3월, 저는 미국 LA의 NGO 단체에서 노숙자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내에서 코로나19가 갑자기 심각해졌고, ‘귀국 러시’로 인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는 것이 정말 어려워졌어요. 인턴십 계약 기간은 좀 남아있었지만, 이러다가는 정말 집에 못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저도 인턴십을 조기 종료하고 급히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국외부재자 신고를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이 3월 30일에 재외선거 사무를 중지하는 결정을 내려 공관 투표소 및 추가 투표소 등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투표를 하지 못한 채 귀국했어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귀국 후에 한국에서 투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재외투표 개시일인 4월 1일 이후에 귀국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와서도 투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국외부재자 신고를 한 경우, 재외투표기간 개시일 전까지 귀국하여 귀국투표를 신고해야한다는 규정 때문이었어요. 그러니까 아예 국외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선거일에 투표 할 수 있었지만, 국외부재자 신고를 함으로써 선거일에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국외부재자 신고’ 라는 것은 투표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행위인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투표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억울했어요. 게다가 제 착오나 과실이 아닌 자연재해(코로나19) 때문에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았음에도 제가 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선거일에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서 연락이 와서 투표 할 의사가 있느냐고 여쭈시기에, 당연히 할 생각이 있다고 했더니 그럼 6시까지 투표소로 나와 투표를 하라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귀국하면 무조건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했기 때문에 자가격리자 투표시간에 맞춰서 투표소에 도착하면 투표 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은 거죠. 그런데 실제로 약속된 시간에 투표소에 갔더니 제 신분증을 확인하시곤 투표를 할 수 없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겁니다.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며 결심했어요. ‘아, 차라리 잘됐다. 이거 헌법 소원을 내자!’ 


Q3. 헌법소원심판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자세한 경위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2018년에 김일환 교수님께 헌법 수업을 들었습니다. 성적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웃음), 정말 열심히 들었고 또 재미있게 들었어요. 헌법 전문을 읽으면 막 가슴이 뜨거워지고, 의미 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판례 공부도 참 즐거웠어요. 그래서 제가 겪은 일을 마치 헌법 수업 중간고사 답안지 쓰듯이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이 사건에서 침해되는 내 기본권은 무엇인지, 과잉금지 원칙에는 위배되지는 않는지, 침해의 최소성·법익의 균형성 같이 그때 배웠던 개념들을 하나씩 꺼내서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LA 총영사관 재외선거관리위원회와 나눴던 메일이나 재외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송 해주신 접수증, 공고문 같은 것들을 다 수합했어요. 헌법소원은 전자헌법재판센터를 통해 신청했는데요,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국선대리인 신청도 했습니다. 헌법소원은 대리인이 필수이거든요. 다행히 국선대리인 신청도 잘 받아들여졌고요. 재미있는 건 저도 헌법소원 때문에 직접 헌법재판소를 방문하거나 법정에서 발언을 한 적은 없다는 거에요. 실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기약이 없었는데 얼마 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나 당장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면 법률이 없어져 공백이 생기니 언제까지 입법을 하라는 취지의 결정이랍니다. 

위헌확인 판결문 일부


Q4. ‘헌법불합치’ 결정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기 보다는 ‘이게 진짜 되는구나’ 싶었어요(웃음). 기본권 침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로 이렇게 확인 받을 수 있을지는 저도 몰랐거든요. 제가 변호사도 아니고, 그냥 학부 때 잠깐 헌법 공부를 한 거로 한번 시도해본 건데 진짜 헌재결정문에 제 사연이 남게 된 거니까 저도 신기해요. 확실한 건, 이런 결과를 얻고 나니 ‘배워 두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는 거에요. 


Q5. 행정학과 15학번 이정은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이거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김광규 시인의 <나>라는 시가 있어요.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하는 시인데요. 그 시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끝나거든요. 딱 그 시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제 대학생활은 나름대로 찬란했고, 즐거웠고 그만큼 치열했고, 어려웠는데 어떤 학생이라고 딱 잘라 설명을 드리면 그 모든 것들이 압축되는 것 같아 좀 아쉬울 것 같아요.


Q6. “내가 대학에서 이거 하나는 참 잘 배웠다” 하는 게 있다면?

저는 학과 특성상 팀플이 참 많았는데 2학년 1학기, 처음 듣게 된 전공수업에서 아주 멋진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전까지 팀플은 어렵고 답답한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선배들과 함께 팀플을 하면서 업무 분담의 정확성과 깔끔한 정리가 성공적인 팀플의 구성요소라는 걸 깨달았어요. 덕분에 해당 수업 성적도 아주 좋았고, 이후의 팀플 수업에서도 그때 배운 걸 십분 발휘한 덕분인지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별로 없어요. 


학교가 성장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Over the SKY, 글로벌 리딩 대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아직도 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총장님의 연설이나 대학 곳곳에서 그런 성장 욕구를 느꼈거든요. 저는 우리 대학이 학생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려는 학교 같아서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좋은 교수님들을 참 많이 뵈었어요. 제가 닮고 싶고 항상 교육자로서의 열정이 넘치시는 배상훈 교수님, 이번 헌법소원심판에 도움 주셨던 김일환 교수님,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할 수 있게 해주신 정문기 교수님, 제 롤모델이 되어 주셨던 이숙종 교수님, 조민효 교수님 등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좋은 교수님들 밑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Q7. 인간 ‘이정은’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곰곰이 생각하게 되네요. 일단 첫째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신념이고, 둘째는 세상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공헌 욕구, 셋째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성장 욕구가 저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 같아요. 세상의 변화는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한다고 믿어요. 제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으면 결국 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 잘 사는 일보다는 다 같이 잘 사는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Q8.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인데요. 지금 당장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힘이 들 때,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을 때 저 말을 주문처럼 외워요. 그럼 뭔가 다 잘 될 것 같아요. 지나보면 정말로 별 게 아니더라고요. 인생의 굴곡이 조금 일찍 온 분들은 이제 앞으로 좋은 일만 남았고요. 지금까지 별일 없이 무사무탈하게 살아오신 분들은 마음이 넉넉하게 성장할 시간을 벌었으니 다행이고요. 해보니 '해야 한다' 라는 것은 없더라고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언제까지 무엇이 되어야 한다 같은 건 욕심이에요. 그래서 혹시나 본인의 욕심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고 마음껏 행복해지셔도 된다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