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을 연기하는 배우
박장호 (연기예술 14) 동문

  • 489호
  • 기사입력 2022.04.12
  • 취재 이재윤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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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배우의 연기를 보며 울고웃고공감하고 때론 분노한다표정몸짓눈빛으로 감정을 표출해내는 배우는  작품마다 새로운 가면을 쓴 채 순식간에 대중들의 감정을 압도한다.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는 배우 박장호(연기예술 14), 그리고 그가 말하는 배우의을 다룬다.  

 

Q. 이번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간의 아들 맹종역으로 출연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가 드라마로 처음 데뷔를 한 작품이어서 굉장히 떨리기도 했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걱정도 많이 됐어요. 막상 드라마 작품을 해보니까 현장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다들 잘해주시고 무엇보다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많은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게 재밌었어요. “배우의 길을 포기 못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죠. 다시 한 번 연기를 할 때의 짜릿함과 현장의 활력을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작년 6월에 태종(주상욱 배우)의 아들 역할로 오디션을 봤는데 연락이 안와서 떨어진줄 알았어요. 근데 그해 말에 연락이 와서 오디션 역할과 다른 역할인 맹종 역으로 출연 제의가 왔어요. <태종 이방원>은 제가 생애 처음 본 오디션이었는데 졸업하고 바로 오디션 합격 연락이 오더라구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첫 단추를 잘 끼우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극중 아버지 역할을 맡은 선배님을 뵀었는데 선배님과 제 얼굴이 닮았더라구요. 그래서 뽑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웃음) 



Q. 사극 연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사극 연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오디션 때에는 당시 대본이 유출되면 안되는 상황이어서 다른 사극의 대본으로 오디션 준비를 했어요. 사극 장르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말투나 표현, 의상까지 현대극과는 다른 어려움들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역사적인 인물을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고, 주변 친구, 대학 동기들, 고등학교때 같이 입시를 도와주시던 선생님과 연기 연습을 했어요. 전쟁 신(scene) 같은 경우 활 쏘는 연습도 매 촬영마다 연습하고, 눈빛, 호흡, 말투도 제 또래 배우들이 연기한 정통 사극 작품들을 참고하면서 연구했어요. 사극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연기 장르에 도전했다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어떤 배역이든 잘 할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Q. 그동안 연극, 뮤지컬, 단편영화를 하셨는데 배우로서 연극이나 뮤지컬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 연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연극은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그 호흡과 흐름을 가져가야 해요. 근데 드라마나 영화는 그 순간 순간 장소에 따라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영상으로 잇기 때문에 각 장면별로 흐름이 달라져요. 예를 들면 아직 전쟁을 안 했는데 전쟁에서 지고 온 것을 찍는다든가,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데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들이요. 장면마다 인물의 외모도 달라져서 분장 수정을 자주해요. 옷이나 분장이 극의 흐름과 장면의 연결에 맞아야 하니까 더 신경써야 할 것도 많구요. 한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는데 선배 배우들은  대사의 속도와 어조도 일정하게 유지하더라구요. 연극보다는 순간순간을 담아야 해서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마치 일어난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것도 드라마나 영화만이 갖는 특성이라는 것을 이번 <태종 이방원> 촬영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Q. 왜 배우의 길을 선택하셨나요?

고등학교 때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어요. 정치외교학과를 목표로 공부했는데 고 2, 11월에 갑자기 배우로 꿈이 바뀌었어요. 결정적인 동기는 마블영화 히어로 '아이언맨'이었어요. (웃음) 


제 인생의 가장 큰 모토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자’ 예요. 정치인이 되려는 것도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도록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거든요. 그러다 문득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눈감아 주는 대신 돈을 준다고 하면 나는 이걸 단칼에 거절할 수 있을까?’ 였어요. 정치인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고 부정부패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하잖아요. 만약 내가 이런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면 원래 꿈꾸던 사람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세상을 타락시키는 사람이 되겠죠. 그럴 바에는 정치인이 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그즈음 이 영화를 봤어요. 누군가는 영화 속 히어로의 정의로운 행동들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하잖아요. 결국에는 이런 히어로를 연기하는 것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상이 보다 정의로워지는 데 이바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배우의 꿈을 갖게 됐어요.  

 

Q. 지금까지의 연기했던 작품 중 특별히 애착 가는 작품이 있다면? 

대학 입학후 첫 작품이었던 “어서오세요, 마평국밥집입니다.” 에요. 대학 입학 전까지는 입시연기를 해서 혼자 연기를 했거든요. 근데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이 연기를 한거죠. 이 작품이 창작극이에요. 창작극은 우리들의 경험, 말투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있어요. 그때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극을 만들어가는 풋풋했던 기억들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지금도 연기하거나 오디션 보러 갈 때 이 대본을 한번씩 봐요. 어떤 것도 계산하지 않은 순수한 연기를 했을 때의 제 모습을 돌이켜보게 하거든요. 많은 지인들도 그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많이 얘기해주시기도 하고요.  

 

Q. 배우로서 몰입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연기에 몰입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저는 몰입이 안되는 순간이 자의식이 들어올 때라고 생각해요. 내가 맡은 배역에 빙의해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연기 할 때 저 자신이 개입되면 연기도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어색함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거든요. 이럴 때는 이 자의식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해요. ‘지금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박장호가 아니라 맹종이다’ 이렇게요. 


배우는 몰입이 안되는 순간에도 몰입하는 게 중요해요. 이번 <태종 이방원>을 촬영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촬영장에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스태프들이 계세요. 그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고 있는 거죠. 근데 연기할 때 그 스태프들은 안보이고 딱 상대 배우만 보이는 순간이 있었어요. 순간적으로 몰입했다가 감독님이 컷 사인을 주시면 그제서야 주변이 다 보이는 거죠. 친구들, 후배들이 첫 촬영인데 떨리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데 현장에서 하나도 안 떨렸어요. 오히려 많은 배우들, 스태프들이랑 같이 작업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오히려 끝나갈 때마다 아쉽더라구요. 심지어 촬영할 때마다 ‘나 다음화에서 죽는 거 아냐?’ 이렇게 걱정하기도 했어요.

 

Q. 배우로서의 삶을 이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태종 이방원>을 촬영하고 배우로서 첫 작품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버텨왔다”는 말이 맞는것 같아요. 언제 배우로서 스크린에 데뷔하게 될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과 걱정 탓에 스스로에게 마지노선을 주면서 버텼어요. ‘서른 살까지 데뷔를 못하면 그만 두는 거고, 그러면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했어요. 이전까지는 “버텨왔다”면, 지금은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기대감이 큰 것 같아요. 제 연기인생을 책으로 표현하자면 전개단계라고 할 수 있겠죠. 제 배우 인생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지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설렘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상태에 있어요. <태종 이방원>을 찍었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 기분 좋은 떨림과 좋은 환경, 좋은 사람들 속에서 연기했던 기억들이 앞으로 배우로서의 삶을 사는 데 큰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 

 

Q. 연기예술학과 과대표부터 예술대학 학생회장까지 활발한 학교 생활을 하셨어요. 연기예술학과 14학번 박장호의 학창시절이 궁금해요.

저는 중고등학교 내내 전교회장을 했어요. 제가 좀 앞에 나설 상이긴 하죠. (웃음) 어릴 적에는 ‘나 라면 잘 이끌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회장직을 맡았죠. 대학교 와서는 이유가 조금 달랐어요. 같은 연기예술학과 친구들을 포함해서 예대 친구들이 건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서서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모습을 봤어요. 제가 앞서 말했듯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누군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겠다는 생각에 그럴 바엔 내가 총대를 메자 이런 생각으로 출마했어요.


막상 과대표, 학생회장직을 맡으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 오디션 영상과 프로필을 회장직을 맡으면서 만난 영상학과 동기가 찍어주고 디자인과 친구가 만들어줬어요. 다들 제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는 거예요. 회장직이라는 게 많은 책임을 져야하는 무거운 자리기는 하지만 대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회장 일을 하면서 총장님, 학장님을 만났고,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자로  불러주셨어요. 학교 관계자들도 ‘연예인이 왔으면 우리도 연예인 내보내야지’ 하면서 제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응원으로 저에게 값진 기회들을 주셨어요. 아무것도 아닌 저를 믿어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던 것에 대한 감사함은 잊을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을 받아서 제가 얼른 배우로 성공해서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어요.


Q. 어떤 배우로 대중들의 기억에 남고 싶나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많아요. 대중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나만의 캐릭터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해요. 대학교 때의 과정은 이런저런 역할이나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무대로 나가야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삶은 이제 시작이지만 살면서 느낀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자면 저는 ‘선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극이든 드라마든 연기라는 게 배우, 작가, 감독, 스태프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공동 작업이잖아요. 저는 이 작업을 할 때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배우가 돼야 계속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저에게 스타가 되고 싶냐 물으면 당연히 답은 ‘yes’ 죠. 하지만 잠깐 빛나는 스타가 되겠냐, 아니면 꾸준히 사랑받는 배우가 되겠냐고 물으면 저는 후자를 선택할 거예요. 그만큼 오래 사랑받고 오랫동안 좋은 사람들과 연기할 수 있는 선한 배우가 제 목표예요.  


Q. 배우의 꿈을 꾸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저도 얼마 전까지는 꿈을 꾸던 사람이어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조금 조심스러운데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히 말해주고 싶어요.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면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준비된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오게 돼있어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누구나 잘 어울리는 옷이 있듯 모든 연기자들에게도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을 거에요.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좌절하지 않고 도전했으면 좋겠고 대학생활 열심히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배우라고 전해주고 싶어요.