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가 들려주는 법(法) 이야기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성범 교수

  • 488호
  • 기사입력 2022.03.31
  • 취재 송명진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6907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 불린다. 하지만 ‘최소한’ 치고는 꽤 어렵고 복잡해보이는 것이 법이다. 이성범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의 신입생이 되던 2001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이 법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왜 법을 공부할까? 딱딱하게 생긴 법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이번 호 인물포커스에는 법학자가 이야기하는 법 이야기, 그리고 법을 공부하는 이성범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럼 이제, 잔잔한 듯 역동적인 그의 이야기에 포커스인(Focus in) 해보자.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부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민법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는 이성범 교수입니다. 저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재산법이론을 주로 연구하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법률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법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일반적으로 다루는 법학방법론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Q2.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 임용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교수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나누어지고 상호 간에 어떤 일방적인 상하 구조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거대한 학문의 세계 앞에서 모두 배우는 자일 것입니다. 교수는 그저 몇몇의 것을 얼마간 먼저 경험했을 뿐 계속 배워야만 하는 자입니다. 지속적인 배움의 과정으로서 교수의 직무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학생들과 함께 끊임없이 ‘교학상장’하고 싶습니다. 

 

Q3. 민법을 주요 연구 분야로 두고 계세요. 이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민법의 매력’을 소개해주세요. 

법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사례 해결 자체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이보다 이론적인 접근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실제 분쟁 사례를 다루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법의 모습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추상적이며 개념논리적인 설명들에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민법을 처음 배우면 법률행위나 의사표시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법을 그저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지 인간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들 같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념들의 형성 및 그 체계와 같은 일반적인 내용들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다가 민법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민법을 연구한다고 하면 물론 재산이나 가족 문제 등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실제적인 분쟁의 구체적인 해결에만 주안점을 두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해결 과정에서 다양한 개념과 논리가 사용되고 이를 형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초적인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죠. 민법은 사람 사이의 생활관계를 어떻게 규율할지를 법체계 안에서 일반적인 형태로 고민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민법 안에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심도 있는 사색의 공간과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이익을 형량하여 실제에 적용해야 하는 실무적 공간이 대등하게 공존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차원을 다 공부해야 하기에 어렵기도 하지만 다각도의 사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대상으로서 민법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Q4. 법학과 01학번으로 입학해, 법학박사가 되셨어요. 아주 오랫동안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계신데요. 지금 삶의 방향성은 언제쯤 구체화된 건가요?

법학과에 입학하고 처음에는 직업적인 고민만 하였는데, 학부과정을 거치며 공부할수록 법학이라는 학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도서관에서 여러 문헌을 접하면서 대학원 입학을 생각 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학문의 시작은 기존의 학문 체계 및 내용에 대한 비판보다는 경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헌들을 읽으면서 여러 선생님들의 학문적 견해에 대해 감탄하면서 그러한 학문적 삶을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일어났죠. 학부시절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교수님들께서 대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상하게 알려주셔서 걱정보다는 설렘을 안고 학문의 길에 들어섰던 것 같습니다. 

 

Q5. 대학시절 교수님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학창시절의 이성범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대학시절 전공 공부 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뭔가 외부적으로 활동 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혼자 조용히 무언가를 계속 탐색하며 즐기고 있었죠. 중앙도서관 열람실에서 전공 공부하다가 서가에 가서 여러 책이나 잡지들을 한참 뒤적이던 학생이었어요. 특히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광화문 씨네큐브 영화관에 혼자 가서 영화보고 돌아오곤 했죠. 가끔 오전에 마음 내킬 때 그냥 가서 상영관에 혼자 앉아서 본 적도 있었어요. 음악 들으러 공연장에 종종 가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밤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작은 술집에서 여러 고민들을 이야기하며 듣던 음악이 참 좋았던 것 같네요.

 

Q6. 법(法). 알고 보면 일상과 아주 가까운 것인데, 왠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균웹진의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법(法)을 소개해주세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쉽고 재미있는 법은 무엇일까요. 재미있는 법적 사례의 소개를 원하시는 것 같긴 한데, 종종 뉴스에 이목을 끄는 판결들이 소개되기는 하지요. 잘 모르겠네요. 언제부터 법이 우리에게 이렇게 어렵고 멀게 느껴지게 된 것인지. 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고시 등 경쟁이 치열하고 어려운 시험에서 시험과목으로 법이 있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 한 인문학자의 글을 읽다가 법 공부를 육법전서 외우는 것과 동일시하는 표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사실 법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법전에 적혀 있는 것이 단순히 법의 전부는 아니며, 우리가 생활관계 속에서 규범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에 대해 말하고 정당화하는 작업을 통해 법을 조금씩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법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신문이나 뉴스에서 등장하는 이슈들과 관련해서 법조문도 직접 한번 찾아서 읽어보고 자신의 규범적 관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흥미롭게 법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7. 가장 빨리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장기 계획이나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가 달성하지 못한 경험이 많아서인지 점점 단기 목표를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는데, 현재로서는 준비하고 있는 논문들을 잘 마무리해서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저만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꾸준히 학술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강의 내용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Q8. 인간 ‘이성범’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여러모로 행동에 있어 게으른 면이 있는데, 호기심이 발동하면 좀 더 빨라지는 것 같아요. 결국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호기심인데, 특히 지금까지 연구를 계속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힘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Q9. 끝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학년이 하나씩 올라감에 따라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느낌과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중간결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계획하신 바를 따라 묵묵히 전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힘에 너무 굴복하지 마시고 현실에 대항하는 낭만적인 태도를 부디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현실 자체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직접 도출되지는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